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정책수립, 현실위기 극복으로 21세기 전망의 단초마련

지난 4월 18일 홍대 앞에서 본지 필자는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의 양현미씨와 직접 만나 구체적인 사안에 대해 질의할 수 있는 자리를 가졌다. 문화 담론의 공적 영역에서 통일문화연구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양현미씨와의 이번 인터뷰는 자생적 대중문화양상이 문화정책으로의 적극적인 개입과 맞물리지 않고는 더 이상 견고한 뿌리내리기를 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진행되었다. 지금까지의 기획을 바탕으로 한국문화 활성화를 위해 정책적 개입을 연구할 때다.----------<편집자주>


 


▷안녕하세요? 직접 만나서 이야기할 수 있게 되서 참 반갑습니다. 서울대 미학과 졸업후 현재 홍익대 박사과정에 재학중이시고 문화정책개발원에서 활동을 하고 계시지요.

 


“예, 저도 문화정책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군요. 한국문화정책개발원은 문화관광부 산하의 정책연구기관입니다. 저희 연구소는 문화정책, 예술진흥, 문화산업 등의 영역에 관련된 정책을 연구하고 있지요.


기본적으로 다가올 21세기는 ‘문화의 세기’라고 규정될 수 있겠죠. 20세기 후반에 나타난 세계화, 정보화가 사회문화의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내고 있는 데다가, 그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는 사회를 주변적인 위치로 내몰면서 국제사회의 역학관계를 재편하고 있지요.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사회발전의 원동력이 더 이상 경제나 정치가 아니라, 문화에, 한 사회가 갖고 있는 창조력의 질과 양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미래산업의 총아라고 하는 컴퓨터 산업의 원동력이 하드웨어가 아니라 프로그래머들이 만들어내는 소프트웨어에 있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어요. 이런 견지에서 문화는 개인적 차원에서 삶의 질을 완성해주는 요소일 뿐만 아니라 성숙한 시민사회의 기반이며 더나아가 21세기 사회발전의 원동력인 창조적인 인재양성의 토대라고 할 수 있지요.”

 


▷앞으로 진행될 문화정책의 기조에는 21세기의 민족문화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할 장기적인 관점이 구체적으로 부가될 것 같습니다. 지난 1997년 10월 20일 문화체육부가 <문화비전 2000 보고서>라는 보고서를 건의했다고 하는데요.


“<문화비전 2000보고서>는 새로운 문화의 패러다임에 입각하여 우리문화를 근본적으로 혁신하기 위한 6가지 정책과제를 제시하고 있어요. 창조적 인간을 위한 문화교육의 확대, 문화예술 창작에 대한 지원 확대, 문화산업의 육성과 산업의 문화화, 지역문화의 활성화, 통일을 지향하는 민족문화의 확립, 한국문화의 세계화가 그 정책과제들이지요. 그리고 이러한 과제를 실현해나가는 데 있어서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뿐만 아니라 기업, 학교, 교육자, 학부모, 새 세대의 젊은이들 그리고 모든 일반시민의 참여가 중요함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현재와 같은 IMF국면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서 작성된 것이었기 때문에 지나치게 낙관론적으로 보이는 감이 없지 않습니다.”


▷확실히 요즘의 IMF체제는 문화의 다양한 영역에 큰 파급을 미치고 있습니다. 90년대 중반까지 대중문화가 활기를 띠는 가운데 문화담론의 팽창도 가속화되었지만 현재 문화의 향유가 사치의 주범으로까지 몰리고 있는 것은 우려가 되는 부분입니다.


“IMF는 우리에게 일시적인 경제위기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고도성장의 영예를 가져다주었던 지난 반세기 동안의 경제개발정책이 실패하였음을 의미합니다. 90년대초부터 이미 사회발전 전략의 전면적인 수정과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지적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책적으로 수렴하지 못한 결과이지요.


사회일각에서는 경제가 어려운데 무슨 문화냐고 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인식 속에 함축되어 있는 경제발전논리를 뒤집지 않고는 우리 사회의 위기를 한발짝도 넘어설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왜 사는지, 인간답게 사는 게 무엇인지, 무엇이 올바른 것인지 경제가 가르쳐줄 수 있습니까? 목표를 향해 빨리 달려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목표가 진정 우리가 추구할 만한 목표인지 판단하는 것은 가치의 문제이며, 그것은 문화만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늘 빡빡한 회사업무에 치여살다가 한편의 소설을 보면서 인생을 되돌아보고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를 되돌아보는 시간을 결코 낭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IMF로 인한 문화예술계의 위기는 얼마전 떠들썩했던 출판계의 위기에서도 보았듯이 급박한 처지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문화예술계의 위기를 현실적인 문제로 파악하는 것이 시급한 것 같은 데요. 우선 문화정책의 방향을 뚜렷히 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분위기는 간과하기 어려울 텐데 어떻습니까?


“사실, 저희 연구소에서 실태파악을 위해서 지난 2월11일부터 18일까지 문화예술인 300명을 대상으로 를 실시하였습니다. 그 조사결과를 한번 이야기해보는 것이 흥미로울 것 같군요.


