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석 / 미국 텍사스-오스틴 주립대학 신방과 박사과정

실지 좌파 정치경제학의 논의는 2천 년대에 이르러서도 거의 80년대 논의 구도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정체 상황은 네그리와 하트의 제국이 발간되면서 크게 벗어난다. 특히 이들의 ‘제국’이란 의제 설정이 이미 전자 네트워크와 비물질적 노동에 기반한 자본주의 재생산 구도를 직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제국 분석에 의한 좌파 논의의 활성화와 더불어, 비물질 영역에 대한 사유화를 경고하는 미국내 자유주의자들의 지적 재산권 논의는 학계의 또 다른 큰 축을 형성한다.
상식이 통하는 시장을 원하는 미국내 ‘현실주의’적 법학자들은 자본가들의 새로운 이윤원, 즉 저작권이 인류의 창작을 저해하는 핵심이라 보고 다양한 학회 모임과 포럼, 저술, 단체 설립 등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적극 표출하고 있다. 국내에도 잘 알려진 스텐포드 대학의 레식은 이의 주도적 인물이다. 저작권 비판은 현재 단순히 정보 이용자들의 보다 확대된 정보 자율권뿐만 아니라, UN산하 세계저작권기구(WIPO)의 다국적자본 친화적인 조직 성격을 바꾸려는 비판적 논의로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법학자들의 논의는 자본주의 생산구조 변화에 대한 문제 제기보다는 부르주아 법 환경의 제도적 개선에 집중되고 있어 그 한계를 노출하고 있다.
현재 좌파내 정보통신기술의 논의는 자본주의 경제의 질적 전환에 대한 분석에서, 그 초점을 새로운 대안 현실의 재구성에 무게 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들뢰즈가 한 때 얘기했던, 네트워크에 상주하는 권력의 시대인 ‘통제사회’의 유연성에 대해 능동적으로 저항하는 주체들(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에 그 힘을 싣고 있다. 언론학에서는 인터넷을 이용한 저항과 불복종의 사례 발굴이 이와 같은 연구의 주종을 이룬다. 최근까지 정치학과 사회학 분야에서는 이라크전과 관련해 대안적 저널리즘과 블로그 문화에 대한 분석들이 대량 생산됐고, 인류학 분야에서는 전자 소통에 의해 어떻게 권력 담론의 파괴 현상이 일어나는지를 주목하기도 했다.
다른 한편으로 프라이버시 연구도 한 단계 진전하고 있다. 프라이버시 침해는, 기존에 개별 사적 정보의 원치 않은 노출이란 개념에서 권력이 신체에 가하는 통제욕으로 해석되고 있다. 특히 각국 정부가 ‘유비쿼터스’의 장미빛 담론을 유포하는 상황에서, 최근 프라이버시 연구는 ‘모바일’에 기반한 권력 확장의 유연성과 편재성을 경고한다.
현재 문제는 자본주의의 재생산을 반영구적으로 보장하는 정보와 지식의 사법적 질서에 대한 문제제기를 오로지 자유주의 법학자들에게 맡겨서는 곤란하다는 점이다. 미국 내에선 마이클 페럴만과 같은 아주 소수의 정치경제학자들만이 현실 자본주의내 저작권의 핵심적 기능을 지적했던 정도다. 희망컨대, 관련분야 국내 신진 학자들이 저작권과 권력 재생산의 관계, 디지털 권력의 유형 분석, 그리고 이의 저항과 대안적 사회 모델에 대한 고민을 왕성하게 내어주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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