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호 [특집-공동글쓰기] '친구', 그 요람에서 무덤까지

편집위원회

모든 기억들이 빗 속의 눈물처럼 잊혀지겠지…

1980년 5월 18일: 동사서독 개봉박두
“헉!” 오늘은 1995년 5월 18일. 내 열 여섯 번째 생일이다. 대충 밥먹고 가방을 챙겨들 때쯤, 옆집 사는 서독은 대문 사이로 얼굴을 삐죽이 들이댄다. “동사야, 학교 가자부러!” 서독. 이 자식과 나는 생일이 같다. 같은 날 태어났고 줄곧 옆집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어쩔 수 없이 친해진 그런 사이이다. 그래도 나는 서독을 둘도 없는 친구라 생각하고 있다. “아따, 이 짜슥이 생일날 아침부터 뭔 생각을 그리 한다냐?” 나는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1000원짜리 몇 장을 꺼내어 쥐어준다. “역시 넌 내 베스트 프랜드여!” 이죽거리는 서독의 표정과 함께 내 손에 책가방 하나가 더해진다.
학생들에게 학교란 게 늘 그렇듯, 내게도 학교는 정말 힘든 장소이다. “동사야, 숙제 좀 베끼게 노트 좀 보여주라.” 나쁜 놈. 새벽 2시까지 참고서도 안보고 혼자 푼 걸 다 공으로 먹으려 들다니. “안 뒤어. 숙제는 집에서 해오라고 내주는 거지, 베끼라고 내주는 거냐, 시방?” 순간 교실이 조용해진다. “야! 관두! 도덕책한테 뭔 놈의 숙제를 빌려쓰냐?” 누군가 이렇게 말하자, 모두들 낄낄대며 수군거린다. 이상하다. 숙제를 빌리려는 놈이 잘못인 것인데, 반 애들은 나를 보고 웃는 것 같다. 그날 이후로 나는 학교에서 왕따가 되었고, 서독은 늘 여러 명과 어울려 다녔다. 그들 사이는 점점 멀어지게 되었다.

기원전 416년; 소설 속의 소설, 동사서독의 고고학
철학자 서독크라테스는 악아톤의 집에서 몇몇 사람들과 모여있다. 그들은 밤새 술마시며 향연을 벌이고 있었다. 이야기의 주제는 사랑이었는데, 그 이야기가 왠지 예사롭게 들리지 않는다.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이렇게 말했다.
“온 인류가 행복하려면 완전한 사랑을 해야하오. 그건 사람마다 자신에게 가장 맞는 소년을 얻는 일이오. 그에 따라 우리는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소.”
그때였다. 서독크라테스의 제자 동사할키비아데스가 술에 잔뜩 취해 문을 열고 들어온 거다. 그런데 동사할키비아데스의 눈에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인 서독크라테스가 들어오고 말았다. 서독크라테스는 악아톤의 손을 만지작거리며 정신적 사랑의 위대함을 역설하고 있었던 거다. “나의 사랑, 서독크라테스여! 당신은 어찌하여 나를 피해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것입니까? 당신이 나를 멀리 할 때마다 이렇게 머리에 꽃을 꽂았건만…” 서독크라테스는 무척 당혹스러웠지만, 이내 점잖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사랑은 집착과는 다른 것이야.”
이후 실연의 상처 속에서 허우적대던 동사할키비아데스는 정신이 혼미한 나머지, 필로폰네소스라는 마약전쟁에서 이보전진 일보후퇴라는 전법으로 싸웠다가 안테나 패전의 주범이 되었다. 평소 서독크라테스를 못마땅히 여기던 자들은 이를 빌미 삼아 서독크라테스를 감옥에 가두게 된다. 결국 그는 갈아먹는 독배를 마시고 죽어버렸고, 동사할키비아데스는 모진 심문을 받았으나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그와의 사랑을 부인하고 만다.이 일은 전부 사실이다. 그러나 시간의 두께 속에서 조금씩 이 이야기는 변화를 거듭했는데, 어쨌거나 그들의 사랑은 지식이라는 이름 아래 행해지는 일종의 우정으로 오해되어 왔다(한국에서는 이것도 마뜩찮아 사제간의 도리, 동양적 합리성으로 번역되었다고 한다). 아무튼 오늘날의 사랑과 우정이라는 단어만큼 애매모호하기 짝이 없는 것도 찾기 어려울 거라고 철학자 장진구는 줄곧 주장하고 있기는 하다.

