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질곡속에서 떠도는 재일조선인

     광복 60주년이라는 뜻깊은 해를 맞아 재일조선인에 대한 한국인의 일반적 이해를 넓히고, 재일조선인 문제가 우리 사회의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자 이 연재를 두 번에 걸쳐 기획하게 되었다. 재일 조선인의 현재의 삶을 통해 살아 있는 역사란 무엇인가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를 만들고자 한다. 나아가 재일조선인에 대한 처우개선과 문제해결에 대한 노력과 함께 한일관계 변화를 모색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글싣는 순서 ① 재일조선인의 정체성   ② 재일조선인을 통해 한일관계변화를 모색하다

배덕호 / 지구촌동포청년연대(KIN) 대표 집행위원

올해는 일제 식민지 지배로부터 해방된 지 60년, 한일협정이 체결된 지 40년이 되는 역사적인 해이다. 그러나 동시에 간과하고 있는 점은 국외의 재외동포들에게는 남북 분단 57년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해로 기억된다는 점을 우선 상기할 필요가 있다. 해방이자 곧 분단이었던 지난 57년이란 시간은 남북 민초들에게 고스란히 이산의 아픔과 상처로 아로새겨져 있다. 그러나 일제 식민지 지배와 남북 분단, 그리고 거주국에서의 차별과 냉대라는 이중삼중의 역사적 구조 속에서 결정된 재외동포들의 삶이야말로 이들 정체성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요인으로 파악된다.
식민지, 분단, 차별이라는 이중삼중의 역사적 질곡 속에 놓였던 120만 재일조선인, 그들은 우리에게 누구였을까? 그리고 한국사회에 살아온 우리는 과연 그들에게 누구였을까?
우선 재일조선인과 관련된 용어문제부터 정리해보자. 재일조선인과 관련된 용어로는 ‘재일한국인’, ‘재일교포’, ‘재일동포’, ‘재일한인’, ‘재일한국·조선인’, ‘재일조선·한국인’, ‘재일’, ‘재일코리안’, ‘재일조선인’ 등 이 용어를 일본 혹은 한국에서 사용하는 필자들의 입장과 시각에 따라 다양한 편차를 보여왔다. 필자가 활동하는 단체에서는 운동적 관점에서 이들 용어들이 가지는 비역사적, 차별적, 분단적 사고를 지양하고자 ‘재일조선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했으며, 우리 한국사회가 이들의 질곡의 역사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과 반성이 없는 한 ‘재일동포’로 부르지 말자는 캠페인을 계속 진행 중에 있다. 용어는 역사적인 정체성을 표현하는 가장 적확한 방식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에서 빠져버린 재일 조선인
정부는 재일조선인 전체 숫자를 합쳐 약 60여만 명이라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그러나 일본사회의 모진 차별과 냉대를 견디다 못해 할 수 없이 일본국적으로 바꾼 재일조선인들의 숫자와 재일조선인과 일본인 사이에서 태어난 후손 등은 정부 공식통계에서 고스란히 빠져있다. 그 빠진 숫자가 대략 60여만 명이다. 미국시민권자, 중국 국적을 가진 조선족, 러시아 국적을 가진 고려인들은 모두 ‘재외동포 통계’에 잡혀있지만 여전히 일본의 재일조선인 60여만 명은 정부통계에서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정부의 ‘기민정책’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에서의 이들의 지위는 어떻게 변해왔을까. 45년 해방 이후 47년 외국인등록령에 의해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 해방 국민이자 적국민으로 이중적인 취급을 당해야만 했던 재일조선인들은 이때 외국인 등록 의무를 부여받게 되었다. 국적란에 대해서는 일률적으로 ‘조선(朝鮮)’으로 기재하도록 주의를 받았으며, 이때의 ‘조선(朝鮮)’은 당시에 남북한에 정부가 수립되기 전의 한반도를 가리키는 용어 혹은 기호였다. 65년 체결된 한일법적지위협정은 우선 한반도에 대한 일본제국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전쟁 수행 과정에서의 일본의 법적 책임을 명확히 하고 역사적 청산을 강제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역사적 책임에 대해서는 한 줄 언급됨이 없었고, 한국국적 보유자만을 직접적인 적용대상으로 명시함으로써 식민지 지배와 역사적 정주의 경험을 함께 한 재일조선인 사회에 또다른 분단을 양산하고마는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이해당사자인 재일조선인의 목소리가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나아가 외국인의 처우에 관한 국가간 실정과 국제법 나아가 인권보장에 관한 국제기준도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65년 법적지위 협정은 이처럼 재일조선인 사회를 한국적과 ‘조선’적으로 양분시킨 분단협정으로 한국적 재일조선인은 협정영주권을 가진 주민으로 ‘조선’적 재일조선인은 영주권조차 부여받지 못하는 난민 혹은 무국적자로 구분되게 되었다. 그 후 91년에 이르러서야 한국적 재일조선인과 ‘조선’적 재일조선인은 비로소 역사적인 특수한 경위가 있어 영주권을 부여받은 ‘특별영주권’자로 통일을 이루게 되었다. ‘재일조선인’이라는 역사적 용어가 한국사회에 쓰이기 시작한 것도 불과 1~2년 전의 일이다. 정부가 일본 국적을 취득한 재일조선인들을 통계에 잡으려는 시도를 한 것도 불과 1년전의 일이다. 재일조선인 중 아직도 ‘조선’적을 유지한 재일조선인들은 대부분이 남한이 고향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을 자유롭게 왕래조차 하지 못한다. 정체성을 말하기에 앞서, 해방 60년을 맞는 오늘에도 강제철거의 위기에 처한 우토로 재일조선인 문제, 에다가와 조선학교 문제 등에서 상징적으로 보여주듯 이들의 역사적 질곡과 한국사회의 무관심과 냉대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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