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로마신화의 붐이 사그라들지 않는다. 수능을 대비하는 학생들의 필독서 중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기도 하고, 너도나도 학창시절 읽다 포기한 신화를 다시 잡은지 오래다. 하지만 제우스, 비너스, 아폴론 등 쟁쟁한 신들의 위세에 주목받지 못한 신이 있으니 대표적으로 헤르메스가 있다. 신화에서 나그네의 수호신이자 상업, 도둑, 운동경기의 신으로 알려진 헤르메스의 주요 업무는 신과 인간 ‘사이에서’ 신의 말을 전하는 전령이자 해석의 능력을 가지고 인간에게 지식에 이르는 방법을 전달하는 역할이다.

하지만 우리는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신화 속 여러 신들이 인간보다 조금 더 특별한 능력과 감성을 소유는 했으나 인간의 백태와 지나치게 닮았다는 점을 생각할 때 헤르메스도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인간처럼 시기와 질투, 실수와 오류를 연발하는 게 신이라면 헤르메스가 인간에게 전하는 ‘말씀’을 무슨 근거로 믿을 수 있겠는가. 가령 인간에게 벌을 내린다는 제우스의 말을 헤르메스가 (일부러) 깜빡했다면, 혹은 태어나자마자 아폴론의 소를 훔친 간계의 머리를 가지고 말씀을 곡해하여 전한다면 인간은 헤르메스를 불신하기 이전에 신을 믿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은 신의 말씀을 직접 들을 수 없기 때문이다. ‘말씀’을 수용할지 여부는 일단 헤르메스를 거쳐야만 가능하다.

철학은 여기서 발생하지 않았을까. 과거의 철학자들이 진리의 소리를 의심한 것은 아니었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지는 궁금하지 않았을까. 아마도 이런 의심이 시간을 타고 흘러흘러 진리를 부정하거나 진리의 목소리에서 권력을 발견하려는 후기근대 철학이 새어나왔는지 모른다. 그래서 우리들의 저 유명한 비트겐슈타인은 진리가 헤르메스의 말 속에 있기보다 일상언어 속에 숨겨져 있다고 보았고, 데리다는 ‘동일성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극단으로 우리를 몰고 가지 않았던가. 하지만 우리는 그들 이후 신뢰할만한 가치기준을 잃어 멍하니 주춤거리는 자신을 보고야 말았다. 그래서 다시 턴(turn), 헤르메스의 말을 들어보려는 이들도 많다. 자, 이제 정식으로 물어봐야하나. ‘헤르메스야, 널 믿어도 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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