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동현 / 연세대 사회발전연구소 전문연구원
 

20세기 후반 오랜 억압과 침묵의 틀을 깨고 자신을 표현하기 시작한 소수집단의 주체로서의 등장과 단일문화라는 근대적 고안물이 해체된 자리에 나타난 다문화적 현상은 ‘정체성의 정캄라는 새로운 문제설정을 던져주고 있다. 또한 근대 정치를 틀지어 왔던 사적/공적 영역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정체성의 문제는 정치의 핵심적 계기로 등장했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새로운 사회운동의 구호는 개인적 차원으로 환원될 수 없는 정체성의 문제를 전면에 부각시켰다. 이에 따라 기존 해방의 정치 혹은 이해(interest)의 정치가 포함할 수 없었던 새로운 주제들이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 민족, 인종, 계급, 종교, 성 또는 성적 취향 등 보편이라는 이름으로 동화될 수 없는 차이들이 부각되고 또 그것을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렇듯 주변집단 및 다양한 하위문화의 증대, 새로운 정체성들의 출현은 예전의 단일하고 안정된 정체성의 존재를 뒤흔들고 있다. 말하자면, 다문화적 상황은 우리 시대의 조건이 되고 있으며, 기존의 정치적 지형을 뒤바꾸어 놓고 있다.

차이의 정치와 그 딜레마

근대적 정치는 자유롭고 평등한 주체로서의 개인을 존중하고 보장하는 정치적 목표, 즉 똑같은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보편적 권리를 위한 투쟁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역설적으로 시민이라는 경계 속에 다양한 차이들을 배제하여 온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에는 “동등한 대우를 약속하는 대신에 특수한 집단의 정체성과 문화, 가치를 철회하도록 하는” 보편주의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차이의 정치는 단지 ‘차별받지 않을 권리’ 및 제도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아니라, 차이를 ‘차등적 대우’의 기초로 삼을 것을 요구하면서, 다양한 집단 및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보장책과 비전, 존중과 인정을 요구한다. 소수집단 운동은 지배적 문화와 질서 속에서 주변화되고 훼손된 자신의 정체성을 치유하고 되살리고자 한다. 사람들은 이제 타자의 눈과 말을 빌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시선과 목소리를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고 평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는 곧 자신의 진정성(authenticity) 실현을 추구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급진주의 여성운동의 경우 그동안 남성 지배문화에서 부정적 낙인이 가해졌던 여성성을 찬양하고 그것을 새로운 가치 평가의 잣대로 삼을 것을 주장했다. 흑인운동 역시 흑인으로서의 ‘기억’, 경험과 차이의 의미에 주목하여, 본연적 과거를 의미하는 아프리카의 상징을 끌어내기도 하고, ‘검은 것이 아름답다’라는 구호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금 자리매김했다. 동성애 운동도 커밍아웃을 계기로 드러난 그들 자신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동성애를 긍정적인 시각으로 재조명했다. 이렇듯 차이의 정치는 자신의 주변적 정체성에 대한 새로운 의미와 가치 부여를 통해 기존 사회의 지배질서에 도전하는 계기로 자리 잡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주변집단은 자신의 차이를 드러내는 과정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본질적 차이와 불변적 속성을 가진 존재로 가정하면서, 자칫 자신의 경험, 기억, 주장 등을 특권화하고 스스로 정당화하면서 또 다른 배제의 체계를 만들어 낼 위험에 빠져들 수도 있다. 예컨대, 희생자라는 공통성을 바탕으로 직접적인 동일시를 통해 구축된 공동체란, “모든 여성은 같다, 모든 흑인은 같다, 모든 동성애자는 같다”는 새로운 동일성의 논리를 작동시킨다. 또한 차이의 정치는 모든 가치와 의미를 자신만의 ‘진정한’ 경험에 위치시킴에 따라, 자기 입장과 위치에 근거한 정치는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을 선험적으로 보증한다는 잘못된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다. 이렇게 볼 때, ‘차이’란 맥락에 따라 전복적 힘이 될 수도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지배적 담론의 재생산 계기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것이다.

