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0.12.9 수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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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기획] 미친,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
안혜숙 편집위원  |  ahs1182@cauo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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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호]
승인 2006.02.25  18:5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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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친, 새로운 상상력의 세계

소설의 엔진이 바뀐다




미친, 새로운 태양. 잊지 마라. 진화의 역사는 미친, 새로운 세계의 엔진, 태양을 바꿔온 역사야. - 조하형, <키메라의 아침>


세상에 떠도는 얘기란 본시 듣는 사람의 편의에 따라 이야기꾼의 솜씨에 따라 가감과 변형이 있기 마련이다. -천명관, <고래>




이윤설 /  문예창작학과 석사 수료







사람이나 소달구지가 같은 길을 오고가던 시절을 지나, 이 땅에 자동차가 처음 등장한다. 시간이 갈수록 자동차가 폭증하고 상습정체가 시작된다. 충분히 확보된 도로와 제대로 정비된 교통법규가 필요해진다. 그 시절이 지나자, 자동차 자체에 관심이 쏠리기 시작한다. 차별화된 디자인과 개성적인 인테리어, 소비계층에 맞는 다양한 차종이 필요해진다. 그 시절이 지난다. 그 다음은, 도로가 아니라 인도로 달리는 주행법, 프로펠러를 달거나 삼각돛을 드높인 자동차들이 등장한다. 그들은 황당함으로 좌회전, 기발함으로 우회전, 낯섦으로 유턴한다. 아니 도로를 떠나 날아오르거나 거침없이 물 속으로 진수한다. 이름하여, 낯선, 미친, 새로움 이라는 신호등이 켜진다.  
소설은 허구이며 상상력의 소산이다. 상상력이란 소설이 과거 거기에서 지금 여기 혹은 미래 저기로 날아가, 초시간적으로 읽히게 하는 엔진이다. 물론 그 엔진은 시간이 지나면 낡기 마련이고 새롭게 진화된 엔진을 필요로 하게 된다. 지금 우리 소설에도 상상력이라는 엔진을 교체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고 있다. “한때 역사성과 현실성에 무게중심이 놓이더니, 내면성과 미학성으로 강조점이 옮아가다가, 서서히 유희성과 이야기성으로 소설 서사의 중심이 이동”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최근 주요 문학상 수상작인 조하형의 <키메라의 아침>이나 천명관의 <고래>는 새로운 상상력의 징후로 부각되고 있다. 이들은 재현 서사 중심의 통상적인 소설 규범에서 자유롭다. 기존의 대중장르 문학으로 치부되어 온 미래사회, 과학적 상상력을 도입하는가 하면(키메라의 아침), 이미 근대소설에서 용도 폐기된 변사조 구어체로 온갖 전설, 신화, 민담 동화, 무협 등을 뒤섞어 연금술사의 가마솥처럼 낯설고 이질적인 소설을 주조한다(고래).


거기에는 지구의 미래 사회, 디스토피아의 노인촌 이라는 세계가 있고, 신인류와 구인류 온갖 변종 잡종의 신비동물이 산다. 대가리가 빨갛고 전신에 가시가 돋아난 뱀들, 인간의 심장과 간을 몸속에 지닌 원숭이들, 생선비늘로 뒤덮인 멧돼지들이 인간을 공격하기도 한다(키메라의 아침). 또한 하늘을 새카맣게 할 만큼 수많은 벌을 몰고 다니는 벌치기가 있고 백킬로그램이 넘는 거구의 여자아이나 하늘을 나는 코끼리, 거대한 양물을 가진 반편이, 천하 박색이 산다(고래).


이런 기기묘묘한 상상력이 주는 것은 우선 낯섦이다. 낯설다는 것은 우선 두려움과 함께 호기심이라는 양가적 감정을 유발한다. 그래서 <키메라의 아침>의 ‘미친, 새로운’ 이라는 프롤로그는 작가의 말을 대신하고 있는 듯 보인다. 마치 ‘이제부터 내가 하는 이야기는 당신에게는 낯선 것이 될 것이다. 당신은 그것에 대해 미친 것이라는 거부감을 느낄 것이지만 새로운 것이라는 데엔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낯선 상상력에 대한 호기심을 지속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서는 속도가 필수적이다. 멈춰서서 이게 뭐지 라는 의문에 빠질 기회를 주지 않아야 한다.
<고래>의 작가가 수상 인터뷰에서 “화자인 이야기꾼을 등장시킨 건 말하자면 놀기 좋은 무대를 만들고 싶어서였습니다. 어느 정도 파격도 가능하고, 구라도 치고, 능청도 떨고, 또 그러면서 백프로 믿을 수도 없고, 그래서 의심은 가지만 어쩔 수 없이 그 말솜씨에 점점 빨려들고”라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익숙한 것으로부터의 결별, 그것은 분명 현재의 시점에서 낯섦에 대한 반응, ‘미친’을 의도한 전략이며, 속도의 쾌감과 아울러 ‘새로운’이라는 형용사를 염두한 것이다. 즉 이 낯섦이 미친 것이든 새로운 것이든 징후적이라는 것은 거부할 수 없다.  


물론 비판적 평가도 따른다. ‘그래서 무엇을 말하려고 했던 것이냐’ 라는 의문은 공통된 비판점이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속도를 따라 책장을 넘긴 뒤, 단 한줄도 기억나지 않는다거나, 뭔가 빠진 듯한 허전한 독후감. “거의 무목적적으로 보이는 <고래>의 이야기들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키메라의 아침>에서도 작가는 악몽과 같은 허구의 세목을 시시콜콜히, 그리고 파편적으로 재현하는 재미에 빠져서 좀 더 깊이있는 통찰을 보이는 데에는 이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어쨌든 그들은 자유자재 종횡무진 자기만의 주행법으로 등장한 새로운 자가운전자임에는 틀림없다. 혹자는 저건 운전이 아니야, 저건 자동차가 아니라 비행기라고 불평할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들은 착실한 도로교통법 준수를 벗어나 미친 듯이 무한질주하는 차를 발견했을 때처럼 상상력의 쾌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머잖아 이 새로움도 또 다시 낡은 것이 될 것이다. 이야기꾼의 숙명은 ‘그래서 그 다음은, 그래서’ 라는 주문에 끊임없이 부응해야하는 것이다. 새로워야 하는 것이 아름다워야 하는 것, 선해야 하는 것, 진리여야 하는 것보다 어쩌면 소설가의 의무인지도 모른다.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누가 알겠는가. 상상력이란 우주와 같아서 무한하고 끝을 알지 못하는 미지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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