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카뮈의 <이방인>

이종찬 / 영어영문학과 석사과정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까뮈
<이방인>의 저자 알베르 까뮈
알베르 카뮈는 전후 프랑스가 낳은 대표적 작가로, 존재의 근원적 뿌리가 거세된 삶의 부조리함을 여러 작품들 속에서 형상화해낸 이다. 그 중에서도 어머니가 사망한 다음날 해수욕을 하고, 여자와 부정한 관계를 맺으며, 희극영화를 보러 가 시시덕거리는 주인공 뫼르소를 통해 삶의 부조리함을 묘사하고있는 그의 대표작 <이방인>은 오늘날 현대 유럽 문학의 정전으로 평가받는 작품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이 소설은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은 사실 등을 전혀 드러내고 있지 않다. 오히려 1942년 출간된 이 소설의 주인공 뫼르소의 묘사를 두고 나치 점령 하의 프랑스와 유럽에 대한 언급으로 읽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작품이 명백히 알제리를 암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카뮈의 일반적인 관심사는 유럽의 역사가 아니라 프랑스와 알제리 간의 현실적인 문제에 있었다. 알제리라는 지극히 ‘역사적’이고 ‘현실적인’ 지역이 카뮈의 소설이 그려내는 절박한 존재론적 고민 내지는 실존적 쟁점들에 가려져 뒷전으로 물러나버리고만 것이다. 하지만 여전히 그의 소설은 부조리한 ‘인간 조건에 대한 우화’로 읽혀지고 있으며, 뫼르소가 아랍인을 살해했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으로 묘사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지적했듯이 “카뮈는 프랑스의 우월한 지위를 확인하고 확고히 하면서, 통치권 확보를 위해 알제리의 이슬람교도들에게 100년 이상 행해온 군사행동에 대해 반박하지도 이의를 표하지도 않았”음에도 말이다.

알제리는 오랜 역사기간 오스만제국과 프랑스의 식민통치를 받아온 나라다. 1830년 7월, 프랑스는 알제리가 오스만제국의 지배로부터 벗어나 부족 간의 반목과 투쟁으로 혼란에 빠진 틈을 이용하여 알제리를 점령, 1843년에는 공식적으로 이 나라를 자신의 영토로 선언한다. 이후 프랑스는 강력한 동화정책을 통해 알제리를 프랑스화하는데 그 과정이 실로 가차 없었다. 원주민의 토지를 빼앗고 집을 차지한 뒤, 프랑스인 이주자가 그들의 관리권을 확보한다. 그리고 알제리인들을 몰아내고 그 자리를 유럽인으로 채운다. 원주민 인구는 감소하고 이주자 집단은 반비례하여 증가한다. 결국 프랑스가 알제리에서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동안 알제리인은 주변으로 내몰려 빈곤상태로 내몰리기에 이른다. 카뮈가 태어난 알제리의 몬도비 마을은 1849년 파리에서 이송된, 정치적으로 성가신 ‘적색’ 노동자들에 의해 세워진 포도주 재배 마을인데, 이 노동자들에게는 알제리 원주민에게서 빼앗은 토지가 주어졌다고 한다.

카뮈가 <이방인>을 집필하던 당시는 프랑스의 알제리 식민지화에 대항한 알제리의 길고도 처절한 저항 운동이 연이어 벌어졌던 시기다. 그는 프랑스와 알제리 간 투쟁의 분위기 속에서 살았으나 그것을 모른 체했고, 심지어 만년에는 알제리의 투쟁적인 이슬람교도 원주민을 제국주의적 언어와 이미지로 표현하며 알제리 독립을 위한 민족주의자들의 요청에 단호하게 반대했다.

“지금까지 알제리라는 나라가 존재한 적이 없다. …(중략)… 알제리의 프랑스인은 가장 강력한 의미에서 역시 원주민이다. 나아가 순수한 알제리인만으로 구성되는 알제리는 경제적 독립을 달성할 수 없다. 경제적 독립 없는 정치적 독립이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이방인>뿐만이 아니라 카뮈의 또 다른 작품 <페스트> 역시 아랍인의 죽음을 다루고 있다. 카뮈는 결과적으로 자신의 작품 속에서 프랑스의 우월성을 확인하고, 그것을 강화하는 가운데, 프랑스가 알제리 원주민들에 대항하여 전개한 1백여 년이 넘는 민족주의 운동을 논의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나는 반항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고 말하던 카뮈의 반항을 두고 우리는 흔히 ‘형이상학적 반항’이라 일컫는다. 이 반항의 외연을 형이상학적 차원에 가둬버린 것에서 카뮈의 독창성과, 동시에 그의 한계를 엿보게 된다. 물론 그의 또 다른 저서 <반항하는 인간>에서 형이상학적 반항과 더불어 ‘역사적 반항’을 언급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가 말하는 역사는 결국에는 ‘주관화된 역사’로 환원되고 말았을 뿐이다.

카뮈의 형이상학적 반항은 알제리 전쟁을 두고 조국 프랑스를 비판하면서 이념적으로 알제리를 지원한 사르트르의 태도와 비추어볼 때 크게 대조적이다. 부르주아적 향취가 느글댄다며 단호히 노벨상을 거부한 사르트르와, “작가는 오늘날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역사를 인종하는 사람들에게 봉사할 수 있다”는 말과 함께 노벨상을 수상한 카뮈의 상반된 면모를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문학의 참여를 주장하며 긴밀한 우정을 나누기도 했던 카뮈와 사르트르는 결국 1951년 카뮈의 <반항하는 인간>이 출간된 이후 소원해져 각자의 길을 걸어간다. 역사의 무의미성을 주장하면서 구체적 현실로부터 회피하려는 카뮈에 대한 실망과 분노 때문이었을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