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ulturindustrie/cultural industry)

  우리 생활에서 ‘문화’라는 말은 정확히 규정하기 어려울 만큼 여러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문화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예술, 문학 영역은 현대에서 ‘영화산업’, ‘음악산업’, ‘출판산업’ 등의 ‘문화산업’이란 이름을 띄고 존재한다.
  현대사회에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쓰이는 ‘문화산업’이라는 말은 프랑크푸르트학파의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의 저서 『계몽의 변증법(1944)』에서 처음 등장하였다. 그러나 이 두 저자가 사용한 ‘문화산업’이라는 말은 지금의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의미와는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그들은 문화산업을 대중의 의식을 조작할 수 있는 수단으로 보았으며, 그것의 밑바닥에는 자본이 있다고 보았다. 어떻게 보면 어울리기 힘들어 보이는 문화와 산업이라는 두개의 단어가 자연스럽게 함께 하게 된 데에는 분명 현대 자본주의의 특성이 전제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본의 지배는 단지 물질적인 것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신적인 것에도 다다른다. 아도르노에게 있어서 대중문화는 이런 의미에서 예술이 아닌, 산업으로 보였다. 때문에 아방가르드적이지 않은 예술은 문화산업에 종속될 수 있는 위험이 있다고 생각했으며, 그가 난해하고 엘리트적인 예술만을 인정했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이러한 데에 있다. 유태인이었던 이들은 독일에서 나치즘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했다가 그곳의 대중문화를 접하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대중들의 비판의식을 빼앗고 자본에 포섭시키는 역할을 하는 것을 보며, 그 영향이 유럽에서 일어나고 있는 파시즘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게 된다. 이러한 비판적 시각에서의 대중문화를 일컷는 말로 ‘문화산업’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된 것이다.
  오늘날은 아도르노의 시대와는 많은 차이가 있다. 예술, 문학 작품의 영향이 대중에게 광범위하게 확산되는 것을 염려하며 문화와 산업을 구분하려고 노력할 수 있는 시기는 지났다.
TV 속의 패션아이템, 스타 한 명만으로도 사회 전체의 문화가 바뀌는 식으로, 모든 상품이 ‘문화화’되고 있다. 물론,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문화산업의 시대’를 살고 있는 오늘날의 우리에겐 어둡기만 하다. 그러나 과거에 비해 셀 수 없이 늘어난 문화산업의 기재들 속에서, 경제의 동력이 되기 위해 이용되는 문화가 진정으로 살아있는 문화일 수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속에서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떻게 ‘동일화’되지 않는 ‘주체’로서 살아갈 수 있는지 그들의 시대보다 더 긴장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