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호 [유망주] 정공법으로 승부한다

정공법으로 승부한다

이상용/편집위원

학문의 역사를 굽어보는 사람들은 해체론과 포스트모더니즘이 중심에 섰을 때 이제는 원칙적인 것들이 다시 대두할 것이라는 순환론을 폈다. 이 말에 꼭 동의할 필요는 없겠지만 부정의 인식이 팽배했을 때 근본적인 것을 찾는 것은 학문의 인지상정. 어지럽게 쌓인 잡지들 한 켠에 남몰래 박혀있는 이들이 눈에 띈 까닭도 대강 그렇다.
간택된 이들은 대부분 창간되었거나 겨우 두 번째 호를 내었지만 그 어느 연구지들보다 자기의 영역이 확실하다는 것은 특이할만한 사항이다. ‘서사 연구 저널’이라는 것을 내세운 『내러티브』, 인도철학에서 한국의 실학까지 폭넓은 동양사상을 아우르겠다는 『오늘의 동양사상』, 근대문학의 재평가 작업을 통해 문학 연구의 스펙트럼을 넓히겠다는 『한국근대문학연구』는 아무리 봐도 메이저리그로 진출하기에는 너무나 원론적이다. 하지만 연구자들은 이들의 마이너리그 직행이 마음에 든다. 자기 연구 분야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한국근대문학연구』가 ‘1999년도 현대문학 박사학위 논문목록’을 수록해놓은 것도, 『오늘의 동양사상』이 ‘일본 사상 연구의 현황과 과제’에서 내용보다는 연구목록을 충실해 수록해 놓은 것도 우연이 아니다. 현재의 연구성과들을 정리하겠다는 소박한 일념은 그동안 한국의 많은 연구지들이 간과해 온 영역중의 하나이며, 새로운 영역을 답보하겠다는 이들의 느린 걸음은 유행의 민감함보다는 학문의 공과를 정리하는데 먼저 눈을 뜬다.
물론 현실은 쓰다. 이들 중 유일하게 2호를 낸 『오늘의 동양사상』은 근 일년만에 두 번째 책을 낼 수 있었다. 동양이라는 담론이 유례없는 호황을 누림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담론의 수용에 있어서 게으른 현실은 지속적으로 출간되는데 원동력이 되지 못했다. 혹시 그렇다면 필진들은 젊은 연구자들이 아닐까라는 의혹을 제기할지 모르겠지만 천만에 말씀. 대부분 중견 소장학자들이거나 평론가들이다. 특히 『오늘의 동양사상』을 제외한 두 연구지는 자신들의 창간사에서 학교나 연구자간의 소통장벽을 뛰어넘어 자유로운 발언이 되고자 한다. 하지만 ‘서사이론의 개발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접점은 현실의 기반이 모두에게서 미약해 보인다. 단지 『오늘의 동양사상』이 특집으로 ‘아시아적 가캄를 다룸으로써 현실과의 조우를 선택했지만 좌담의 내용을 비롯하여 알려진 사실을 확인하는데 그치고 만다.

하지만 이들 연구지의 가치는 충분하다. ‘98 동향과 전망’을 통해 전체적인 동양사상을 아우르는 『오늘의 동양사상』은 최근 쏟아져 나온 동양학 연구지 중 가장 폭넓으면서도 현실상황을 큰그릇에 담아내고 있으며, ‘서사물의 화자’라는 기획 특집을 마련한 『내러티브』의 연구물은 서사의 테마들을 영화, 연극, 언어의 측면에서 상세하게 분석하고 있어 비교하기에 좋다. 또한 ‘한국근대문학사 연구의 반성과 전망’이라는 이름아래 지워진 ‘근대문학연구에 나타난 ‘여성’의 부재’를 다룬 황도경의 논문이나 ‘1930년대 후반 소설에 나타난 여성 주체의 재현방식’을 다룬 김양선의 글들은 한국문학사의 결핍을 채울 좋은 시도이다. 아직 그 성과가 뚜렷하지 않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연구자들의 몫이 무언인지를 가늠해 줄 잣대가 될 것임에는 분명하다. 그 점에서 있어서 이들의 원론주의는 유행지식 담론이 횡횡하는 사회에 정통적인 방법으로 대항하는 우리 시대의 유망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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