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땅콩효과


  고등학교에 다닐 때 우리에게 요구된 가장 극적인 선택 중 하나는 아마 이과반이나 문과반에 갈 것이냐를 결정하는 것이었으며, 선택의 나침반은 수학과 과학에 대한 자신의 자질이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교문을 나서는 순간! 그것은 삶에 중요하지 않은 천덕꾸러기였다고 무시되기 일쑤다. 개편된 신문에 각별히 할애된 본 과학면은 한낱 시험과목쯤으로 이해됐던 과학에 제자리를 찾아주기 위해 온몸 불살라 보려고 한다.                   <편집자주>


‘큰 것부터 먹으라’고 자연이 말했다
-브라질 땅콩효과

 

  밥 먹고, 차 타고, 노래하고, 과제하는 우리들의 일상적 경험들은 굳이 복잡한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이라고 생각되기 쉽다.
그래서 호기심 많은 조카녀석이 왜 먹은 밥은 똥이 되어 나오는지, 정말로 블랙홀에 들어가면 사람이 죽는지에 대해 납득할만한 설명을 집요하게 요구하더라도 ‘그까이꺼 대~충’ 말할 수 있다고 자부하곤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흐르는 물, 떠다니는 먼지, 인간관계 등 수없이 많은 일상의 소소한 현상들 중 아직까지 어떠한 과학적 설명으로도 해명되지 못했거나 최근에서야 그 원리가 밝혀진 것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아는 이들은 그리 많지가 않은 듯하다. 이 중에서 오늘 본지 과학면 출범을 자축하며 야심차게 준비한 첫 내용은 ‘브라질땅콩효과’다.

밥과 커피


  이름마저 생경한 이 ‘효과’는 여러 종류의 땅콩들을 한데 섞어놓은 땅콩믹스캔의 뚜껑을 열어보면 가장 큰 브라질 땅콩이 항상 맨 위에 올라와 있다는 데서 물리학자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이름 한 번 거시기하다’는 말 들어도 싸다. “~효과”같은 말 참 많이 들어봤지만 이건 좀 심하다 생각할 법하다. 어찌됐건 늘상 경험하는 일인데 그럴싸한 효과라고 하니 한 번 거들떠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그러나 이쯤되면 독자들의 머리 속에는 몇 가지 이미지가 중첩되리라. 눈치빠른 독자라면 벌써 간파했겠지만 상황파악에 다소 장애를 겪는 독자들을 위해 생활 속의 사례를 언급해보겠다.
  밥 지어본 독자들 많을 것이다. 그리고 맨날 흰 쌀밥만 먹다 새롭게 도전하는 기초과정이 있으니, 콩이나 완두, 팥 뭐 이런 걸 넣어 색다른 밥을 먹어보는 것이다. 자, 쌀과 팥을 눈대중으로 대충 섞어 물에 씻은 후 밥을 지어보자. 취사와 보온이 교차하고 뜸이 들었을 때 뚜껑을 열어보면 다들 알겠지만 팥이 맨 위로 올라와 있다. 이게 ‘브라질땅콩효과’란다. 그래도 잘 이해가 안 간다면 전 국민의 음료, 휴대용 다방커피, 커피믹스를 보자. 봉지를 잘라 종이컵에 넣어 대충 한 두 번 컵을 흔들면 어찌되는가. 하얀색 가루는 아래로 내려가고 커피가루만 맨 위에 올라와 있지 않은가. 그렇다! 브라질땅콩효과란 입자가 서로 다른 알갱이들을 흔들어대면 ‘대류현상’에 의해 작은 것은 아래로, 굵은 것은 위로 올라가는 알갱이들의 현상을 말한다. 그렇다고 굵은 알갱이는 좀처럼 다시 내려가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 대류현상의 키포인트는 가루와 용기(컵 내부면)가 맞닿아있는 마찰면에 있는데, 큰 입자는 마찰이 커서 작은 입자들에 밀려 올라온 후에는 더 이상 내려가지 않는 것이다.
  완두콩도 매주콩도 아닌 브라질땅콩효과라고 우기면서 과학 좀 한다하는 초딩 대상 잡지에 단골로 떡하니 들어가 앉은 이 말은, 그러나 발견된지 165년이 지난 1996년이 되어서야 그 전 과정이 처음으로 기술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온갖 수학공식과 첨단 MRI 장비를 동원하면서 말이다. 아이러니다.

아몬드와 별사탕


  이에 친절한 본 편집위원, 명색이 과학면인데 구색은 갖춰야 할 것 같아서 업계 최초로 위 그림과 같이 저난이도 실험에 착수했다. 브라질땅콩효과 이해에 참고되면 좋겠다. 실험재료는 ISO9001 획득 50원짜리 종이컵 하나, 욘사마 배용준이 먹었다던 커피믹스 하나. 그리고 사람 손과 200만 화소 최고급 디지털카메라다. ① 종이컵에 커피믹스를 붓는다. ② 종이컵을 흔들어댄다. ③ 사진을 찍는다. [그림1]을 보면 마구잡이로 섞여 있는 커피믹스가 [그림2]를 거치면 [그림3]처럼 가장 굵은 알갱이인 커피만 위로 올라온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문사 홈페이지에 사진이 합성이라느니 실험에 근성이 없다느니 하는 악플은 정중히 반사!
  그러나 이 보잘 것 없어 보이는 현상 하나 때문에 애먹는 집단도 있으니, 대표적으로 제약회사와 레미콘 회사다. 제약회사의 경우 잘 섞어놓은 약이 운반 도중에 위아래로 깔끔하게 정렬되는 곤란에 빠지고, 레미콘 회사의 경우 레미콘에 섞여있는 굵은 자갈들이 트럭의 전방위 바이브레이션 덕분에 상층으로 올라가니 이걸 다시 섞어줘야 했다고 한다. 믿기진 않지만 그 비용이 자그만치 연간 66조원, 생산 원가의 40%를 차지한다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물리학자들이 첨단 장비를 동원하면서까지 밝혀낼 만도 하다. 그렇다고 이들의 노력이 크기가 다른 땅콩을 어떻게 하면 골고루 먹어볼까라는 부르주아적 호기심에 한정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오판이다. ‘알갱이 역학’에 대한 연구결과는 건축에서부터 지진, 제약, 초전도체, 심지어 우주형성과정 연구에까지 확장되었다고 하니 땅콩의 잠재력이 놀랍지 아니한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몬드만 밑에 깔려 있어 먹기 전부터 좌절하게 만드는 시리얼이나, 맛있는 별사탕을 먹기 위해 봉지 밑바닥까지 손을 뻗어야만 하는 ‘뽀빠이’는 변함이 없다. 이들 업체에 한 마디 안 할 수 없다. 슬라이스 아몬드로 사기치지 말고 통아몬드로 교체하고, 별사탕 마니아들의 아이디어를 공모해보는 것이 어떠한가.
  마지막으로, 실험을 위해 좋아라하며 신체 일부를 대여해 준 편집장님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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