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영화, 내게 말을 걸어봐!

박현선 / 편집위원



한국영화계에는 몇가지 변하지 않는 단어가 있다. 심의라든가 직배같은 단어들이 해가 바뀌어도 변함없이 한국의 영화인들이 가슴을 누른다면, 정반대의 의미에서 독립영화라는 단어는 변화를 거부하는 고집스러운 단어다. “나! 독립영화야!”라는 당돌한 슬로건을 외치며 한국 독립영화인들의 한마당인 인디포럼이 어느덧 3돌을 맞이했다. 지난 달 29일(금) 황신혜밴드의 공연과 더불어 김성숙 감독의 <동시에>를 시작으로 6월 5일(금)까지 코아아트홀에서 80여편의 단편 영화들이 비경쟁으로 관객들에게 선보인다. 부천 판타스틱영화제의 개최가 불투명하고 부산 국제영화제의 예산이 축소 집행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대규모 상업행사가 아니라 인디와 언더 진영의 연대행사가 메마른 영화문화계에 해갈의 물꼬를 터주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젊은 영화인들은 왜 독립영화를 고수하는 것일까? 독립영화라는 것은 일반적인 관습과 지배적인 영화작법에 반항하고, 이를 통해 작가영화 또는 영화적 실험의 가능성을 넓히려는 제작방식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한국영화사를 살펴보면 이와 같은 저항적인 의미의 소규모 영화제작은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어 왔다. 80년대의 사회정치적인 투쟁 속에서 그것은 작은영화, 민족영화, 혹은 단편영화 등으로 불리었다. 그때 그것은 영화를 통한 거의 유일한 반항의 방법이었다. 공권력에 의한 탄압의 역사는 80년대라는 상황 속에서 이 영화들이 이루어낸 성과가 어떤 것인지를 설명해준다. <파업전야>의 상영을 저지하기 위해 경찰이 헬기를 띠웠다든가, 전교조의 투쟁을 지지하는 <닫힌 교문을 열고>의 상영장을 전경들이 둘러쌌다든가 하는 얘기는 이 영화들이 시대의 문제를 관통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리고 시대가 바뀌어 90년대가 왔고, 그 변화에 따라 이들 영화를 지칭하는 이름과 그 정의도 조금씩 변했다. 최근 영화계의 논의를 살펴보면 이 영화들을 둘러싸고 대개 독립영화라는 이름으로 수렴되고 있는 추세다. 그러나 독립영화를 둘러싼 논의를 살펴보면 아직도 그 정의가 정리되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독립영화라는 것이 원래 경제적인 의미에서 출발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제도권과 독립영화계의 구분이 그리 명확하지 않다. 결국 독립영화를 규정하기 어렵다는 것은 아직도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가 소속집단과 준거집단을 동일하게 만들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속에서도 독립영화계의 힘은 약진하고 있다. 비디오가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시작하고, 80년대를 지나 90년대 문화적 변화 속에서 보다 개인적인 말걸기가 가능해진 상황을 기반으로 다양한 주제의식들이 표출되고 있음을 ‘인디포럼 98’에서 확인할 수 있다. 이번에 출품된 작품들은 극영화 37편, 애니메이션 16편, 다큐멘타리 4편, 그리고 일본 독립영화의 산실인 피아영화제 8편과 10만원 비디오 영화제 수상작 8편 등이다. 작품의 편수를 보자면 ‘지금-여기’에서 만들어진 한국의 독립영화 대부분이 상영되는 셈이다. 그러나 심의 문제는 여전하다. 다큐멘타리 부문에서 서울영상집단의 <변방에서 중심으로>, 푸른영상의 <세발 까마귀>와 <22일간의 고백>, 노동자 뉴스제작단의 <우리들의 사계> 등이 심의 문제로 출품을 철회하였다.

80여편에 이르는 작품들을 살펴볼 때, 먼저 눈에 뜨이는 것은 현재를 고민하는 패러다임들이 변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보다 개인적인 주제와 극영화적인 스타일이 주류를 이루는 이 작품들의 기원은 80년대에 대한 봉인된 기억과 90년대로의 시대적 변화에 익숙해진 감성에서 비롯되고 있는 듯하다.

그러한 흐름을 생생하게 느껴볼 수 있는 것이 제작기금 마련을 위해 특별상영된 <로자를 위하여>, <탈 순정지대>, <둘 하나 SEX>의 부분편집본이다. 이지상이라는 같은 모체에서 나온 자식들이 어떤 모습으로 시대인식을 달리 하는지 그 폭을 가늠해볼 수 있다. 특히 <둘 하나 SEX>는 현재의 독립영화들이 보여주는 방향이 시대적 대표성을 획득할 수 있는가를 실험하는 기회이다. 사실 16m로 제작된 독립장편영화들은 이전부터 존재해 왔지만, 독립제작을 통해 완성될 이 장편 영화가 기성의 상업영화에서 얼마만한 가능성이 있을지 기대해볼 만하다.

‘인디포럼 98’의 또 다른 즐거움은 일본에서 초청된 8편의 작품들이다. 일본영화에 대한 관심이 활발한 지금 일본의 젊은이들이 소규모의 예산으로 제작한 이 작품들은 현재 일본 사회의 심경을 피력하는 영화들인 동시에 일본영화가 현재 나가고 있는 한 방향을 추측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그 감성과 영화언어의 측면에서 일본과 한국의 유사성보다는 얼마나 다른 지를 드러내준다.

독립영화를 보고 있으면 그 거친 입자에서, 그 투박한 이질성에서 언제나 생생하게 풍겨나오는 건강함에 놀라게 될 것이다. 곧바로 파고들어가는 사고의 순박성. 어느 관객이 감독과의 인터뷰에서 묻는다. “감독님께서는 일부러 거친 화면을 의도하셨나요?” 감독초년생은 쑥스럽게 웃으며 “아니요, 저도 좀더 매끄럽게 찍고 싶었는데 찍다 보니까…”라고 대답한다. 그러나 그 최초의 투박함은 주류 영화에서 사라져가는 실험정신과 대항의식으로 언제든 새롭게 다듬어질 수 있는 그런 종류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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