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호 [性혁명에서부터 비아그라까지] 영화 속의 性

영화, 섹스 그리고 <거짓말>

안재석 / 영화학 석사 2차

영화관의 어둠은 익명성을 보장한다. 또한 영화관의 어둠은 “몽상의 실체 자체일 뿐만 아니라 확산된 ‘에로티시즘의 색채’이기도 하다”는 바르트의 표현처럼,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영화 관람 경험의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성(性), 즉 섹슈얼리티는 영화의 탄생기부터 중심 테마 중의 하나가 되어왔다.

  은밀함을 훔쳐보려는 관객의 호기심과 ‘금기’라는 제도적 장치 사이에서 오는 간극은 영화의 상업성과 연관되는 지점이다. 성을 주제화하고 상품화함으로써 영화는 쾌락의 도구로 기능하게 되고 관객의 몽환적 최면 상태는 성적 유희라는 ‘부도덕한’ 반응을 낳게 된다. 무성영화 시대에 미국에서 나온 이른바 ‘도색영화 stag film’는 본격적인 상품으로서의 포르노 영화의 효시를 이루었고, 여성의 나체 묘사를 본격적으로 상업화한 1960년대의 16mm ‘나체영화 nudies’로 ‘육체의 판타지’는 그 절정을 이루었다. 하지만 성과 관련된 영화라는 것이 모두 이러한 상품적 측면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니다. 파졸리니, 베르톨루치 그리고 오시마 나기사 같은 좌파성향의 감독들은 성을 통해 사회규범 자체를 의문시하는 사회전복적 성격을 지닌 영화들을 지속적으로 만들어냈다. 이들 영화는 관객을 환상으로 오인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관객의 몰입과 감정이입을 철저하게 배격하거나 깨뜨림으로써 ‘거리를 두게’ 한다.

  최근 ‘표현의 자유’와 ‘사회윤리의 침해’라는 팽팽한 대립 구도 속에서 만신창이가 되어버린 장선우 감독의 <거짓말>은 이러한 ‘거리두기’를 시도한 영화이다. 영화의 대부분이 두 남녀의 성행위로 가득차 있지만 영화를 보는 내내 성적 쾌락은커녕 처절한 기분이 들 정도다. 카메라는 그저 지켜볼 뿐 그들의 행위를 미화하지 않는다. 주인공들의 사도-마조히즘적인 성도착 역시 우스꽝스럽게 그려져 몰입을 방해한다. 인터뷰의 삽입과 제작 과정의 노출, 영화를 철저하게 단락짓는 삽입자막의 사용 등 서구 정치적 모더니즘 영화에서 즐겨 사용한 ‘거리두기’ 장치들이 포함되어있는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 영화가 공식적으로 관객과의 만남을 차단 당한 탓에 이러한 장치들은 빛을 잃었다. 성인남자와 미성년 여자와의 성 관계, 미풍양속을 저해한다는 ‘과다 노출’의 문제, 원작자의 구속 등 관객의 호기심이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버린 것이다. 호기심은 호기심을 부르고 ‘포르노’라는 이상한 소문을 증폭시키며 마치 지하로 유통되 관객들과 만나고 있다. 현 제도의 파행적인 등급체계로 볼 때 이 영화는 그렇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포르노’가 되어야할 운명이다. 영화가 개봉된다고 하더라도, 화면을 가득 매울 마스킹 처리는 관객들에게 묘한 성적 환상을 불러일으킬 것이고, 여기저기 잘려진 만신창이의 영화는 거짓말 같은 세상에 대한 풍자를 우스꽝스러운 쾌락의 도구로 만들어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영화에서의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어야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외설과 예술을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만드는 제도적 장치는 창작자의 의도와는 상관없는 뜻밖의 상업성을 파생시킬 우려가 있는 것이다. 제작자를 스타로 만들어버린 <노랑머리>의 경우가 이를 잘 입증해 준다. 그렇다고 <거짓말>이 ‘예술영화’라는 성급한 결론은 내리고 싶지 않다. 그것은 관객의 몫이며, 타인에 의해 수정되지 않은 원본 그대로 보여졌을 때 내려질 수 있는 판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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