차이의 정치에서 내놓는 진정성의 요구와 단순한 다원주의 원리로는 정체성의 정치에 내재된 이중적 문제, 즉 보편성과 특수성, 차이와 인정의 문제 등을 해결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 관점은 정체성의 구성 과정에서 개입하는 권력관계를 간과함으로써, 모든 정체성들을 고무하고 부추겨야 할 긍정적인 것으로만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이와 인정의 문제를 넘어서

최근 정체성의 정치학은 반본질주의적 사고를 첨예하게 보여주고 있다. 차이의 정치가 정체성이 형성될 수 있는 근거와 토대를 발견하고 이를 기반으로 한 정치를 추구하는 반면에, 포스트모던 정치는 정체성을 미리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끊임없는 의미구성의 과정으로 규정한다. 이것은 차이와 인정의 문제를 넘어서는 새로운 문제설정을 던져주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동등한 존재로서, 또는 가치있는 존재로서 인정받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무엇으로서 인정받는갗의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바바(H. Bhabha)는 “소수집단(minority)이란 주어진 특정 집단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기존의 질서와 가치를 문제화하고 재구성하는 공식적인 기억의 ‘틈’들 사이에서 나오는 복수적이고 예견할 수 없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따라서 이들에게 정치적 실천이란, 기존의 사회상태에서 결정적이고 구조화된 의미를 내포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는 부정적(negative) 의미로 사용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자칫 모든 정체성들을 허구(fiction)’라고 주장함으로써 모든 정치를 거부하는 것으로 귀결될 위험이 있다. 단지 이름뿐인 ‘명목론적’ 정체성으로 정치적 실천을 얼마만큼 동기화할 수 있는지가 의문시된다. “누구도 ‘누구’일 수 없는 상황에서는 누구나 옳다”는 논리가 되고 만다. 말하자면 어떤 정체성 주장이 지배와 불평등의 사회적 관계를 방어하는 데 뿌리하고 있으며, 어떤 정체성 주장이 그러한 관계에 도전하고 있는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구호가 자칫 ‘정치적인 것은 개인적인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변질될 위험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문제로서 정체성의 정치

최근 한국에서도 이른바 문화전쟁, 즉 좌파와 우파의 문화정치 사이, 세계화와 민족전통 사이, 혹은 신세대 등장과 관련한 새로운 갈등이 벌어지는 가운데, 정체성이라는 말이 떠돌고 있다. 가족과 사회의 해체를 얘기하는 보수주의자들의 강압적 어투에서나, 이와는 반대로 계급의 해체, 민족 주체성의 말살을 우려하는 좌파 이론가들의 떠들썩함 속에서, 우리는 확고하고 단일한 그 무엇을 애써 붙들려고 하는 욕망을 발견한다. 이렇게 표현된 정체성의 위기라는 말 속에서 정체성의 문제제기를 부담스럽게 여기며 매우 위험스런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 본질주의적 인식론을 포착할 수 있다. 이때 정체성의 위기란 지배적인 사회적 가치나 문화에 대한 위기로도 읽힐 수 있다.

다른 한편 대중문화에 대한 들뜬 관심과 신세대 하위문화에 대한 지식인들의 경탄과 환호 속에서도 정체성의 문제는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지식인들이 이들을 반문화, 마이너리티라는 저항적 이미지로 채색하고 있는 사이, 민주주의와 정체성 정치와의 관계는 잊혀진 문제가 되어 버렸다. 사실 그들의 전복적 힘은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스스로 주변화하는 시선 속에 자신의 정체성을 마냥 붙들고 있는 차이의 정치의 또 다른 딜레마를 발견할 수 있을 뿐이다.
정체성의 문제는 그것이 위치한 맥락(context)의 문제와 떨어져서는 생각할 수 없다. 맥락으로부터 추출된 정체성에는 오직 죽은 기표만이 난무할 뿐이다. 순응과 저항의 갈림길은 주체와 맥락의 역동적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런 의미에서 정체성의 문제는 민주주의의 문제를 새롭게 재규정하는 과제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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