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영화사에서 새로운 영화의 시작을 알린 프랑스의 누벨바그처럼 독일에서 일어난 뉴저먼 시네마의 시작을 알린 것은 ‘오버하우젠 선언’이다. 파시즘과 전쟁의 폐전으로 예술적 발전이 더 이상 불가능해진 독일의 영화산업은 비정치적인 오락영화, 헐리우드 영화의 잔재로 전락했고, 국제적인 경쟁력이 사라지게 되었다. 이 무렵, 독일의 26명 젊은 감독들은 1962년 오버하우젠 단편영화제에서 낡은 영화의 청산과 새로운 영화의 탄생을 알리며 ‘아버지 영화의 죽음’을 선포했다.
  “새로운 영화는 새로운 자유를 필요로 한다. 기존 영화 산업의 관행, 상업적인 영향력, 특정한 이해 집단의 통제로부터 자유가 필요하다. 우리는 새로운 독일영화를 제작할 수 있는 지적, 형식적, 경제적인 관념을 구체적으로 갖고 있다. 낡은 영화는 죽었다. 우리는 새로운 영화를 신봉한다.”
  이러한 목표의 실현은 1965년 ‘청년 독일영화 위원회’가 설립되면서 그 조건이 마련되었다. 이와 같은 단편 영화에 대한 국고의 지원을 얻어 알렉산더 클루게의 첫 번째 극영화 <어제와의 고별>이 1966년 베니스 영화제에서 상을 받았으며, 폴커 슐렌도르프, 장마리 스트라웁등의 영화의 비평가 호평과 함께 뉴저먼 시네마의 막을 열었다.
  그러나 이러한 ‘새로운 독일 영화’는 어떤 미학적 유파로 인한 운동은 아니었다. 그것은 주로 사회적인 테마들로 시작해 사회는 변해야 한다는 진지한 소명의식에서 출발한다. 독일 작가주의 감독들은 잔존하는 파시즘에 대한 끈질긴 관심을 기울였다. 그들은 파시즘이 지배한 독일의 과거가 민주적인 현재에까지 어떻게 잔존하고 있는가를 끊임없이 문제 삼았다. 그리고 그 가운데 이 감독들의 이야기 방식은 자연적으로 전통적인 것을 깨뜨림으로써 표현되는 현실을 비판적인 거리에서 보게끔 하는 방식을 취하고 있었다. 이렇듯 ‘오버하우젠 선언’은 당시 독일 영화인들에게 단지 영화 운동에 대한 확고한 의지만을 표출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독일영화가 무엇이며, 자신들은 인간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진지하게 고찰하기위한 것으로 시작되었던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자국 영화 관객률이 높다. 하지만 많은 멀티플렉스 영화관 상영과 그 입맛에 맞도록 만들어진 영화들만이 흥행의 최고조를 이루고 있는 현상은 영화문화의 다양성의 측면에서 그 폭이 매우 협소해지는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 비록 지금의 독일 영화 산업은 이후 침체 되어 있는 분위기지만 한번쯤은 ‘오버하우젠 선언’에서 외쳤던 그들의 다른 시각, 다른 세상을 위한 노력을 우리의 영화 산업 현실에서도 돌아 보는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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