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위의 불명예, 학위 없는 사람들의 명예로움

명예로운 일을 행한 사람에게 합당한 대우를 하는 것은 올바르다. 학문이 죽은 지식을 의미하지 않는다면, 현실의 명예로운 행동은 학문적인 성과만큼 대우받아야 마땅하다. 그런 의미에서 명예학위는 도서관이 아니라 생활현장에서 몸으로 앎을 실천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져야 마땅하다. 그리고 재산이나 권력처럼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권리와 달리 명예는 사회적인 관계 속에서 형성되는 지극히 인간적인 가치이다. 따라서 명예는 개인적인 욕심을 버리고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영광이고, 기억을 통해 전해지며 사람들의 길잡이 노릇을 한다.
한국의 명예학위는 “우리나라 학술과 문화발전에 공헌을 하였거나 인류문화 향상에 지대한 공적을 나타낸 자”에게 수여된다고 그 취지를 밝히고 있다. 그 문구만 보면 명예의 본래 뜻과 어울린다. 그러나 명예학위의 실제 수여현황을 보면 그 취지가 무색해진다.
2004년 9월 당시 국정감사자료를 보면, 지난 60여 년 간 전국 108개 대학은 총 3,073명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대학별로는 경희대 209명, 한양대 194명, 중앙대 170명, 연세대 153명, 고려대 133명의 순서를 보였다). 그리고 학위 수여자의 직업이나 경력을 살펴보면, 교육계 인물이 30.6%, 경제계 인물이 27.4%, 정?관계 인물이 23.3%로 나타났다. 흔들리는 공교육이나 심각한 빈부격차, 비민주적인 정치관행 등 한국사회의 어떤 면을 보더라도 이런 사람들이 명예박사학위를 받을 근거는 없다. 학술과 문화발전을 가로막는데 앞장섰던 사람들이, 가장 불명예스러운 직종의 사람들이 명예학위를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사실 명예박사학위 1호가 얼마 전 동상철거 논란을 빚었던 맥아더이고 국내 최다 수여자가 정주영 前현대그룹 회장이라는 점을 볼 때, 한국의 명예학위제도는 ‘권력의 장식물’, ‘지식과 자본의 결탁’이라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왔다. 그리고 이런 의도는 바로잡히지 않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더 노골적으로 드러나고 있다. 더구나 1996년부터 2004년까지 무려 1,200명의 명예박사가 배출되어 갈수록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올해 5월 삼성 이건희 회장이 고대에서 명예철학박사를 받으며 물의를 일으켰고, 10월에는 일본의 우익인사인 센 겐시쓰가 중앙대에서 명예문학박사를 받아 논란이 일었다. 중앙대측은 “대학원 위원회 15명의 심사를 거쳤으며 정치적 성향을 떠나 다도의 최고 권위자로서 평화활동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학위수여를 결정했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개운치 않다. 평화헌법의 개정을 외치는 일본 우익의 정치성향과 세계평화가 과연 어울릴 수 있는 건지, 야스쿠니신사에서 헌다식(獻茶式)을 거행하는 사람의 다도(茶道)가 세계평화에 어떻게 기여한다는 건지 평범한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당연히 명예학위를 수여하는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다. 올해 6월 태국의 국립 탐마삿대학은 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지도자로 2년 이상 가택연금 상태에 있는 아웅산 수치 여사에게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 그리고 올해 8월 전남대는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학사징계를 받고 대학을 떠났던 10명에게 명예졸업장을 수여했다. 전남대는 “학생들에게 정의로운 삶과 공동체적 삶의 미덕을 깨닫도록 하기 위해 늦었지만 학창시절 온몸을 던진 투쟁으로 민주화에 기여한 동문들에게 명예졸업장을 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처럼 명예로운 명예학위도 존재한다.
관건은 누가 어떤 과정을 통해 명예학위를 수여할 것인가이다. 현행 제도에 따르면 명예학위의 선정 권한은 전적으로 대학에 있다. 허나 명예학위가 진정 명예를 판가름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라면, 적어도 그 대학 내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소수의 인사들만 참여하는 위원회가 아니라 교직원과 학생 모두가 참여할 수 있고 토론으로 결정하는 위원회를 구성해야 마땅하다.
그리고 명예를 바라보는 시선도 바뀌어야 한다. 월간지 <콩반쪽>에 따르면, 1970년부터 2005년 4월까지 언론에 보도된 소위 ‘김밥할머니’들의 기부금이 약 1149억 원이나 된다고 한다. 이 분들은 식당, 김밥 장사, 삯바느질 등의 고된 일로 어렵게 모은 돈을 교육을 위해 기꺼이 기부했고 그 기부금 중 50%가 대학교로 들어왔다. 그런데도 이런 분들에게 대학이 명예박사학위를 수여했다는 얘기를 아직까지 들어보지 못했다. 진정 명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을 외면하면서 대학이 기득권층을 상대로 ‘학위장사’를 한다는 비판을 피할 수 있을까.
제도는 제대로 작동할 때에만 진가를 발휘한다. 지금처럼 로비로 변질된 명예학위, 건물이나 지원금을 대가로 팔리는 명예학위는 대학을 더욱더 불명예스럽게 만들뿐이다. 명예를 재는 잣대가 바뀌고 구성원들의 합의를 얻어낼 때에만 명예학위는 진정 명예로울 수 있다.

하승우/ 시민자치정책센터 운영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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