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우리 시대의 ‘국제성’] 민중운동의 국제적 연대와 그 함의

이창근 / 투자협정·WTO반대국민행동 정책위원

더 멀리, 더 다양하게 그리고 더 필사적으로

1999년 11월 시애틀 투쟁이후 국제적인 민중연대투쟁이 활성화되고 있다. 특히 각국 정상 혹은 각료들이 회합하는 곳이면, 어김없이 시위가 조직되고 있다.
지난 4월 워싱턴의 IMF/세계은행 반대 시위, 9월 호주 멜버른의 세계경제포럼 반대시위, 9월 26일 체코 프라하의 시위가 그것들이다. 최근의 이러한 국제적인 민중연대운동은 몇 가지 특징들을 갖고 있다.

첫째, 여성, 환경, 인권, 소비자, 건강 등 각 영역을 중심으로 활동해왔던 세력들이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라는 공동의 요구아래 결집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애틀과 워싱턴의 수많은 시위대들은, 노동운동 및 진보정당에서 진보적 교회운동, 인권운동, 평화운동, 도시/농촌공동체 및 원주민운동, 여성운동조직, 청년 및 장년 조직, 에이즈인권활동가, 보건의료운동, 장애인 로비단체, 소비자운동 그리고 환경운동까지 매우 다양한 운동단체들이 참여했는데, 이는 최근 국제민중연대운동의 가장 상징적인 특징이다. 이러한 현상은 ‘반(反)신자유주의 세계화 동맹’을 매개로 한, 대중운동과 NGO, 프롤레타리아 활동가와 쁘띠 부르주아 지식인, 여성과 남성, 환경주의자와 노동자들 신자유주의 반대 운동에 함께 연대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한다.

둘째, 제3세계 사회운동 세력들간의 연대가 강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국제적인 연대행동은 북반구 NGO들에 의해 주도되었는데, 최근 남반구 사회운동 및 대중운동 세력들이 적극적으로 자신의 투쟁에 기반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함으로써, 그 지형이 변화하고 있다. 제3세계 외채탕감운동을 주도해 온 ‘쥬빌리 2000 캠페인’이 남반구와 북반구로 분화된 것은 상징적인 예이다. 남아공, 브라질, 필리핀 등 남반구 사회운동 중심으로 외채 문제의 구조적·근본적 해결을 위한 네트워크인 ‘쥬빌리 남반구’가 구성된 것이다.
셋째, 인터넷의 발달에 따른 네트워크 및 자율적 동원체제의 형성과 발전 역시 최근 국제연대운동의 경향에서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시애틀과 워싱턴 투쟁의 경우, 상당히 많은 대중들이 어떠한 NGO나 대중조직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은 개인들이 참여했고, 풀뿌리 운동이 국제적인 연결망을 갖춤으로써, 자신들의 투쟁을 세계화시켜내고, 곧바로 국제적인 연대행동에 동참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넷째, WTO, IMF, 투자협정 등 국제금융기구와 국제협정에 대한 ‘개혁주의적 입장’이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보수적인 NGO 및 노동조합은 ‘노동·환경 기준을 무역과 연계시킴으로써’, WTO를 비롯한 자유무역 및 투자협정을 ‘개혁’시킬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조직운동에서 자발적 운동으로
그러나, 이 주장은 대중의 신뢰를 잃어가고 있다. 왜냐하면, 기존 자유무역협정에 포괄되어 있는 노동·환경 기준이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협정 중에 최초로 노동·환경 기준이 포함된 것은 지난 1994년 출범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인데, 그러한 기준들은 노동권 및 환경 보호를 위한 어떠한 감시 혹은 규제의 역할도 하지 못했다. 또한 WTO 내에도 환경단체들의 강력한 주장으로, ‘무역환경위원회’가 설치되었지만, 이 위원회는 무역이 환경 파괴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는가를 연구하기보다는, 오히려 환경 관련 법률이 어떻게 자유무역을 방해하는가를 연구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이러한 사회적 조항 노선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금융세계화 체제를 강화하고 공고히하고 있는 WTO 및 투자협정에 ‘정치적 정당성’을 부여해줌으로써, 현재의 제국주의적 지배·종속관계를 유지하는데 일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사회적 조항을 WTO(및 자유무역·투자협정)에 편입시킴으로써 얻을 것으로 기대되는 일정한 진보성 혹은 잠재적인 가치보다, 그에 의해 잃게 되는 것 -국제적인 사회세력 관계에 미치는 손상- 이 더욱 크다는 점이다.

마지막으로, 국제기구 및 투자협정에 대한 ‘해체론자’들의 시민권 획득은 또 다른 중요한 특징이다. 사실 90년대 국제금융기구 및 WTO 체제에 대한 ‘해체’ 주장은 “대안은 없다(There is no alternative)”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데올로기 공세 속에서, 소수 급진론자들의 관념적 주장으로 치부되어 왔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금융 세계화 체제의 모순이 심화되고 개혁주의적 입장이 기존 경향을 제어하는데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하면서, ‘해체론’은 국제연대운동 내에서 시민권을 획득하게 된다. 이는 결정적으로 다자간투자협정(MAI) 반대투쟁을 계기로 형성되었다. 극단적으로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MAI 앞에서, 보수적 NGO들은 그 내에 어떠한 사회적 조항조차 편입시킬 여지가 없음을 깨달아야만 했다.

해체론자의 시민권 획득
결국 그들도 초국적자본 및 제국주의 국가들이 전혀 받아들일 수 없는 ‘요구사항’들을 제기함으로써, MAI 체결 반대론자들과 함께 했다. 이러한 경향은 시애틀 투쟁과 워싱턴 행동으로 이어지면서, 국제금융기구 해체/모든 추가적인 자유무역 및 투자협정 체결 반대/WTO체제 해체 등의 주장이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국제민중연대운동은 신자유주의 세계화 경향이 고도화되고 제도화되면서, 뚜렷하게 발전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극복해야 할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있다. 그것은 정치적인 전략에 있어서 ‘자본통제’, ‘외채탕감/거부’, ‘WTO 및 투자협정 반대’, ‘IMF/세계은행 해체’ 등의 다양한 쟁점들을 어떻게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으로 통합시켜낼 것인가. 탈냉전시대 세계화는 제3세계 국가들이 냉전시대에 그나마 이뤄놓은 부와 천연자원, 심지어 전통적인 지식과 문화까지도 무자비하게 재수탈해가는 구조를 의미한다. 이런 면에서,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대한 보다 본질적인 대응 방향의 정립과 연대전선의 구축이 필요한 때이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세계화의 주요한 행위자들을 해체하고, 그 체제로부터 ‘이탈’하는 방향으로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당장 이 목표가 달성되기는 힘들겠지만, 위의 전망을 갖고 단기적으로 농업·문화·생명특허·필수서비스 등을 WTO 체제에서 ‘제외’시키고, 제3세계 국가들의 국민경제적·사회적 필요에 따른 정책을 제한하는 IMF/세계은행의 구조조정 강요의 중단을 요구해야 한다. 또한 남반구 사회운동 세력들간의 연대 속에서, 외채의 구조적 문제에 대한 교육과 모든 외채의 ‘조건없는’ 탕감을 주장해야 한다. 여기에 금융투기반대 및 자본통제운동 등이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