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각에 숨어든 폭력


  미디어의 파급력을 다시금 깨닫게 되는 요즘이다.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2023)의 화제성은 사회의 분위기를 완전히 바꿔놓는 중이다. “연진아”로 끝맺는 대사들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공론화 분위기가 점진적으로 조성됐다. 쉽사리 입 밖으로 꺼내기 어렵던 이야기가 공공연하게 등장하자, 피해자들 또한 깊이 묻어뒀던 끔찍한 기억을 떠올릴 용기를 얻었다.
  작년 4월부터 5월까지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에서 진행한 조사 중 “학교폭력 피해자들이 시급하게 해결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 항목을 살펴보면 66.3%가 우울증 및 위축감을 호소했고, 40.7%가 대인기피증을 겪고 있었다. 학교를 ‘사회화를 위한 공간’이라고 일컫지만, 그곳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행위들은 오히려 사회 바깥의 어둠 속으로 피해자들을 내쫓고 있었다. 더욱 안타까운 점은 과거에서부터 비교적 현대까지, 학교폭력 대응 시스템 자체가 피해자의 고통에 중점을 두기보다는, 가해자들의 인권을 우선시하는 듯한 형태를 보인다는 것이다. 헐거운 제도는 가해자들에게 ‘학생’이라며 충분한 처벌을 내리지 않거나, 기록을 남기지 않는 등 빠져나갈 길을 보장해주고 있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에서 재작년 제22차 사회관계장관회의를 통해 「초중등교육법」 시행규칙을 개정, “학교폭력 전학 조치에 대한 중간 삭제 제도”를 폐지하는 등 개선의 여지를 보여주고 있긴 하지만 아직 충분치 않다.
  학교폭력은 이전에도 종종 등장했던 문제였고, 특히나 연예인들의 학교폭력 논란은 큰 이슈로 비춰졌었다. 그러나 사회적 관심은 단발성에 그쳤으며, 당사자들은 합의와 무대응으로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다시금 등장하곤 했다. 그렇기 때문에 김은숙 작가의 자극적이고 적나라한 묘사가 괴롭지만 반갑다. 가해자들의 잔혹함을 시각·청각적으로 마주하게 된 대중들은 문제의 심각성에 공감하기 시작했다. 우린 극 중 묘사되는 수위 높은 학교폭력의 모습이 결코 판타지가 아닌 현실이라는 점, 그리고 대중들에게서 잊혀지는 것을 가해자들이 가장 원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더 나아가 단순히 ‘학교’폭력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주변에 산재 된 폭력들에 대한 점검이 필요할 때이다. 남성의 경우 학교를 졸업한 뒤 마주하게 될 집단은 군대라고 할 수 있다. 넷플릭스 드라마 〈D.P〉(2022) 속 군대 내 부조리 또한 학교폭력에 비견될, 또는 그 이상의 피해자를 만들어내고 있다. 자칭 지식인들이 모여있는 대학원도 마찬가지다. 재작년 KAIST 대학원 총학생회가 조사한 ‘대학원생 연구환경 실태조사’에 따르면 72명의 학생이 폭언을 경험했다고 밝혔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 2019년 5월에는 ‘학내 따돌림’으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서울대 석사과정생의 안타까운 사례도 존재한다.
  사고가 반복된다는 것은 근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피해자 구제에도 당연히 공들여야 하겠지만, ‘피해’ 자체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처벌과 사회적 감시가 필요하다. 감히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환경 조성이 가해자로부터 피해자들을 지켜내는 선제적 예방법일 것이다. 사회 곳곳에 숨어있는 사각지대를 조명해 어두운 이면을 제거하는 데 우리 모두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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