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은/ 국악대 창작음악학과 교수

살은 ‘속살’, ‘맨살’의 살이다. 그렇다고 피부의 살 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살이 낀다’라는 말이 있듯이, ‘역마살이 끼었다’라고 하듯이 정신적인 깊이까지를 가리킨다. 이곳저곳 떠도는 사람더러 ‘역마살이 끼었다’ 라고 말한다.

누가 역마살을 원하겠는가. 실제로 역마살이 낀 사람을 보면 피부색이 다르다. 피부의 색깔에 이상이 생긴 셈이다. 살은 육체의 살 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살까지를 가리킨다. 우리 문화에서 살도 그렇고, 몸도 그렇고 모두 영육이 분리되어 있지 않다. 영육이원론적인 서양과 달리 영육일원론적인 세계를 드러낸다.

살은 한 가지만 있지 않다. 불안살, 구설살, 액살, 대신살, 공방살 수천 수백가지의 살이 있다. 축원굿의 고사소리는 수 백가지 살을 노래한다. 씻김굿의 안당에서 수없이 살노래를 한다. 그 노래들은 모두 살을 풀어내거나 축복하기 위한 것이다. 살풀이춤도, 도살풀이춤도 예술적으로 표현하고 우리에게 보여주는데 있지 않고 우리들의 몸을, 꼬여있는 삶을, 맺힌 실존을 실제적으로 풀어내기 위하여 춤을 춘다. 그러고 보면, 고사소리나 살풀이춤은 그만큼이나 생리적이고 정신적인 예술이다.

영육 간에 불균형이 생기면 살이 낀다. 한 마음을 품지 않고, 두 마음을 품을 때 살은 어김없이 낀다. 연구하면서도 마음이 청담동의 카페에 있다면 살이 낀다. 두 가지 잣대로 정책을 수행하는 팀이나 국가도 살이 낀다. 양비론일 때 우리들은 종종 살이 낀다. 통일을 외치면서도 남북을 서로 비판할 때에도 살이 낀다. 스스로 한 말에 책임지지 않고 검증되지 않은 말들,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말들을 남발할 때 모두 살이 낀다.

우주(宇宙)에 걸쳐 한 마음을 지키지 않으면 살이 낀다. 우주라니! 우주는 우주물리학적인 천체의 우주가 아니다. 우주가 곧 ‘집’(家)이다. 우주가 집우, 집주이고 보면 곧 집이다. 집우의 우(宇)는 동서남북 사방(四方)과 하늘땅 사이의 상하(上下) 집이다.  집주의 주(宙)는 왕고래금(往古來今)의 집이다. 과거로 갔다고 현재로 오는, 말 그대로 고금을 왕래하는 집이다. 주는 과거로만 가지 않는다.

현재에 있기 위하여 과거로 가고, 과거로 가려는 목적은 현재에 있기 때문이다. 서양식 역사철학에서 한국학을 퇴보의 역사로 평가할 수 없는 역사관이 우주의 집이다. 공간의 넓이와 크기, 역사의 길이와 깊이가 우주의 집이다.

그 우주의 집을 바르게 지키지 않으면 살이 낀다. 우주의 집만큼이나 살이 많이 있는 셈이다. 중앙대학교는 동으로 태평양 너머의 미국까지, 서(西)로 실크로드를 넘어 유럽까지, 북으로 러시아를 넘어 북극까지, 남으로 동남아시아와 호주를 넘어 남극까지의 공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고조선으로부터 현재를 무차별하게 왕래하며 그 삶들이 살아온 역사의 깊이에 자리 잡고 있다. 지켜야할 것과 버려야할것, 깊어야할 학문과 풍부해야할 콘텐츠의 디지털화, 그 우주 안에서 살 노래로 풀고 또다시 한마음으로 나아가는 곳에 지금 우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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