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명숙 /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알 수 없는 아이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아이들이 살고 있다. 끔찍한 잘못을 저지르거나, 반대로 괴롭힘을 당하고, 알게 모르게 차별을 당하는 아이들까지. 이를 위해 어른인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다양한 아이들의 모습을 살펴보고, 어떤 미래를 물려줄 수 있을지 고찰해본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촉법소년, 언제까지 보호해야 하는가 ② 여전히 이어지는 아동학대 ③ ‘노키즈존’, ‘~린이’. 확대되는 어린이 차별 ④ 아이들에게 필요한 미래

 

아동학대 및 방임에 대한 사회적 보호 체계

박명숙 /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근 한국 사회에서 발생하는 사회문제들과 관련해 사회적 개입이 강화된 대표적인 사례 중 하나는 아동학대 및 방임에 관한 것이다.광의로서의 아동학대는 학대와 방임을 모두 포함하는 개념이다.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구분하면, 학대는 아동에게 해로운 행위를 가하는 작위적 행동을 의미하고, 방임은 아동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지 않는 부작위의 행동을 의미한다. 아동학대가 아동에게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을 하는 행위라면, 방임은 아동에게 해야 할 것을 하지 않는 행위라고 이해할 수 있다. 아동발달의 원리에 의하면, 아동은 긍정적이고 건강한 경험을 통해서 성장의 기반을 형성해야 하며(기초성의 원리), 아동의 발달단계에 따라 요구되는 성장의 경험은 적절한 시기에 충족될 수 있어야 하고(적절성의 원리), 아동이 성장하면서 경험하는 것들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쌓여서 평생의 삶에 영향을 미치며(누적성의 원리), 발달단계들은 그 이전의 단계로 되돌아갈 수 없다(불가역성의 원리)는 4가지 원리로 설명되고 있다. 이러한 아동발달 원리에 비춰 볼 때, 아동학대 및 방임은 아동에게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는 위험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아동학대 사건에 대한 사회적 개입


  아동학대 및 방임에 대한 신고 건수는 해마다 증가하고 있으며, 언론을 통해서도 연일 아동학대 사건들이 보도되고 있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갑자기 해당 사건들이 증가한 것이라기보다는 이 문제에 대한 사회적 관심 및 민감도가 그만큼 증가한 결과를 반영하는 현상으로 보인다. 정부는 2019년 「포용국가 아동정책」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아동학대의 신고 및 조사를 공무원이 담당하는 공적 영역으로 전환했고, 관련 법률도 상당히 엄격하게 개정되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전통적으로 아동학대 및 방임의 문제를 가정 내 개인적 문제로 인식하던 한국의 사회문화적 특성을 고려할 때 아동학대의 획기적인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아동학대 및 방임에 대한 사회적 개입을 중요시해야 하는 당위성은 어린 시절 학대의 경험이 단지 개인적인 삶의 문제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우리 사회의 미래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만들어 가는 준비이자 사회적 투자라는 관점에서 더욱 강조 될 필요가 있다.


아동학대가 낳는 악순환


  과거 필자는 어린 시절의 학대 경험이 피해자에게 어떤 의미로 남아있는가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다. 연구를 진행하면서 시설에서 성매매로 보호관찰 처분을 받고 생활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무엇보다 안타까웠던 것은 부모의 학대와 방임으로 가정과 학교에서 벗어난 이들이 결국 자신에게 많은 고통과 슬픔을 줬던 학대와 폭력의 삶 속으로 다시 뛰어들어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토록 분노하고 고통스러웠던 삶의 방식을 다시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바로 폭력의 부정적 학습효과 및 둔감성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성폭력이 지속될수록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무기력과 체념으로 생활하며 결국은 본인이 학습한 방식으로 자신의 삶에 다가오는 과제들을 해결하고 대처한 것이다.
어린 시절 학대와 방임의 경험은 성인이 되고 나서 타인과 사회에 대한 공격적이고 범죄적인 행동들을 유발할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이에 대응하기 위한 사회적 비용은 실로 막대하다. 선행연구들에 의하면 사회적으로 심각한 범죄를 행한 이들 중 어린 시절 부모로부터 학대를 경험한 사람들의 비율이 매우 높음을 확인할 수 있다.이처럼 아동학대 문제는 단순히 아동기의 불행한 한 개인의 경험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 전체에 영향을 미치는 심각한 문제다. 이로 인해 많은 서구의 국가들이 아동학대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있다. 조기 발견과 효과적인 개입 및 예방을 위한 노력은 아동의 보호받을 권리를 실현하고 그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더불어 앞으로 다가올 미래의 우리 사회를 안전하고 건강하게 준비하는 ‘사회적 투자’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음 세대를 위한 사회적 투자


  현재 우리나라 아동학대 대응 실천현장은 ▲전문인력과 서비스 및 아동보호시설 ▲유관기관들간의 연계 ▲시스템 ▲예산 ▲사회적 인식 등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에 효과적으로 아동학대 및 방임을 예방하고, 피해아동 및 가정에 대한 개입 및 서비스 제공을 위해서는 국가 차원의 적극적인 노력이 강조돼야 할 것이다. 이에 향후의 방향성을 위한 몇 가지 방안을 제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아동과 가정의 특성에 맞는 전문적이고 개별화된 서비스 제공과 이를 위한 전문인력의 양성과 배출은 기본전제가 돼야 할 것이다. 현재 아동학대 업무를 담당하는 실무자들은 과도한 업무와 가해자와의 갈등, 그리고 낮은 급여 등으로 인해 소진과 이직 현상이 매우 심각한 상황이다. 이에 실무자들이 전문가로서의 자긍심을 가지고 아동학대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업무환경을 향상시켜야한다. 또한, 현재 공공에서 공무원이 신고 및 조사를 담당하고, 민간의 아동보호전문기관에서 심층 사례를 담당하는 이원화된 구조에서 공공과 민간의 효율적인 소통이 가능하도록 체계적이고 효과적인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도 필요하다. 전문인력 확보와 효과적인 개입 및 서비스 제공을 뒷받침할 수 있는 안정적 예산의 확보는 선결과제이다. 그동안 아동학대 예산은 범죄피해자보호기금과 복권기금 등을 통해 지원됐다. 다행히 최근에 국가예산으로 일반회계에 편성되기는 했으나, 책정된 예산은 아동학대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이에 아동보호에 대한 국가책임의 원칙이라는 측면에서 아동학대에 대한 예산 증액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학대 아동들의 보호를 위한 적극적인 관심이 강조돼야 할 것이다. 아동발달의 원리에서 설명되고 있듯이, 특히 아동학대는 발생 이후의 개입보다는 사전에 학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이 매우 중요하다. 이를 위해서 아동학대의 심각성 정도를 구분해 학대가 발생하기 이전 가족의 위험도에 따른 ‘차등적 대응’을 통해서 필요한 가정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 따라서 아동학대 및 방임의 위험요인이 있다고 판단되는 가정 및 부모에 대한 조기 발굴 및 개입이 이뤄져야 한다. 이를 통해 가정의 기능 및 부모의 양육능력을 향상시킬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이는 아동복지의 기본 가치인 ‘가족보존의 원칙’의 실현이며, 우리의 다음 세대를 건강하고 안전하게 준비하는 가장 확실한 ‘사회적 투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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