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비평] 스타만들기와 대중매체
유진 박, 자유를 연주하는 스타상품?

 

김희정 / 한국음악 석사1차



바네사 메이의 현란한 연주 모습을 눈여겨 본 자라면, 어느 날 혜성처럼 나타나 머리를 뒤 흔들며 온 몸으로 바이올린을 켜는 한 젊은 남자를 알고 있으리라. 신춘음악회에서, 열린음악회에서, 한여름 재즈페스티벌에서, 사물놀이패 공연에서 접신의 경지에 든듯한 그의 모습은 도대체 저 놈이 누구야? 류의 호기심을 유발한다. 그가, 유진박이다. 요즈음 그는 자유를 연주하는 바이올린 천재, 생산을 위한 파괴적 정신의 소유자, 즉흥적인 소재를 자유자재로 요리할 만큼 뛰어난 음악가, 클로스오버 뮤지선 등으로 한창 ‘뜨고’ 있다.

“난 아티스트야”란 반말의 당당한 예술가 선언을 듣고 있노라면 치기어린 예술가에 대한 일종의 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진정한 예술가가 그렇게 방송에 얼굴을… 하는 내 주위의 평가 또한 그의 음악과 음악하는 행동을 일치시키지 못해서 겪는 ‘곤란’을 반영한다.

여기서 나는 우리가 그의 천재성이나 음악성을 논함에 있어서 보다 신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선 음악성이라는 것을 평가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고, 또 역사 속에서 음과 소리로 살아 있는 수많은 대가들의 음악에 대한 평가조차 계속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러니 첫째 텔레비전이나 콘서트홀에서 그가 연주하는 음악이 어떠한 파격과 감동, 갖은 현란한 기교를 보여주는 것으로 그를 속단하기는 힘들다.

그에 대한 기왕의 여과없는 칭찬은, 그가 여덟살에 이미 줄리어드 음대 예비학교 장학생으로 인정받았다는 것과 무엇보다도 원래 재즈같은 대중음악가가 아닌 순수음악을 전공했다는 것에 근거한다. 여기에 그가 미국에서 성장한 미국시민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어떤 신비감을 지닌 아직 젊은 남자라는 사실은 동양권의 신비한 소녀 바네사 메이와 견줄 만하다. 그래서 한국의 모든 신문이나 잡지, 매스컴에서 그의 모습은 뚜렷하게 부각된다.

현재 우리 대중음악계의 현실은 10대 위주의 댄스음악에 음악성 있는 가수, 하다못해 가창력이라도 가진 가수도 그리 많지 않다. 즉 진정한 대중예술가가 없다. 그 와중에도 나날이 다양성을 추구하고 고급화된 음악적 기호를 가진 청중은 늘어난다. 따라서 그들을 충족시키기 위한 노력에서 유진박은 또 하나의 상품화된 스타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의 음악적 소양이나 창조성마저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단순히 스타만들기에만 급급한 한국대중매체의 문화의식이다. 대중매체는 대중문화 발전을 말할 때 항상 이중적 위치에 있다. ‘기여’와 ‘상품화’. 오늘 유진박에 관한 나의 우려는 후자를 택한다. 스타라는 이미지가 곧 상품과 연결되고 그 상품은 돈과 직결되는 경향, 요즈음 대중매체는 대중문화의 선도와 전파라는 본래의 본분을 망각하고 그를 보다 더 상품화하고 있다. 그 결과 일반대중들은 그의 독특한 음악에 대한 자신의 평가를 할 수 없는 수동적 ‘매니악’이 되고 있다. 그의 음악적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단순히 그의 상품적 이미지에 매료되어 그의 음악을 듣는 ‘순둥이’ 매니아가 늘어나는 것이다.

다행히 그는 이런 시장 매커니즘에 대한 자각이 뚜렷해 보인다. 각종 인터뷰에서 그는 비슷한 말을 되풀이하고 있다. “예술가는 세상을 변화시켜야 한다. 마치 과학자처럼… 나는 그냥 앉아서 구경하는 ‘쇼’말고 함께 ‘경험’하는 문화를 보여주고 싶다.”

나는 이 고백을 그가 6줄의 전자 바이올린을 통해 무한한 열정으로 표출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그가, 정말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음악의 위대성을 사람들에게 나눠주었으면 싶다. 현재 그는 국악의 리듬과 사물놀이, 재즈를 혼합한 새로운 양식을 만들겠다는 각오인 것으로 알고 있다.

많은 재능있는 예술가들이 예술생산 구조의 메커니즘에 좌절하고 절망하는 것을 볼 때 그에게 거는 바램은, 아직은 그 자신이 한층 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자본주의 음악 시장이 특히 그에게만 관대할 리도 만무할 것이므로. 온통 우울한 소식 투성이인 시대에 ‘뜨거운 위로’이거나 ‘서늘한 휴식’으로 다가오는 젊은 음악을 나는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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