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착제 이야기

주식시장이 불황의 바닥을 치고 활성화되고 경제는 살아난다는데 여전히 가계지표상 소득수준은 감소하고 있는 요즘, ‘입에 풀칠’이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증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다. 과학면에서 웬 경제타령이냐고 타박하지 마시라. 오늘 향기나는 과학이야기의 주제는 ‘풀’이다. 잡초의 동격인 풀이 아니라, 뭘 붙일 때 쓰는 풀(glue) 말이다. 이를 위해 좀 돌아가는 수고가 필요하다.

<허생전>을 보면 허생의 부인이 바느질 품을 팔면서 ‘입에 풀칠한다’고 말한다. 왜 하고 많은 것 중에 풀을 칠하는 것이 생계를 간신히 이어간다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을까. 혹자는 죽도 먹기 어려운 시절, 고구마나 감자 등을 넣어 묽게 끓인 풀을 먹을 수밖에 없었다는 데서 착안하여 이 말을 이해하는가 하면, 또 어떤 이는 보릿고개 시절 입을 놀릴 수 있는 음식을 먹지 못해 입이 붙어버리는 것을 두고 ‘입에 풀칠하랴’라는 말을 떠올린다. 의미야 어찌됐건 우리들 문화권에서 풀은 배고픔과 궁핍을 표현하는 단어이자, 오래 전부터 무엇을 붙이는 데 사용하는 물질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문구풀의 대변신

이 짧은 지면에 풀의 모든 역사와 이야기들을 할 수는 없는 노릇. 화학기호 같은 어려운 건 잠시 접고 대표적인 접착제들을 살펴보는 데 만족하자. 풀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무엇이냐는 신문사 자체 설문조사결과 고체풀(일명 딱풀)이 1위에 선정되었다. 왕자풀로 불리던 물풀이 전국 초등학교 책상 위를 종횡무진 섭렵할 즈음, 어느 날 홀연히 나타나 국내 풀 업계를 일시에 평정하고 초딩 뿐 아니라 일반 직장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것이 바로 고체풀이다. 독일의 헨켈이라는 회사에서 최초로 상품화한 고체풀의 기세에 물풀의 반항도 거셌으니, 딱풀이 따뜻한 날에는 녹아버린다거나 거미줄 놀이를 더 이상 할 수 없다는 소문이 횡횡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뼈대있는 풀을 강조하며 ‘손에 풀 묻힐 날 없다’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낸 고체풀의 위력 앞에 물풀시장은 급속히 줄어들어버린 것이다. 문구 접착계의 패러다임 전환이랄까.
어찌됐건 우리들이 흔히 사용하는 접착제인 풀은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그에 따라 종류 또한 다양하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가구를 만들 때 아라비아 껌, 계란 흰자와 동물성 아교를 사용했고, 밀가루 반죽으로 파피푸스를 만들기도 했다. 우리의 한지도 닥나무 뿌리에서 추출한 닥풀을 넣어 닥나무의 섬유질을 뭉쳐 만든 것이다. 이후 답보상태의 접착기술이 1차 세계대전 이후 비행기나 배 제조에 사용하는 합판을 만들기 위해 카세인과 혈액 알부민을 사용하면서 조금씩 진화하기 시작했다.

접착제로 효용성이 있기 위해서는 응집력보다는 접착력이 강해야 한다. 다시 말해, 껌처럼 자신들끼리만 잘 붙는다고 해서 좋은 것이 아니라 피접착제의 표면이 서로 강하게 들러붙어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흔히 쓰이는 에폭시 접착제는 에폭시수지와 경화제가 각각 다른 튜브에 들어있어 사용할 때 이 둘을 잘 섞어야 하는데, 금속과 나무, 콘크리트, 유리, 세라믹스, 플라스틱 등 여러 가지에 좋은 접착제이지만 깨지기 쉽다는 단점이 있다. 이에 환경친화적이면서 접착강도가 높고, 접착이 어려운 재료의 접착, 내수성, 내후성, 내열충격성 등 장기사용 안정성의 향상, 성질이 다른 이종재료의 접착, 절연성, 유전성 및 도전성 등 기능성 접착제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다양한 접착제의 세계
녹말이 주로 사용되는 천연물계 접착제와는 달리 보다 널리 쓰이는 합성접착제는 처음에는 액상이다가 나중에 고화되는 경우 떨어지지 않으면서 접착제 자체가 파괴되지 않는 고분자이어야 한다. 이밖에 고무류 접착제도 자주 볼 수 있는데, 요소-포름알데히드 접착제는 합판 제조에 사용되며, 페놀-포름알데히드 접착제는 선박 및 세간 조조와 자동차 브레이크 라이닝 제조에 쓰인다.
순간접착제를 빼놓을 수는 없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지하철 상인들의 인기상품이었던 투명하고 맑은 액체인 순간접착제는 사실 액체 자체로는 아무런 접착력도 갖지 않는 화합물에 불과하다. 그러나 이 액체가 공기 중 수분과 반응하면서 접착력이 큰 고분자를 만드는 화학반응을 한다. 순간접착제로 사용되는 물질은 주로 2-시아노아크릴산메틸이라는 화합물이며, 2-시아노아크릴산 에틸이나 부틸을 사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잘 알다시피 강력한 접착력이 있는 대신 접착부분이 깨지기 쉽고 피접착제를 파괴하거나 열과 수분에 강하지 못한 단점이 있다. 명심할 것은 이런 화합물은 “어린이들의 손에서 멀리 보관”해야 한다는 점이다.
접착제는 분명 우리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재료임에는 틀림이 없다. 구두나 양복 등 생활용품에서부터 산업전반에 이르기까지 환경과의 친화력을 보다 확보한다면 삶을 보다 편리하게 해 줄 것이다. 하지만 뭐니뭐니해도 우리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절대 떨어지고 싶지 않은 이와 영원히 붙여주거나 시간을 붙들어 매 줄 수 있는 마법같은 접착제가 아닐까. ‘나는 소망한다, 그런 접착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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