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호 [우리 시대의 '국제성'] ‘국제학술대회’ 주최의 안과 밖

권경우 / 문화평론가

이름에 기댄 투자가 낳은 지적 빈곤함

최근 거의 비슷한 시기에 굵직한 국제학술대회가 연달아 열리면서, 국내에서 개최되는 국제적인 학술행사에 대한 검토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이는 개별 행사의 중요도에 대한 가치판단의 차원을 넘어 다양한 학술행사에 대한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지원 체계에 대한 문제제기를 포함하는 것이기도 하다.

지난 9월 22-23일 이틀간 이화여대에서 ‘근대성의 충격’이라는 주제로 다중언어학술지 <흔적(Traces)> 편집위원단 주최의 국제학술대회가 있었고, 26-28일까지 사흘 동안 세종문화회관에서 ‘경계를 넘어 글쓰기―다문화세계 속에서의 문학’이라는 국제문학포럼이 대산문화재단 주최로 개최되었다. 이 두 행사는 비슷한 시기에 열린 것을 제외하고도 여러 가지 점에서 비교가 된다. 주요 일간지를 비롯한 언론의 편향적인 보도는 언론의 속성상 제쳐놓더라도, 외국의 학자, 문인, 작가들이 대거 참여했다는 점에서 유사한 측면을 보여준다. 물론 그 규모나 예산 등에서는 서로 비중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그렇다 할지라도 국내에서 국제학술행사의 개최가 나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때 그 의미가 생성되는 물질적 기반과 맥락을 살펴보는 것도 장기적으로 중요한 일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대산문화재단의 ‘국제문학포럼’은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문화관광부의 후원과 자체 문화재단의 예산, 2년이 넘는 기간 동안의 준비, 이에 따른 각 언론의 대대적인 홍보와 지면화 등은 모든 면에서 잘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오히려 살펴볼 것은 <흔적> 편집위원단에서 준비한 국제학술행사이다. 11월중에 반연간으로 발행예정인 <흔적>은 한국어뿐만 아니라 일어, 중국어, 영어, 독어로 동시에 발간되는 국제학술지이다. 이와 같은 다중언어로 동시 발간되는 방식을 취한 것은 거의 유례가 없는 일이다.
또한 이 잡지를 발간하는 각 나라의 편집위원단은 단순하게 잡지발간이 아니라 매년 2회씩 각 나라를 순회하면서 올해 한국에서와 같은 학술대회를 개최함으로써 다양한 학문영역의 교류뿐만 아니라 새로운 지식생산과 국제적인 지식인연대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흔적>의 편집위원으로서 이번 국제학술대회를 실질적으로 준비한 강내희 교수(본교 영문학)는 “학술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지원을 받기가 쉽지 않았다”면서 그 결과 20여명의 외국인 학자 가운데 상당수는 개별적으로 여비와 체재비를 마련해 학술대회에 참석했다고 말했다. 이는 학술진흥원과 같은 공식적인 제도적 지원 자체가 형식적인 측면을 중요시함에 따라, 이와 같이 주최가 불분명한(?) 학술행사는 지원을 받는 데 있어 굉장히 어렵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제도적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학술행사의 의미나 중요성과는 별도로 ‘OOO 학회’라는 형식적 틀을 갖추는 것이 현실적으로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조금만 다른 각도에서 생각해보면 시각은 달라질 수 있다. 여러 나라의 학자들이 학문간 경계를 뛰어넘어 지속적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쩌면 정작 지원을 받을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바로 이러한 학문적 실천이야말로, 어쩌면 이번 국제문학포럼에서 가장 큰 화두였던 ‘세계화’에 대한 저항으로서 ‘국제성’ 혹은 ‘국제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학술행사의 개최 여부 못지 않게 일회성이 아닌 연속적인 사업에 주목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국제문학포럼의 조직위원장 김우창 교수(고려대 영문학)가 포럼의 의미를 “세계 국가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그 정당한 위치를 분명히 하는 일”에서 찾은 것은 말 자체는 맞는 말이다. 하지만 국제적인 행사를 치룬다고 해서 국제적인 위치가 획득되는 것은 아니다. 그런 점에서 앞의 학술행사는 한국사회의 편향된 학문정책과 담론시장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학문 인프라의 빈곤은 세계적 차원에서 한국의 학문이 자리를 잡는 데 하나의 질곡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영역에서 진행되는 연구와 실천적 고민이 외화(外化)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동시에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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