대다수의 문화예술인들(65.7%)이 IMF체제로 인해 관객수가 줄어들 것이라는 우려섞인 전망을 하고 있었습니다. 문화예술인들은 ‘IMF체제하에서 문화예술계의 시급한 과제’로 해외시장에 적극적으로 진출(24.0%)하고 과시적·일시적 행사를 자제(23.3%)하며 외국작품의 수입을 지양(19.7%)하고 예술작품의 유통구조를 개선(19.3%)해야 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이러한 인식에 기반하여 ‘차기정부의 시급한 문화예술 부문 과제’로 문화예술관련 재원 확보(29.7%)를 비롯하여 창작의 자유를 보장하기 위한 법률개정(19.7%), 관련 정부산하기관의 개편(18.0%) 등을 지적했습니다. 특히 ‘문화예술관련 재원확보’와 관련해서는 “2000년까지 정부예산의 1%이상을 문화예산으로 확보하겠다”고 한 대통령의 공약에 대해 대다수(83.3%)가 IMF체제와 관계없이 실현되어야 한다는 의견이었지요.


그리고 ‘일본 대중문화개방’에 대해서는 개방의 불가피성을 인정해서인지 7할이상이(가요 72.3%, 영화 74.7%) 단계적으로 개방해야한다는 인식을 보여주었습니다.


IMF체제에서 문화예술인들이 직면한 위기를 헤쳐나가는데 있어 현 단계의 중요한 과제가 문화의 중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를 넓혀나가면서 문화계의 체질개선을 위한 구조 조정을 이루어내는 것으로 드러난 셈이죠.”

 


▷사회적 공감대와 구조조정의 필요성이 중요하게 부각된다고 말씀하셨는데, 그렇다면 김대중 정부는 이런 부분을 어떻게 파악하는 것으로 이야기할 수 있을까요?


“새정부는 문화정책의 기조를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고 밝히면서 부문별로 여러 가지 공약사항을 제시했습니다. 구체적으로 다 열거하기는 어렵고 이전 정부와 차별된다고 여겨지는 몇 가지만 살펴보면, 우선 검열을 철폐하고 규제위주의 법령을 개정하여 예술창작활동의 자율성을 강화하겠다는 것입니다. 관주도의 심의기구를 민간 심의기구로 이관하겠다는 것으로 이는 문화예술계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지요. 둘째, 문화예산 1%를 확보하겠다는 것입니다. 셋째, 대도시 및 중산층 위주의 문화복지정책을 여성, 노인, 장애자, 농민, 노동자 등 소외계층을 위한 정책으로 확대해나가겠다는 것입니다. 넷째는 취임사에서 강조했듯이, 민족동질성 회복을 위한 남북문화교류의 확대입니다. 다섯째는 공보처에 속해있던 방송과 언론을 문화부에 귀속시킴으로써 그동안 부재했던 대중문화정책을 가능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외에 지역문화의 활성화, 문화산업에 대한 정책적 지원, 전통문화의 보존과 현대화 등 여러 가지 공약이 제시되었습니다.


문제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행정체제의 정비일텐데 이 점에서는 애초의 공약과 달리 문화부 대신 문화관광부가 된 점에 대해 문화계에서는 실망감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현재는 문화관광부 조직개편에 이어 산하단체장의 임명과 개편단계에 있기 때문에 어떤 판단을 내리기는 이르다고 봅니다.”

 


▷대안적 문화정책을 위해서는 국가의 공적인 문화정책과 일상대중적인 문화실천 간의 쌍방향적인 개입을 생성해야할 것인데요, 두 부분간의 상호소통의 통로는 어떻게 마련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문제 중 하나는 건강한 토론문화가 결여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자유로운 의견의 제시, 상이한 이해관계의 조율 등 민주적인 소통의 문제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뿐만 아니라 정책결정에 있어서도 중요합니다. 1980년대 문화지형 안에서의 소통방식이 소수의 일방적인 의사결정과 이에 대한 강력한 저항과 비판이었다면, 2000년대를 바라보는 오늘의 문화지형 안에서 이제는 정책수립자와 문화계 양쪽에 공히 좀더 성숙한 대화의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민간부문에서의 심도있는 문화정책연구와 정책제안들이 보다 활성화되기를 바랍니다.”

 


▷이런 견지에서 90년대 활기를 띤 문화비평과 문화연구를 되돌아보게 되는데요, 문화담론의 다양화와 대중화 속에서도 이것이 선명한 제도비판과 대안제시로까지 이어지지 못한데 대해서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사실 문화정책연구를 위해서는 현행 제도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우리사회에서는 제도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기초적인 공개자료들, 이를테면 연감, 통계자료 등을 구하는 것조차 쉽지가 않습니다. 민예총에서 올 초에 문화정책연구소를 재구성하면서 발표한 <새정부 문화정책의 기본방향>이나 <문화정책은 왜 필요한가>는 그런 견지에서 실증적인 자료의 부족이 눈에 띄기는 합니다만, 90년대 문화연구자들이 대안적인 문화정책연구에 참여한 최초의 성과였다는 점에서 주목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외에도 작년에 결성된 문화정책학회, 문화경제학회 등 학계에서의 문화정책연구나 예술행정학과나 문화정책학과의 신설 등은 민간부문 문화정책연구의 활성화를 위한 단초들이라고 여겨집니다.


이들의 활동이 중요한 이유는 문화계의 일선에서 겪는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정책의 실효성에 대한 피드백 작용을 해줄 뿐만 아니라, 정책수립 과정에서 각 분야에서 정말 필요로 하는 정책들을 명확히 하고 논쟁의 지점을 명료화함으로써 보다 민주적인 제도를 만들어나갈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들의 의견을 수렴할 수 있는 민주적인 소통절차를 개발하고, 민간부문의 정책연구를 지원하며, 정책연구에 필요한 자료들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부 쪽의 과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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