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호 [가상현실 특집] 우리는 새로운 문화계급인 사이보그를 꿈꾼다

김성일/고려대 사회학 박사과정

문화의 세기라고 일컬어지는 21세기를 분석하는 데 있어 테크놀로지의 발전에 따른 디지털 사회의 출현은 핵심적인 키워드 중의 하나이다. 디지털 사회란 테크놀로지를 통해 대상을 이진법의 부호인 비트로 전환시키고, 고도의 네트워크를 통해 이를 대중과 소통시키는 사회를 말한다. 비트가 디지털 사회를 구성하는 세포단위라는 점은 상품이 세포단위로서 기능했던 자본주의 사회와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이 같은 사실은 디지털 사회가 자본주의 사회 혹은 산업 사회를 대체할만한 대안적 기획력이 어느 정도 있는가와 같은 ‘사회이행 논쟁’을 새롭게 부활시켰다.

그럼 테크놀로지의 급속한 변화로 지식과 정보가 고도로 결합된 디지털 사회의 특성들은 무엇인가? 이에 대한 답변은 우리의 생활 풍속도가 과거와는 다르게 묘사되는 몇 가지 사실들 속에서 발견할 수 있다. 휴대용 MP3 플레이어에 연결된 이어폰을 귀에 꽂고, 핸드폰을 통한 인터넷 채팅에 몰두하면서 거리를 걷는 보행자. 라디오가 달린 고글을 쓰고 성원을 내려오는 스키어. 손목, 머리, 허리, 다리에 특수센서만을 달고 음악을 연주하는 음악가. 이러한 풍경의 주인공은 사람이 아니라 사이보그이다. 사이보그는 최첨단 테크놀로지와 인간 신체와의 만남 속에서 새로운 종(種)으로 진화할 수 있는 생명체를 말한다. 디지털 사회에서 적자생존의 원칙에 근거한 최후의 생존자는 아마도 사이보그들일 것이다. 왜냐하면 이들은 최첨단 테크놀로지의 힘을 빌어 인간 신체가 갖고 있는 적응력을 최대한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으로 삶의 경쟁력을 평가하는 기준은 인간이 얼마나 사이보그 치장을 하는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여기서 치장은 디지털 시대 소비행위를 의미한다. 안경, 콘택츠렌즈, 가발, 현미경, 인공심장, 인공피부, 인공뼈 등의 초기의 사이보그 장치들은 인간 신체의 결함을 보충해주는 사용가치적 의미만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비트적 적자생존의 환경 속에서 사이보그 장치들에 대한 소비는 자신의 계급적 차이를 과시하는 교환가치를 갖는다. 사이보그 장치가 제시한 치장의 미학, 생존의 미학, 디지털 기기의 미학은 우리의 몸을 견고히 부풀려 거대한 힘을 만들어 줄 것 같은 환상과 함께 일상화되어 가는 이중적인 가치로 정향되어 갈 것이다.

디지털 사회에서 생존자로서 남는 대상은 사이보그만 있는 것이 아니다. 테크놀로지의 발 전은 생산공정의 합리화를 더욱 촉진시켜 상당수의 노동자를 실업자로 만들 것 이다. 이른바 ‘20 대 80’의 사 회 속에서 새로운 생존자로 ‘골드칼라’가 등장할 것이다. 골드칼라란 산업사회의 생산자를 지칭하던 블루칼라, 화이트칼라의 뒤를 이어 끌어나갈 생산자들을 지칭한다. 그들이 디지털 사회이 곧 지배계급으로서 수직 상승할 기반을 존재론적으로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블루칼라와 화이트칼라는 생산수단을 소유하지 못했기 때문에, 존재론적으로 이미 피지배계급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골드칼라는 디지털 사회 발전의 핵심 자원인 지식과 정보를 직접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지배계급으로의 상승을 처음부터 보장받고 있다.

사이보그와 골드칼라가 지배자인 디지털 사회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하위문화는 어떤 형태를 취할까? 이는 새로운 문화코드로 등장하고 있는 ‘엽기(獵奇)’ 문화에서 그 단초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엽기란 사전적 의미로 ‘기괴한 사건이나 사물에 흥미를 느껴 사냥하듯 쫓아다닌다’는 뜻으로 주로 비정상적이거나 변태적인 행위를 지칭할 때 사용되던 단어이다. 하지만 요즈음 이 단어는 ‘자극적이고 톡톡 튀는 유쾌한 파격’을 담은 문화적 코드를 의미한다. 따라서 엽기문화는 일상이 주는 따분함과 경직성을 파괴하고자 하는 감수성을 엽기적 행동양식으로 스타일화한 하위문화적 속성을 띄게 된다.

엽기문화가 가지고 있는 하드코어적인 이미지 탐닉 현상은 이미 곳곳에서 발전된다. 가령 영화(텔미섬딩), 광고(TTL), 팬시용품(괴물가면, 똥을 형상화한 제품), 문신이나 피어싱 등은 엽기문화가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수용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열린 공간으로 인식되는 사이버스페이스야말로 엽기성이 최대로 발현될 수 있는 공간이다. 이미 사이버스페이스 안에서는 흉찍한 사진들만을 모은 사이트, 쌍소리를 거침없이 내뱉는 ‘욕 대화방’, 사이버 감옥에 혐오하는 사람을 가둬놓고 고문을 가하는 사이트 등이 폭발적인 조회건수를 이루고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디지털 사회에서 나타난 문화적 특이성은 실로 다양하다. 이렇듯 다양한 문화적 특이성들은 특히 정신/신체, 실재/가상 등과 같은 근대적인 이분법적 경계를 허문다는 의미에서 각각의 의미들을 재정립하도록 만든다. 특히 위계적 종속관계의 하위 층에 있었던 신체와 가상에 대한 존재 규명은 근대적 사고틀을 깨고 새로운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는 의미에서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사실 사이보그의 등장과 엽기문화는 모두 인간 신체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디지털 사회에서의 포섭·저항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하지만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문화적 특이성 자체가 대안적 사회를 기획하는 작업과 바로 연결될 수 없음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가령 우리는 어릴 때부터 ‘슈퍼맨’, ‘아톰’, ‘짱갗, ‘600만 불의 사나이’를 보면서 정의의 사도로서의 사이보그에 대한 꿈을 키워왔다. 하지만 성인이 되어서 본 영화 ‘터미네이터’는 여지없이 우리의 어릴 적 꿈을 여지없이 깨뜨렸다. 또한 감시 카메라, 스팸메일, 트래킹 프로그램, 해킹 프로그램 등은 우리의 사적·공적 영역이 24시간 감시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디지털 감시망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일상적으로 우리를 감시하는 하나의 디지털 문화로까지 인식되고 있다. 이제 디지털 사회에 대한 유토피아적 혹은 디스토피아적 전망과 우려는 단지 문화예술 영역에서 다루는 소재만으로 생각할 수 없게 되었다. 새로운 지배자로서 사이보그의 재림을 기원할 것인가, 아니면 아날로그 사회로 회귀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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