2001년 5월 18일;
동사, 영화 ‘친구’를 보다
동사는 요즘 ‘친구’라는 영화를 안본 사람이 없다기에 봤는데, 이내 짜증만 났다. 사람들을 좀체 이해할 수 없다. 도대체 저런 깡패영화가 뭐가 그리 재미있다는 건지. ‘그게 친구야? 패거리지.’ 동사는 내일이면 군에 입대한다. 갑자기 만날 친구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 몹시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동사는 102보를 거쳐 강원도 산골짜기 양구 철책선에 배치되었다. 동사는 원래 말귀에도 어둡고 행동이 느린 터라, 자대 배치 3일만에 고문관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고참들의 횡포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계속 되었으나, 아무도 동사에게 따뜻한 시선 하나 보내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하필이면 고참들 중 가장 악명 높은 권이절 상병 말호봉과 6시간 동안의 야간 전반근무를 서게 된 거다. 악몽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네 고향이 광주냐 시비 걸기 시작했고, 부산갈매기를 완벽히 부르면 여기서 담배를 피우게 해주겠노라며 협박했다. 결국 머리 박고 탄박스 들고... 갖가지 얼차려가 계속되었다. 권상병은 드디어 동사 이병의 뒤에 서더니, 자신의 하복부를 동사 엉덩이에 부벼대기 시작했다. 점점 허리의 속도가 빨라지고 탄식에 가까운 소리가 터져 나온다. ‘아, 짜증난다, 짜증난다, 짜증난다, 짜증난다...’ 참지 못한 동사는 결국 개머리판으로 권이절 상병의 턱을 뽀사버리고 만다.
이후 군기교육대와 취사장, 관사, 피엑스를 전전하게 되고, 우리의 동사 결국 제대하기에 이른다. 아, 이 해방감! 이런 기분에는 술이라도 한잔 걸쳐야 하는데… 그러다 결국 서독을 생각해내기에 이르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서독, 술이나 한잔할래?”, “왜?”, “그냥”, “어딘데?”, “종로”, “알았어. 금방 갈게. 기달려”
웬일인가 싶었지만 그래도 이 놈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2005년 8월 15일; 친구-되기, 동사의 해피투게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차라리 계속 옐로우스톤에서 화장실 청소나 할 걸. 후회해도 소용없다. 주머니에는 이제 동전 몇 개만 남아있다. 돌아갈 비행기는커녕 당장 내일 치를 방 값도 없다. 아! 그래, 서핑보드라도 팔아야겠다. 한 2백불은 받겠지.
옐로우스톤 국립공원에서 일하면서 켄이찌를 만났다. 처음에는 주로 화장실청소, 휴지줍기, 키친핸드 같은 일을 했다. 일은 별로 어렵지 않았지만, 영어를 배울 수 있는 기회는 별로 없었다. 내가 머무는 C동 건물에는 25명의 한국인이 있었다. 여자도 몇 명을 제외하면, 대부분 취업을 걱정하는 복학생들이었다. 그들은 6시에 정규 업무가 끝나면 항상 술을 마셨다. 한국말로 떠들고, 노래하고, 가끔은 싸움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켄이찌를 만났다. 그 곳의 유일한 일본인이었던 그는 내가 한국인들과 따로 있는 것을 보고 일본인인 줄 알았다고 했다. 우리는 나중에 함께 창고 업무를 지원했다. 주로 커다란 박스를 나르는 힘든 일이었지만, 창고를 책임지는 잭, 화물차 운전수들과 영어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좋았다.
그 곳의 생활이 지겨워질 무렵, 켄이찌 녀석이 갑자기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자고 말했다. 지금이 파도가 가장 센 때라고 했다. 자식이 한국과 일본의 반대편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가 있으니, 그 곳에 가면 세계여행을 모두 한 것과 마찬가지란 말을 했을 때, 난 이미 파란 파도를 가르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서핑 보드를 들고 바다로 나간다. 켄이찌가 4시에 일을끝내고 바다로 온다. 그리고 우리는 해가 질 때까지 파도를 탄다.
켄이찌가 한달 전 안젤라라는 데려왔다. 켄이찌보다 8살 많고 나보다는 6살 많은 여자였다. 그리고 오늘 둘이 결혼을 했다. 켄이찌는 그녀의 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녀를 사랑하냐는 물음에 켄이찌는 일본보다 파도가 더 큰 이곳이 좋다고 했다.

2013년 12월 24일; 한 명의 친구인가, 여러 명의 친구인가
누군가 이 글을 읽게 될지 아닐지 지금의 나로서는 알 수가 없다. 아마도 그것은 내 눈에 고인 눈물도 얼릴 만한 추위와 긴긴 겨울밤만이 알 수 있겠지.
솔직히 말하면 난 아직도 실감이 나질 않는다. 내가 지금 이 한 겨울에 꽁꽁 얼어붙은 청룡연못 앞에 쭈그리고 앉아있다는 사실이. 하지만, 이 차가운 돌의자와 시퍼런 껍질에 어울리지 않는 펜과 붓을 쥐고 있는 청룡상을 보면, 그리고 불과 2미터도 되지 않는 바닥이 보이지 않는 이 얼어붙은 못을 보면, 이곳은 분명 내가 10년 가까이 몸담았던 그곳의 연못이 분명하다. 난 왜 이곳에 와 있을까. 아! 엉덩이가 시립다.
나의 꿈 아메리카의 겨울도 이렇게 시릴까. 만일 그곳에 갔다면, 내 지아리가 100점만 더 나왔다면, 나의 인생이 조금은 변했을까. 아니 그랬다면 유학비용 대주지 못하는 부모님을 원망하는 일 정도는 피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청룡탕이 아닌 미시간호를 바라보며 시린 엉덩이를 탓하는 것 밖에 다를 게 없었을까. 이런 얘기들을 이렇게 적는 게 좋은 일인지는 모르겠다.
정확히 9년째 몸담았지만 별로 기억나는 게 없다. 내가 이곳에 주었던 시간들은 다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누가 그랬던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진다고... 시간은 나에게서 기억을 빼앗아갈 뿐 아무 기억도 남겨주지 않았다. 취생몽사 때문인가.
내가 기억하는 것은 오로지 서독과 함께 한, 어느 때 보다도 치열했던 언덕 위 마적 때들과의 그 결투 뿐. 언젠가 서독은 나에게 옛일을 잊을 수 있을 거라고 취생몽사를 건네주었다. 그때 서독은 취생몽사를 마셨지만 난 마시지 않았다. 난 서독을 잊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서독은 날 잊었고 난 아직 잊지 않았다.
난 지금 여기에 혼자 앉아 취생몽사를 마신다. 추위가 잊혀진다. 그리고 내가 잊혀진다….
그리고 서독이….글씨가 잘 써지지 안는ㄷ.
이러ㄴ ㅈ ㅔ ㄱ l ㄹ ㅏ 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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