납이 든 중국김치 파동이 급기야 기생충의 습격으로 쓰나미가 되어 전국을 몰아치고 있다. 언론에서는 국산과 중국산을 구별하는 법을 상세히 설명해주는가 하면, 중국산 김치가 싸다는 것을 느즈막히 안 업자들의 중국김치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는 보도도 심심찮게 들려오고 있다. 국산 배추와 고추는 앞 글자 떼고 금추가 되었고, 점점 서민음식 김치는 위생상으로나 재정상의 이유로 서민들과 멀어지고 있는 안타까운 시점이다. 그러나 배추로만 김치담그라는 법 있는가. 우리나라 김치는 수백가지가 넘는 재료로 담가도 유지되는 강인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하여, 사회적 이슈에 민첩하게 반응하는 것으로 정평난 본 과학면은 최근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김치를 다뤄야 한다는 압박에 몸부림치며, 김장의 핵심인 재료 절이기의 과학적 원리를 파파라치하고자 한다.

김치 종류는 많아도 절임은 하나

산업화되고 바쁘게 살다보니 수많은 김치재료의 종류도 배추나 무로 수렴되는 경향이 짙은 게 오늘날의 식탁현실이다. 그러나 이보다 훨씬 많은 맛난 재료가 김치로 활용되었으니 깻잎, 파, 연잎, 오이, 가지, 고구마순, 고구마줄기, 고춧잎, 고들빼기, 씀바귀, 갓, 돗, 민들레, 박, 호박, 감 등 헤아리기가 어렵다. 간단히 말하면 옛 선조들은 먹을 수 있는 식물성 재료라면 모조리 김치를 담가 먹었다는 말이다.
각설하고, 이러한 김치재료를 소금물에 넣으면 절여지는 이유가 삼투압 때문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이 알고 있다. 도대체 이 삼투압이 어떻게 작용해 재료가 절여지는 것일까. 배추의 경우 약 90%가 물이고 나머지는 탄수화물과 단백질, 비타민 등으로 이루어졌다. 배추의 물은 세포막 속에 담겨 있다. 세포막은 여러 화학물질 중에서 물만이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반투막의 독특한 구조로 되어 있다. 세포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세포의 활동에 필요한 여러 화학물질이 선택적으로 출입할 수 있는 특별한 통로가 있지만 세포가 죽으면 이런 통로는 모두 막혀버린다.
소금에 담근 야채에서 물이 빠져나오는 이유는 모든 분자가 철저하게 복종하고 있는 열역학 법칙 때문이다. 열역학 법칙에 따르면 온도와 압력이 일정한 상태에 있는 분자들은 모두 ‘편안한’ 상태로 옮겨 가려는 경향을 갖는다. 분자들은 에너지가 낮아지거나 또는 더 많이 흩어져 있는 상태를 편안하게 느낀다. 분자들이 얼마나 흩어져 있는가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다. 즉 일정한 온도와 압력에서 분자들은 작은 에너지와 큰 엔트로피의 상태를 좋아한다는 것이 분자 세계의 기본 법칙이다.

절이는 과정 속의 엔트로피

김장재료의 세포 속에 있는 물은 소금물보다는 비교적 깨끗하고 순수한 상태다. 소금물이 엄청나게 진하지 않다면 소금물이나 세포 속의 물분자의 에너지는 거의 비슷하다. 그러나 소금과 함께 섞여 있는 물분자는 세포 속에 있는 비교적 순수한 물분자보다 훨씬 더 심하게 흩어져 있는 상태, 즉 엔트로피가 큰 상태에 해당한다. 흰 공만 1백개를 바닥에 흩뜨려 놓은 것보다는 흰 공 90개에 붉은 공 10개를 섞어서 흩뜨려 놓으면 훨씬 더 어지럽게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유다.
세포 속의 물분자는 엔트로피가 더 크고 안정된 상태의 소금물 쪽으로 빠져 나온다. 그러면 배추는 원래의 모양을 잃어버리고 김치 담그기 적당하게 절여지는 것이다. 세포 속의 물이 소금물 쪽으로 빠져나오고 싶어하는 정도를 나타내는 것이 바로 삼투압이다.
소금물이 순수한 물보다 잘 얼지도 않고 잘 끓지도 않는 이유도 같은 방식으로 설명할 수 있다. 이것은 분자들이 더 흩어져 자유로운 상태에 있고 싶어하는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절인 야채가 짠 이유는 세포 안의 삼투압과 세포 밖의 삼투압이 평형을 이루면 시들시들해졌던 세포 안으로 소금물이 스며들기 때문이다.
절임의 과학적 원리와는 상관없이, 우리는 한 번쯤 너무 짠 소금물에 오래 담근 나머지 쪼그라든 김치를 먹어본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질감이란, 바람 든 무를 씹는 것 이상으로 위력적임을 알고 있다. 소금의 양을 적절히 조절하는 ‘노하우’에 따라 맛과 질감, 그리고 김치의 영양마저 좌우되는 것이다. 과학 안에서 어머니의 손맛을 다시 한 번 절감하는 순간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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