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세상을 생태적으로 본다는 것


김정명/생물학과 석사과정


생태계란 단어는 그리 생소한 단어가 아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는 곳도 생태계이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들이 살아가는 곳도 역시 생태계이다.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존재하는 곳은 자연이고 이러한 자연과 유기체들이 서로 연관을 지어가며 존재하는 곳이 바로 생태계인 것이다. 이러한 ‘계’내의 생명체들은 각자 생존하고 있는 환경에 적응하며 진화를 거쳐 오늘날에 왔으며 지능을 가진 인간은 자연과 그 안에 존재하는 다른 생명체들의 생활 모습을 학습하며 살아왔다.
인간에게 있어서 20세기의 최대 발명품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누구나 주저 없이 컴퓨터를 선택할 것이다. 그리고 컴퓨터의 혁명적 발달과 정보화 시대의 대두는 우리에게 디지털 세계를 새롭게 열어주었다. 현재도 많은 학자들은 이를 이용하여 인간의 삶을 보다 윤택하게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인간이 예전에 행하였던 방식을 따라 생태계 내 생명체들의 생존 현상을 그대로 디지털 세계에 표현하려 하고 있다. <디지털 생물학>의 저자 벤틀리는 디지털 세계가 우리가 살고 있는 자연과 비슷하다고 말하며 이것이 새로운 생태계, 즉 ‘디지털 생태계’를 이루며 우리의 삶과 과학기술을 변화시킬 것이라고 예측하고 있다.

디지털 생태학의 만남
자연 진화의 경우, 오랜 세월에 걸친 생명체의 유전물질(DNA) 전달, 자연 선택, 변이에 의해 발생하며, 이 과정들이 생명체의 기본정보인 유전자에 작용하여 그 정보를 보존·전달시킴으로써 생명체를 끊임없이 변화시킨다. 하지만 어떠한 변화를 거치든 그 생명체는 자신의 무리 내에서 또는 자신이 살아가는 환경 내에서 규칙을 만들어내어(이러한 규칙은 이성의 산물일수도 있고 본능의 발산일수도 있다) 다른 구성체들과 충돌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생태계를 구성하게 된다. 더 나아가 이들, 여러 생태계의 집합적 산물은 세계를 만들어내게 된다. 규칙은 입자들(에너지의 점)의 상호작용 방식을 정의하며, 이러한 입자들의 상호작용은 엄청난 피드백과 함께 이루어진다. 피드백과 함께 상호작용을 주고받는 많은 것들이 외부의 교란을 받으면 복잡성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런 복잡성이 바로 세계를 구성하게 된다.
컴퓨터 프로그램도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규칙에 따라 만들어지게 된다. 1과 0으로 이루어진 이진수의 상호작용 방식을 정의하는 규칙이 다른 암호들의 상호작용을 조절하고 이들의 상호작용에 많은 피드백이 작용하여 필요한 일이 수행되는 것이다. 컴퓨터의 진화 알고리즘도 자연 진화와 같이 작동한다. 이진수 문자열로 구성된 진화 알고리즘의 유전자도 유전·변이·선택이 수반된 번식을 이용하는데, 이 모든 일이 컴퓨터 안에서 일어난다. 디지털 유전은 또한 상호작용, 피드백, 교란을 이용하여 결과를 생산한다. 컴퓨터는 프로그램을 진화시킴으로써 자기 스스로의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다.
이것은 물론 기존에 많이 접했던 인공생명 연구와도 맥을 같이한다. 디지털 생물학 또는 인공생명 연구의 산물인 알고리즘들의 진화, 지능적 기능은 공학적으로 활발한 응용이 되기도 하고, 다양성과 복잡성의 무한한 창조기능은 디지털 예술로 발전하기도 한다. 이러한 디지털 세계 내에서 진화가 작용하는 기능은 현재에도 무수히 많다. 복잡성을 추구하는 과학과 디지털 생물학과의 만남은 디지털 생명의 생성과 자기 조직(self-organization)의 원리를 바탕으로 하는 과학의 새 패러다임으로써 가까운 미래의 중요한 목표가 되고 있다.

생태계를 위한 과학의 발전으로
진화는 우리의 DNA를 만들어냈고, 우리의 DNA는 생명체를 만들어냈다. 유전자와 단백질이 서로를 조절하는 과정에서 세포가 분할하고 변화한다. 단백질의 조정 체계가 다양한 타입의 세포들을 형성하고 이런 세포들은 각기 다른 유형으로 분화하면서 성장, 증식, 팽창, 그리고 물질을 분비하여 하나의 완전한 생명체를 창조하게 된다. 이러한 복잡하고 잘 짜여진 발생의 개념은 컴퓨터에선 여전히 새로운 개념이지만 디지털 세계에서는 작은 디지털 다세포 유기체들이 실제로 성장하고 있다. 예를 들어, 암호 프로그램들은 생명체들이 생존을 위한 자원 확보를 위해 서로 경쟁하듯이 자신의 처리 사이클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싸우고, 이들이 만든 네트워크는 인간이 살아가는 또 다른 생태계를 구성하고 있다.
디지털에서든 자연에서든 이 모든 과정들은 동일한 개념을 이용한다. 오늘날 컴퓨터에서 실행되는 보다 새로운 발생 모형들은 디지털 유전자 발현 그리고 패턴의 형성, 분화, 형태발생, 성장의 개념을 이용한다. 진화는 그러한 과정들에서 발생되는 상호작용을 이용하는데, 그 방식을 이해할 수 있다면 진화적 컴퓨터 사용의 가능성을 획기적으로 발전시키게 될 것이다. 이 세계를 더 많이 이해할수록 우리의 과학기술은 더 많은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고 보다 커다란 디지털 생태계를 창조할수록 이것을 이용하여 우리의 세계에 대한 이해도 증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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