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용준/영어영문학과 강사

  대학원을 연구터전으로 삼아 학위과정을 마치고 후학들을 가르치는 입장에서 들락거리는 십수년의 세월동안 대학원 건물의 외양은 거의 바뀐 바 없지만, 활용의 측면에 있어서는 적잖은 변화가 생긴 것은 굳이 “강산도 변한다”는 사족을 달지 않아도 명백한 사실이다. 수많은 투쟁의 역사를 통해서 현재의 공간이 만들어진 것에 대해 아직은 오체불만족 중 두어 가지 정도만 나아졌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라도 제대로 쓸 수 있는 것은 다행이 아닌가. 

  10여 년 전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당시 우리 원우들이 연구를 위해 사용하던 공간은 수업할 곳을 제외하고 지하 1층에 제한되어 있었다. 지금은 지상층으로 올라와 있는 총학생회와 대학원 신문사, 학술연구단체협의회도 그 공간에 있었고 전산실은 지금보다 꼭 절반의 크기로, 거기에 지금 좌석이 마련되어 있는 전산실 우측의 연구공간은 학군단 학생들의 전용강의실로 활용되었을 정도로 연구를 목적으로 하는 대학원생들의 연구공간은 열악했다. 당시만 해도 연구회들이 지금처럼 많지 않은 덕택으로 고시원 단칸방만 못한 연구 공간을 두세 연구회가 공유하더라도 서로의 발전을 소망하면서 대화할 수 있는 거리는 더 가까워질 수 있었지만, 덜렁 책상 하나에 캐비넷 두 개가 전부인 공간에서 열악한 시설 속에 옷을 껴입고 주야를 경주하던 모습은 지금은 오히려 낯설다.

  세기말을 앞두고 지금에 근접한 공간이 생겨났는데, 비록 연구공간은 아닐지언정 의사소통의 창구역할을 하던 원총과 신문사, 그리고 구석 쉼터에 버티던 복사실 공간이 올라옴으로 인해 연구공간의 숨통은 어느 정도 트이게 되었다. 결국 1층의 남은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채 대학원이 두 개의 공간과 지하를 차지하게 되는 기이한 모양이 되어있지만, 지하 공간이 대학원 연구회와 연구자들이 온전하게 쓸 수 있는 공간으로 재편되었으며, 대중성과 공공성을 아우르는 측면에서의 외연상 확장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그 좁은 공간을 통한 만남에서, 서로의 현실과 미래를 공유하면서 희뿌연 담배연기를 뿜어내며 격렬한 논의를 벌이던, 혹은 생면부지의 원우들이 처음으로 공감대를 형성하며 함께할 수 있는 분위기가 만들어져 있던 그곳에 대한 낭만적 향수를 꺼내는 것은 무의미할 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현재의 외연적 공간의 확장이 원우들끼리의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만들기 보다는 형식적인 만남이나 토론장 이상의 의미를 갖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현재의 이런 외연의 확장은 보다 많은 원우들이 충분히 연구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명분아래 공공성 확보의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여전히 많은 원우들은 수업공간, 혹은 컴퓨터를 이용하는 일시적 공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다. 이제는 이 공간이 단지 단순한 학습연구를 위한 공간이 아닌 토론의 공간, 항상 열린 공간으로서의 대학원 연구공간을 상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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