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물질, 환경호르몬의 위협


산업화가 어느 정도 진행되고 경제규모가 커진 지금,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터지는 생활·환경 관련 사안들로 인해 국민들에게 심각하게 어필한 단어가 있으니 대표적으로 내분비계장애물질, 일명 환경호르몬이 있다. 이것이 장애아동의 출산이나 ‘희귀병’을 유발한다고 하여 국민들로부터 관심을 받기 시작한 것은 쓰레기 소각과 관련한 환경단체들의 부단한 노력과 고엽제 후유증 환자들의 실상이 정치권의 핵심이슈로 떠오른 덕분이라고 하겠다. 이제 소각장 뿐 아니라 살충제, 컴퓨터, 의약품 심지어 컵라면 용기에 이르기까지 검출소식이 전해지면서 국민들의 보건과 생물학적 존립에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번 과학면은 보이지 않는 검은 물질인 환경호르몬에 대해 심층분석하고자 한다.

청산가리보다 1만 배 독한 다이옥신

내분비계장애물질은 주로 잔류성이 강한 화학물질이 인체의 내분비계(호르몬계)에 작용하여 호르몬의 분비를 차단, 과잉·과소 분비토록 하여 인체의 정상적인 발육을 방해하고 생식기의 이상현상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는 물질을 말한다. 일상적으로 일본에서 언론보도용으로 표기한 ‘환경호르몬’이라는 용어가 흔히 사용하고 있으나, 정식명칭은 내분비계장애물질(Endocrine Disruptors)이다. 지난 3일 환경부는 독성이 청산가리의 1만배에 달하는 대표적 환경호르몬인 다이옥신의 국내배출실태인 ‘다이옥신 국가배출목록’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이 목록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기 중 다이옥신 배출량은 일본의 약 70%인 1219~1246.6g-WHOTEQ(WHO 기준 독성환산농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아직까지 확인되지 않은 채 환경호르몬의 ‘혐의’가 있는 것으로 알려진 화학물질만 해도 10만 종이 넘는다는 점에서 이번 정부의 발표는 시작의 의미보다는 남겨진 과제를 확인시켜주는 데 더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다이옥신 외에도 대표적인 환경호르몬으로 지적되는 것이 지금은 규제대상이 된 DDT와 변압기절연유로 사용되었던 PCB, 소각장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인 퓨란, 공업용 세제에 함유되어 논란이 되었던 노닐페놀, 음료수캔의 코팅제 원료인 비스페놀A, 플라스틱 가소제로 쓰이는 디에틸헥실프탈레이트(DEGP) 등과 같은 화학물질이 있다.

이런 화학물질이 세계적인 관심을 받은 것은 96년 미국의 생태학자인 테오콜본이 <도둑맞은 미래(Our stolen future)>라는 책에서 일부 화학물질이 생체 내분비기능 변화를 가져온다는 사례를 소개하면서부터이다. 이어 일본과 덴마크 등 연구기관에서 20대 남성의 정자수가 40대에 비해 월등히 적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되기도 했다. 국내에서 가장 반향을 일으킨 사례는 월남참전군인들과 그 자녀들의 희귀질환 사례이며, 최근에는 여수 앞바다에 서식하는 고동들의 자웅동체현상이 보도되어 충격을 던져주었다. 가뜩이나 국민보건과 출산율 저하의 공포를 예견하고 있는 정부로서는 당황스러운 사례가 아닐 수 없었을 것이다. 더구나 이 환경호르몬이 위험스러운 것은 인체에 축적되어 수세대까지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일단 체내에 들어오면 원상회복이 안된다는 점 때문이다.

환경호르몬을 피하는 방법?

이러한 환경호르몬은 쉽게 분해되지 않으며, 잔류가 수 년간 지속되고, 인체 등 생물체의 지방 및 조직에 농축되는 성질이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일단 인체에 흡수된 환경호르몬은 독특한 화학적 구조로 인해 생체호르몬과 비슷한 기능을 수행한다. 그 대표적인 메커니즘으로 모방과 봉쇄가 있다. 모방이란 유사 호르몬 물질이 마치 진짜 호르몬인 양 행세하며 진짜 호르몬을 대신해서 몸 속 세포물질과 결합해 비정상적인 생리작용을 하는 경우를 말한다. 임산부들이 유산방지제로 복용하여 물의를 일으킨 DES의 부작용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봉쇄란 가짜 호르몬이 진짜 호르몬을 대신해 세포물질과 결합함으로써 진짜 호르몬이 할 수 있는 공간을 빼앗는 경우를 말한다. 몸 속에 들어온 DDT의 변이 물질로 인해 남성호르몬의 작용이 봉쇄되면서 성기가 위축된 플로리다 아폽카 호수의 수컷 악어들이 그 예이다.

현대를 살면서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울 수는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그 위험을 최소화하는 몇 가지 실천방식을 소개하고 있다. 먼저 환경호르몬이 축적되는 것으로 알려진 동물성 지방을 가급적 피하고 야채나 곡류, 과일이 풍성한 식단을 택한다. 전자렌지를 쓸 때는 유리나 자기용기를 사용하며, 손을 자주 씻어 계산기나 가구 등에서 증발하는 합성화학물질의 피해를 줄이는 것도 방법이다. 어린 아이들의 장난감은 환경호르몬 발생이 적은 나무나 섬유류의 제품을 사용하고, 인스턴트 음식을 줄이는 것이 필요하다. 유기농산물 섭취도 빠지지 않는 방식 중 하나이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들은 적더라도 비용을 유발한다. 환경마크가 부착된 상품은 다른 상품에 비해 가격이 비싸고, 상대적으로 경제적 부담을 느끼지 않는 계층에게 접근성이 부여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의 광풍, 자연재해의 증대와 더불어 민중들의 삶이 더욱 팍팍해지는 현대사회의 비극적 단면이자 인간의 인간에 대한 재앙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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