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민수 / 독일 베를린자유대학 박사과정

‘대중문화’라는 용어가 고급문화 내지 엘리트 문화의 상대개념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유럽에서이다. 이때 후자는 진지하고 고상하며 독창적이라는 성격이 부여되었고, 그에 상응하여 대중문화는 통속적이고 진부하며 열등한 것이라는 함의를 갖게 되었다. 대중문화에 대한 이러한 이해를 그 정점에 올려놓은 인물들은 독일의 신좌파 철학자인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였다. 이들은 1944년에 공동집필한 <문화산업론>에서 미국적 대중문화를 ‘대중기만’으로 단죄했으며 이 문화의 폐해는 오직 유럽적 고급문화에 의해서만 극복될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6·70년대 독일 학계의 대중문화 논의에서는 비판이론의 이러한 견해가 계속해서 관철되었다. 물론 당시에는 이러한 견해의 협소함 역시 지적되었고 영미권 ‘문화연구’의 영향을 받아 대중문화에 내재된 전복적·비판적 잠재력이 새롭게 주목받기도 했지만, 지식인들은 이 문화에 대해 의혹에 찬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이런 지배적 입장에 일격을 가한 것은 80년대를 풍미한 포스트모던 사조이다. ‘생활세계의 심미화’와 다원주의를 표방한 포스트모던의 시각에서 대중문화와 고급문화의 구분은 유명무실한 것이었다. 그 후 공산권의 몰락은 서구적 대중문화의 전지구적 확산을 가져왔고, 대중문화를 빼고는 문화 자체를 논하기가 불가능한 상황이 도래했다. 대중문화는 대안 없는 보편문화로 자리를 굳혔으며, 독일 지식인들은 기존의 이념 정향성에서 탈피하여 이 문화에 대한 내재적 분석과 이해를 심화시키는 쪽으로도 방향을 돌리게 되었다. 이와 관련하여 아래에서는 현재 독일에서 나타나는 주요한 대중문화 연구 경향을 간단히 살펴보기로 하자.

모든 분석과 이해의 출발점은 개념의 명확한 규정이다. 그러나 이때 난점으로 대두하는 것은 대중문화라는 현상이 조망이 어려운 거대 영역을 포괄하며 변화를 거듭해 왔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우선 대중문화의 개념 규정은 물론 그 이론화가 불가능하다는 즉흥주의의 입장이 득세한다. 허나 이론에 대한 적대성 역시 정당화를 위해선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는 점에서 이 입장은 이론화 자체에 쐐기를 박지는 못한다. 역사적 변화에 초점을 맞추고 대중문화에 접근하는 입장은 개념사 연구에 매진한다. 이 연구경향은 개념의 비역사적 사용을 교정하고 분야에 따른 불균등 발전에 주목하게 한다. 더 나아가 이 경향은 전체보다는 개별 분야, 즉 팝아트, 팝뮤직, 대중문학 등을 촉진시킨다. 이와 더불어 개별분야를 비교함으로써 대중문화가 모순과 대립을 포함하는 현상임을 부각시키는 경향도 나타난다. 예를 들어 팝아트는 애초부터 고급예술을 지향하고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데 주력한 반면, 팝음악은 클래식에 저항하고 박리다매의 전략을 취했다는 분석이 있다. 끝으로 대중문화 보급의 주역인 대중매체 발전에 초점을 맞추고 문화를 연구하는 경향도 한 가지 주요한 흐름을 이룬다. 물론 이러한 경향들만으로 현재 독일에서 진행되는 대중문화 연구의 전모를 표현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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