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주영 / 민중의료연합 사무처장

지난 9일과 11일 제주특별자치도법(이하 제주특별법)에 대한 국민의견수렴을 위해 제주와 서울에서 공청회가 개최되었다. 제주특별자치도법은 영리병원 허용, 외국교육기관 설립 등의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사회복지의 지방이양, 공무원 비정규화 시도 등 무수한 쟁점을 담고 있기 때문에, 일찌감치 민주노총과 노동사회단체들의 반발을 사왔던 법안이다.
이미 반대의견을 냈던 제주도민들의 의견수렴은 반영되지도 않았고 무조건 연내 입법화만을 목표로 밀어붙이는 정부와 제주도는 행정절차법도 지키지 않은 채 공청회를 강행했다. 짓밟혀진 민주주의에 분노한 도민들은 결국 제주특별자치도 공공성강화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를 중심으로, ‘제주특별법 철회, 도지사 퇴진’구호를 자연스럽게 외치고 있다. 결국 참여정부에 ‘참여’는 없음을, 국민의 참여를 가로막고 반대의견은 아예 듣지 않으려는 정부의 본질이 여지없이 드러나고 말았다. 더불어 이 법안이 말로는 주민자치를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기업과 자본에게 특혜’만 주는 특별법임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영리병원 허용, 건강권이 파탄난 미국식 의료체계를 답습할 뿐

의료연대회의, 범국민교육연대, 사회양극화국민연대 등의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기자회견을 통해 의료와 교육 부문에서 심각한 문제점을 가진 제주특별자치도법을 반대하고 비민주적 입법과정을 밟고 있는 정부를 규탄했다.
그 중에서도 국내영리병원 설립허용은 가장 큰 쟁점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법인형태의 병원은 비영리법인만 허용된다. 지금 병원들은 전국민이 예외 없이 내는 건강보험료로 운영되며, 이런 병원들의 이윤추구를 적정한 선에서 제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민간병원이라도 병원에서 벌어들인 수익을 그 병원의 의료사업에만 쓸 수 있도록 한 것이 이를 위한 비영리병원 규정이다. 그러나 영리병원은, 비영리병원과 달리, 병원 외부로 이윤배당을 할 수 있는 병원이며 운영의 제일 원칙이 이윤추구가 된다.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의료비가 폭등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영리병원의 허용은 ‘병원주식회사’의 등장을 말하는 것이며, 사실상 기업과 같은 방식으로 주주의 이익과 기업주의 이윤동기에 따라 움직이기 때문이다.
정부는 영리병원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면 의료비 폭등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하지만, 오히려 영리병원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것은 국민의 건강보험료를 병원을 운영하게 될 재벌과 기업에게 갖다바치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제주도의 병원협회는 협회차원에서 영리병원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 제주도의 공공병원 병상비율이 20%인 현실에서 병원의 상당수가 영리병원으로 전환되면, 비영리병원도 이에 영향을 받을 수 밖에 없고 결국 제주도민은 의료비 폭등의 고통을 겪을 수밖에 없다.
또한 제주도에서 일단 영리병원을 허용하게 되면, 다른 지역의 병원들도 자연스레 영리병원 허용을 요구하게 되고 전국적인 영리병원 허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결국 제주도에서의 영리병원 허용은 전국적인 의료비폭등과 이에 따른 국민건강보험의 재정파탄을 불러오는 조치이다. 뿐만 아니라 제주특별법안은 이에 더해 의료기관의 환자 알선유치행위를 인정하는 등 상업적 의료의 극단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다. 그야말로 ‘의료’를 산업으로 육성하려는 정부의 노골적인 의도가 담긴 법안이다. 돈이 없는 자는 병원에도 가보지 못한 채 죽어가며, 의료보험에 들지 못한 수많은 국민들을 가진 미국식 의료체계를 답습하게 될 것이 분명하다.

오직 기업자유화와 시장화만 있는 제주특별자치도법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것이 의료만이 아니며, 제주도에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제주특별법은 교육, 사회복지, 토지, 환경에서 온갖 자유화조치를 포함하고 있으며 공무원 고용유연화, 기업특혜조치 등 수많은 문제점을 갖고 있다. 또한 이러한 법안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이미 전국화되는 과정을 밟고 있다. 
비정규직이 800만명을 넘어서고 빈부격차가 날이 갈수록 최악으로 치닫고 있는 와중에서, 참여정부에서 국민참여를 배제한 채 내놓은 것이란 제주도민들의 건강과 생존을 담보로 한 의료시장화 정책, 영리병원 허용뿐이다. 2005년 4월 현재, 건강보험 지역가입자의 23%가 3개월 이상 보험료를 체납하여, 건강보험 혜택 중지 대상자로 전락하였으며, 보험료 체납세대의 규모는 계속 증가 추세이다. 의료 양극화의 극단이라 할 수 있는 미국조차 공공병상 30%를 확보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전체 공공의료 비율이 10%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이런 때, 영리병원 허용을 말하는 것은 다수 국민의 건강은 내팽개친 채, 소수 기업들의 이윤만을 보장해주고 돈 있는 사람들의 생명만을 보장해주겠다는 말에 불과하다 .
최근 미국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미국의 개인 파산의 절반이 질병과 의료비 때문인 것으로 나타났다. 연간 200만명에 달하는 규모다. 이것이 바로 영리의료의 첨단을 달리고 있는 미국의 의료실태이며, 현 정부가 지향하는 미래의 한국의료의 모습이다. 이런 식이라면 ‘의료’가 국민을 질병으로부터 지키고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을 파산과 절망으로 몰아넣는 ‘사회적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제주특별자치도법’과 관련 의료산업화 정책들은 모두 당장 철회되어야 한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