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4호 [대학원신문사 하반기 평가] ②바깥에서 본 대학원신문
2003-03-09 02:12 | VIEW : 6
 
164호 [대학원신문사 하반기 평가] ②바깥에서 본 대학원신문

변방의 지식공동체를 넘어서기

박진철 / 연세대학원신문 편집장

아마도 거울은 ‘전쟁기계’(10월17일자)의 가장 위험한 적수가 아닐까. 거울은 ‘차이의 생성’이 아니라, 언제나 자기자신에게로 되돌아와 동어반복만을 중얼거리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아닐까. 다른 곳에서 대학원신문의 편집일을 하는 내게 ‘중앙대학원신문’은 비판적 시각을 갖고 평가하는 대상이기에 앞서 질투와 시샘 혹은 동병상련의 대상일 따름인 듯하다. 차이는 내가 만드는 신문과 ‘중앙대학원신문’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익명으로 또는 3인칭으로 또는 집합적인 존재’로서 대학원신문이라는 ‘바둑알’을 어떻게 놓을 것인가라는 질문 속에서 생성돼야 하는 문제일 듯하다.어쩌면 망상일지도 모르는, 차라리 그렇기를 바라는 어떤, 오래된 두려움이 있다.

대학원신문이 어느 정도 소화되고 있을까. 일개 대학의 경계 내부에서 유통되면서도, 인문학전공자가 아닌 이들에게 이 신문의 ‘언어’는 너무 난해하고 낯선 글이 아닌가. 인문학적 지식인제도의 철저한 경계 내에서, 이미 유통된 언어들을 다시금 반복하고 있는 것이 아닌 대학원신문의 고유성을 어떻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신문 자체보다는 신문이 자리잡고 있는 지식체계의 전반적 지형이 가진 문제에 가까운 이러한 불안들을 관통하는 해결책 대신, 차라리 몇 가지 희망사항들을 그려본다. 그것은 주위에 도사린 수많은 함정들에도 불구하고 변방의 지식제도와 지식인공동체라는 한계를 넘어서는 문제와 관련된 듯하다. 너무 많은 얘기 대신 하나의 이야기와 정서를 만들어내기. 8개 면, 이 중 학내사안에 대한 보도면이 3개 면인 것을 제하면 5면은 어느 정도 고정코너가 자리잡고 있다. 각 코너의 어느 정도 완결된 글들은 다른 코너의 글들과 분리돼 있다. 넘어서기에는 모호한 불안함이 뒤따르지만, 지식의 백과사전적인 편집 대신 1회의 신문 전체를 하나의 색깔로 뒤덮을 수는 없을까. 아직 대학원신문은 너무 적게 편협한 것이 아닐까.유통되는 지식을 새롭게 배치하기. 지식인 논쟁, 신자유주의, 이슬람에서의 전쟁, 한류와 조폭신드롬 등. 이번 학기에 주요 화두가 됐던 이들 담론과 경합하는 일은 하나의 책무처럼 보이며, 그것은 이들 담론 한 가운데로 들어가 얽힌 실타래를 풀어헤치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들 논쟁에 ‘이미’ 개입한 주체들이 동일한 주장을 반복할 수 있도록 하나의 미약한 지면을 빌려주는 대신 그리고 이 담론의 그물 속에 스며들어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대신, 이 논쟁의 전체 지도를 새롭게 그려보거나 재배치하기 또는 새로운 정서를 발생시키기(9월12일자). 필자를 발굴하기.

주변의 안면있는 친구들과 여러 지면에서 자주 보게 되는 지명도 있는 필자들이 아닌, 아직 그늘에서 깊이를 탐색하는 지식인들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침묵하는 이들이 있다면, 같은 말인 듯 싶지만 이들에게 할 말이 있다면, 그들을 침묵하게끔 하는 것은 무엇일까. 아직 세상에 나오기를 원하는 많은 주장들이 있다고 믿기, 그 묻혀 있는 주장들에게 새로운 통로를 만들어주기.피로서 글쓰기. 비판적 담론은 학문적 담론의 외양을 가져야 한다는 지식의 룰을 극복하는 것은 지식인제도를 넘어서는 글쓰기의 전략일 수 있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비판적 문화담론에서의 실험은 학적인 것과 비학적인 것의 완고한 이분법을 다시 생산한 것으로 귀결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대학원신문의 강박적인 ‘(비판적) 아카데믹 저널리즘’은 모순어법이었나. 아직은 아닐 것이다. 외려 첨예한 경계선 위에서의 희망적인 실험의 장이라 믿고 싶다. “나는 피(血)로 쓰여진 것들만을 사랑한다. … 나는 책읽는 게으름뱅이들을 증오한다.(10월31일자) 대학원신문 일반에 대한 희망사항에도 불구하고 ‘중앙대학원신문’이라는 거울은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하나의 신문을 만들기까지의 그 잡다한 공정에도 불구하고, 신문을 만드는 일 밖의 ‘대학원생활’이라는 완고한 일상을 괄호친 듯 싶게 2주일에 한 번씩 신문을 만들어내고, 더구나 그 위에 편집자들이 직접 쓴 글의 흔적과 열정까지 느껴지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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