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란 /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책을 권하는 사회]

조용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독서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각종 미디어와 콘텐츠의 등장으로 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독서를 권유하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책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통해 독서문화 전반을 살피고자 한다. 또한 책을 권하면서도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현실과 책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책을 찾는 사람들 ② 하나의 공간이 만드는 ③ 책의 미래 ④ 글을 읽고 씁니다


책의 개념이 달라지고 있다

최준란 / 한국외대 글로벌문화콘텐츠학과 겸임교수

  ‘글을 읽고 쓰고 이해한다’는 말에서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매체는 분명 책이다. 그중에서도 종이책이 가장 먼저 떠오를 것이다. 그래서 몇몇 사람들은 ‘책의 미래’를 ‘종이책의 미래’로 보며, ‘책의 미래는 없다’고 쉽게 단정하기도 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책=종이책’이 아니다. 다시 말해 책은 더 이상 종이책만 가리키지 않는다는 말이다.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등 이제는 책의 종류가 다양해졌다. 책이라는 매체의 이미지도 달라졌고, 독서문화도 달라졌다. 본고를 통해 이들이 어떻게, 무슨 이유로 달라졌는지 살펴보고 책의 미래 또한 같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최근 ‘책은 더 이상 책이 아니다’라는 생각에 크게 영향을 준 사건이 있었다. 바로 2019년 12월에 발발한 코로나19다. 돌아보니 코로나19 팬데믹 동안 우리의 일상은 많이 바뀌었다. 전세계 산업 구조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이는 출판계에도 어김없이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출판계는 어땠을까. 코로나19 팬데믹 초반에는 오히려 종이책이 호황을 누렸다. 코로나19가 창궐하면서 외출을 자제하게 된 우리는 사람들과 만나지 못한 채 ‘집콕’ 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면서 디지털콘텐츠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됐고, 디지털콘텐츠 소비가 늘면서 한편으로는 책을 읽는 독서 인구가 증가하기도 했다.
  글은 종이책으로 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디지털 시대가 오면서 책의 개념이 전자책, 오디오북 등으로 확대됐으며 글을 읽는 공간도 다양해졌다. 디지털화와 코로나19의 흐름에 따라 출판 시장이 이렇게 금세 바뀐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 산업 측면에서는 어떨까. 예전에 책은 당연히 서점에서 사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교보문고·예스24·알라딘 등 온라인서점에서도 구입이 가능해졌고, 코로나19 이후로는 책이 쿠팡에서, 인스타그램을 통해서, 네이버 스마트스토어에서도 판매가 된다. 즉 오프라인 서점에서의 책 판매는 줄었지만 온라인 판매가 증가했고, 전자책, 오디오북, 웹툰, 웹소설 같은 웹콘텐츠 등 다양한 매체에서 비대면 독자들이 늘었다. 오히려 코로나19로 미디어의 다양화가 가속화된 셈이다.
  코로나19가 해제된 현재 우리의 일상을 돌아보자. 눈을 뜨는 아침부터 잠들기 전까지 디지털과 함께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핸드폰 알람으로 눈을 뜨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확인하고 출근하면서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을 보고,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오디오북, 팟캐스트, 유튜브 등을 즐긴다. 퇴근길에는 구독 중인 ‘밀리의 서재’를 듣는다. 우리의 일상만 봐도 지식을 습득하는 읽기 매체가 다양해졌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한 가지 예로 모르는 용어가 나오면 예전에는 사전을 찾았다. 그러다가 컴퓨터가 보급되면서 네이버 포털에서 검색을 했다. 최근에는 어떤가. 유튜브에서도 검색을 한다. 모르는 것에 대한 해답은 책에서 찾으라고 배웠던 세대도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디 그런가. 책 말고도 많은 곳에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과거 지식 문화의 보고가 종이책이었다면 지금은 지식을 알려주는 매체가 다양해졌다. 책만이 줄 수 있는 효용과는 별개로, 지식을 전달하고 당대 문화를 전파하는 책의 주요 기능을 이미 다른 미디어들이 더 쉽고 확산성 높은 방식으로 점유했다. 유튜브를 예로 들면, 지식을 영상으로 보여주지만 단순히 ‘영상’만 담지 않는다. 섬네일을 비롯해 영상 중간마다 항상 ‘자막’이 들어 있다. 시청자는 보고 듣고 ‘읽는다’. 더불어 실시간으로 쌓이는 댓글은 종이책이 줄 수 없었던 독자들 사이의 의견 교류, 소통을 가능하게 했다.
  이미 예견했다시피 영화를 보려는 사람들은 영화관이 아니라 넷플릭스로 모여들고, 책 또한 오디오로 구독하는 비율이 높아졌다. 전자책 상황은 어떠한가. 이북업체 리디북스는 2020년 상반기 연결 영업수익이 714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8%의 성장률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2009년 창업 이래 최초로 흑자 전환을 이뤘는데, 최근 신규 콘텐츠 사업 확장 및 인수합병 시너지 등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코로나19로 인해 모바일콘텐츠 수요가 증가하면서 월정액 구독 서비스 ‘리디셀렉트’와 웹소설, 웹툰 등 신규 콘텐츠의 인기가 급상승해 실적 향상에 기여했다. 이와 같이 코로나19의 상황이 전자책, 오디오북 시장의 활성화를 앞당겼다. 또한 코로나19로 인해 독자들 역시 달라지고 있다. 결국 독서 문화가 변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하고 있음을 느끼면서도 이렇게 빨리 변하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이에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책의 미래를 묻는다.

