157호 [특집-기억2/사진] 기억되지 않는 것들을 위하여

김현수 / 신문방송학 석사3차

사진이 있다면 ‘ㄿ 자 놓고 ‘기억’ 못할 일은 없다. 사진은 물증이기도 하니까. 찍혔으니까. 종종 사진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을 ‘찍사’라고 부르는 걸 보라. 물론 사진하는 사람이 이 소릴 들으면 구두닦이 취급한다며 길길이 날 뛸 모습이 훤하지만 말이다. 눈과 마찬가지로 카메라 역시 깜박이는 눈을 갖고 있다. 그러나 카메라의 눈은 한번 깜박일 때 모든 시공간을 정지시킨다. 특히 ‘때’라는 시간을 멈추게 한다. 찰칵하는 찰나를 잡아낸다. 눈가의 주름까지. 그래서 혹자는 사진을 시간예술이라고도 하는지도. 결국 자신을 찍는다는 것은 날 찍기보다는 내 얼굴에 묻어난 시간의 흔적을 옮겨온 것이니까.

사진은 물신화의 도구이기도 하다. 과거엔 혼을 빼앗는다는 미신이 있었고 지금은 사진의 대상을 소유한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한다. 사랑을 시작하는 연인들이 둘만의 추억을 남기기 위해 스티커 사진을 찍는 것만 봐도 그렇다. 사진은 그들이 거기에 함께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른 뒤 정지된 시공간으로 다시 되새김질할 추억을 남겨놓는다. 사랑 공식이기도 하다. 또한 만들어진 이별 공식에도 사진은 늘 끼어있다. 사랑을 잃으면 사진을 찢거나 태워버림으로써 매체가 만들어 놓은 멋진 이별의 순간을 공식처럼 되풀이한다.

얼마 전에 유행했던 아이러브 스쿨이 기억날런지. 워낙 이 나라 사람들의 기억력이 의심이 가는지라... 아이러브 스쿨은 기억을 되찾는 (좀더 고상하게 말하면)추억을 끄집어내는 아주 쉽고 빠른 방법이다. 그런데 이 기억이라는 게 꼭 되살리고 싶은 것만은 아님에 틀림없다. 기억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기억하기 싫은 것도 분명히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추억은 가슴 깊이 묻어두었다가 가끔 몰래 꺼내 보는 것이다. 굳이 그 추억을 일부러 끌어 낸 후 상처받는 마음 달랠 길이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질문 한가지! 친구와 사진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둘 다 기억을 되살리는 환기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는 것이다.

쿤데라는 그의 소설인 『정체성』에서 친구란 과거의 기억을 되살리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있다고 표현했다. 사진 역시 누렇게 변했을지언정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남겨 놓아 기억을 환기시킨다. 물론 친구는 사진보다 과장된 기억을 만들어내는 차이는 있다. 따라서 사진은 뇌 속의 기억을 담은 세포를 찾는 것보다 훨씬 편한 방법이다. 최소한 과대포장은 막을 수 있을 테니까. 그렇더라도 사진빨 잘 받는 것은 무시하지 말자. 사진이 아첨하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심각한 얘기는 접어두고 사진에 관한 일상을 건드려 보았다. 이 절대적인 공간에서 기억을 이야기하는 마당에, 사진이 권력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고, 사진이 만들어낸 이미지를 통해 개인을 통제한다고 주장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소한 ‘누갗 ‘무엇을’ 그리고 ‘왜’ 인화지라는 평면 위에 새겨놓는지를 항상 질문해야한다. ‘생각하는 눈’이 필요하니까. 자∼찍습니다. 하나 둘 세엣∼ 김취∼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