 
 

챗GPT와 출판

  최근에는 챗GPT가 화제다. AI와 챗GPT의 등장으로 출판업계도 시끌시끌하다. 얼마 전 AI 번역으로 논쟁이 오간 사례도 있었다. 한국어가 유창하지 않은 일본인이 AI 번역기의 도움을 받아 국내 문학번역상을 수상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다. 이 사례가 시사하는 바는 크다. 번역가의 생존 여부를 고민하게 됐고, 기계와 인간 간의 협업 가능 범위를 비롯해 AI 시대의 법과 각종 제도, 윤리적 고민 같은 질문들을 수면 위에 올려놓았다. ‘앞으로 책이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하는 생각까지도 하게 만들었다.
  미국의 오픈AI 사가 두 달 전 출시한 이 대화형 AI 챗봇은 기계적 대답을 내놓던 기존 챗봇보다 ‘진짜 사람’처럼 맥락을 이해하고 대화해 ‘초거대 AI’라고도 불린다. 일상적 대화뿐만 아니라 시·소설과 같은 작문도 가능하며 논문도 쓴다. 물론 챗GPT는 일상생활, 회사 생활에서도 유용하다. 출판사에 다니는 어느 에디터가 챗GPT로 보도자료를 썼다는 말도 들리고, IT 회사에 다니는 어느 개발자는 “회사에서 챗GPT가 기초 업무를 해낼 수 있어서 신입 직원을 뽑지 않아도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마이크로소프트(MS) 사의 창업자 빌 게이츠는 “챗GPT 같은 AI가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평했고, 《사피엔스》(2011)의 저자 유발 하라리는 AI가 쓴 《사피엔스》 출간 10주년 기념 서문을 보고선 “AI 혁명은 ‘우리가 알던 방식의 인류 역사는 끝났다’라는 신호”라며 “역사상 처음으로 힘의 중심이 인류의 손아귀에서 벗어날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이렇듯 AI 기술 혁명이 챗GPT의 등장으로 산업을 넘어 사회 전 영역으로 빠르게 확장하고 있는 가운데, 챗GPT를 보면서 책의 미래를 묻는다.

책은 사라지지 않는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년마다 실시하는 「국민 독서 실태 조사」에 따르면 독서 매체는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을 포함한다. 성인 1인당 연간 종이책 독서량은 2011년 9.9권에서 재작년 2.7권으로 줄었다. 전자책을 포함하면 4.2권, 오디오북까지 포함할 경우 4.5권으로 늘어나지만, 성인들의 독서량은 10년 동안 급격하게 줄었다.
  재작년 국민 독서량은 2019년 대비 크게 감소했다. 재택근무나 실외 활동의 감소는 유튜브를 비롯한 IPTV 이용자의 증가로 이어졌지만 종이책 독서량은 더 줄어든 것이다. 숏폼, 틱톡 등 짧은 영상의 인기가 올라가고, 카드 뉴스와 같이 요약된 자료를 보는 습관은 사람들이 짧은 호흡으로 정보를 얻는 것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독서를 하는 사람들은 있다. 본지의 지난달 문화 기획 기사에서 다룬 것처럼 사람들이 독서하는 이유는 각기 다르고, 감동과 위로를 받는 등 책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이 여전히 많다. 그중에서도 지식과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책의 큰 장점이라 생각한다.
  한편, AI도 지식 기반의 데이터 집합체다. 자료 제공과 분석은 가능하지만 잘못된 정보가 섞여 있을 수 있다. 챗GPT의 데이터는 어디에서 오는가. 필자의 생각에 이러한 데이터는 이미 출판된 책에 있다고 본다. 챗GPT가 더 발전돼 또 다른 챗GPT가 나온다 하더라도 기초 공사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데이터는 책에 있으며, 잘못된 정보를 식별할 수 있는 것은 사람이다. 그러니 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며, 이러한 기술 발전과 함께 더 다양한 형태로 변화할 것이다.
  다시 묻는다. 책의 미래는. 종이책은 줄어든다. 그렇지만 종이책만 책이 아니다. 책의 개념이 바뀔 뿐이다. 그래서 사라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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