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철재 / 책인감 책방지기

 
[책을 권하는 사회]

조용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독서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각종 미디어와 콘텐츠의 등장으로 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독서를 권유하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책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통해 독서문화 전반을 살피고자 한다. 또한 책을 권하면서도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현실과 책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책을 찾는 사람들 ② 하나의 공간이 만드는 ③ 책의 미래 ④ 글을 읽고 씁니다

 

동네책방지기가 들려주는 ‘독서에 관한 생각’

이철재 / 책인감 책방지기

  사람들은 왜 독서를 하는 것일까. 개인마다 독서하는 이유는 다르다. 다양한 독서의 이유 중 다음의 세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는 지식과 지혜를 얻는 것이다. 둘째는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것이며 마지막 셋째는 감동하거나 위로받는 것이다. 물론 이 외에도 다양한 독서의 이유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책을 읽으며 지식과 지혜를 얻고,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감동과 위로를 받는 방법은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으로 영상이나 사진, 짧은 글을 읽는 것에 현대인이 익숙해지고, 여가 시간에 할 수 있는 다양한 취미가 늘면서 독서 인구는 점점 감소하고, 개인의 독서량 또한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년마다 실시하는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연간 성인 1인당 종이책 독서량’은 2011년 9.9권에서 재작년 2.7권으로 줄었다. 전자책을 포함하면 4.2권, 오디오북까지 포함할 경우 4.5권으로 늘어나지만, 성인들의 독서량은 10년 동안 급격하게 줄어든 것이 현실이다. 성인과 달리 학생의 독서량까지 줄어들지는 않았지만, 부모와 입시에 영향을 받았던 독서량은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부터는 아예 단절되기도 한다.
  특히 코로나19 기간 더욱 급격하게 독서량이 줄었는데, 재작년 국민 독서량이 2019년 대비 크게 감소했다. 재택근무나 실외 활동 감소가 유튜브를 비롯한 IPTV 이용자의 증가로 이어졌지만 독서량은 더 줄어든 것이다. 숏폼, 틱톡 등 짧은 영상의 인기가 올라가고, 카드 뉴스와 같이 요약된 자료를 보는 습관은 사람들이 짧은 호흡으로 정보를 얻는 것에 익숙해지게 만들었다. 이러한 행태는 긴 호흡으로 읽어야 하는 독서와 달리 깊이 있는 사유를 방해하기도, 사람들이 오랜 시간 책 읽는 것을 기피하게 만들기도 한다.

지식과 지혜를 얻는다

  다양한 지식과 지혜를 담고 있는 책이 있다. 역사책이나 과학책, 인문 교양책에는 저자의 지식과 경험이 담겨있다. 《총, 균, 쇠》는 1997년 첫 출간된 이후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읽는 책이다. 그런데 그 책에 담긴 지식은 우리가 인터넷을 통해 얼마든지 얻을 수 있는 지식이기도 하다. 오히려 최신 지식은 인터넷을 통해 더 빨리 알 수 있다.
  그런데 책을 통해 얻는 지식의 좋은 점은 무엇일까. 인터넷을 통해 얻는 지식은 단편적이거나 잘못된 정보를 포함하기도 한다. 그에 비해 책 한 권에는 작가의 관점에서 정제된 지식을 제공하고, 그것을 통해 온전한 지혜를 얻을 기회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타인의 생각을 들여다본다

  우리나라 사람은 토론에 약하다고 한다. 2013년, KBS에서 방영된 교양프로그램 〈공부하는 인간〉에서의 한 장면이 눈에 띄었다. 유대교 도서관인 ‘예시바(Yeshiva)’에서 학생들이 짝을 지어 시끄럽게 토론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의 도서관 풍경과 달라서 보게 된 것도 있지만, 서로 짝을 지어 상대편의 주장을 듣고 자신의 주장을 펼치는 것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필자 또한 토론을 하는 것에 대한 부담감을 가지고 있고, 잘하진 못한다고 생각한다. 이는 비단 개인의 문제만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가끔씩 TV에서 정치인들이 토론하는 모습을 볼 때, 상대편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자신의 주장만 펼치는 장면이 나오면 바로 채널을 돌리기도 한다. 토론이 어려운 것은 정치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보면, 토론을 잘하지 못하는 이유는 타인의 이야기를 잘 듣고, 그 이야기에 내 생각을 보태서 말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라는 생각이 든다. 이제라도 토론을 잘하려고 한다면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타인의 주장에 내 생각을 보태 조리 있게 주장하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그런데 ‘경청’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현대인이 점점 짧은 글이나 사진, 영상을 통해 짧은 호흡의 문장이나 지식만 접하다 보면, 더욱 긴 호흡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경청하는 방법에 도움이 되는 방법의 하나로 독서가 있다. 책을 읽는다는 것은 저자의 주장을 온전하게 끝까지 들을 기회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책을 많이 읽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을 온전하게 듣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나는 자기 일이나 경험에 관해 쓴 책을 좋아한다. 업세이(직업+에세이)라고도 하는데 내가 경험하지 못한 간호사, 경찰관, 공무원, 경비원 등의 삶 이야기를 읽다 보면 배우고 느껴지는 바가 많기 때문이다. 타인의 생각과 삶을 많이 알수록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허투루 듣지 않게 된다.

감동하거나 위로받는다

  우리는 소설이나 시, 에세이를 읽으며 감동하고, 공감하고, 위로받을 수 있다. 고전 명작을 읽어도 마찬가지다. 역사 소설, SF 소설, 추리 소설을 읽으며 소설 속 주인공이 되기도 한다. 시와 에세이를 읽으면서 우리는 그 순간 시인의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하고, 작가의 말 한마디에 위로받기도 한다. “문학(예술)이 가난을 건져주지는 못하지만, 위로는 해줄 수 있다”라는 말처럼 문학이 주는 위로는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
  니코스 카찬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1946)를 읽으며, 조르바가 돼 춤을 추기도 하고, 조르바의 그 춤을 지켜보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2007)를 읽으면서 작품 속 인물의 감정에 이입되기도 하고, 이미예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2020)을 읽으며 상상 속에서 꿈 백화점을 거닐기도 한다. 나태주 시인의 《풀꽃》(2014)을 읽으며, 나태주 시인의 마음을 느껴보기도 한다. 이처럼 문학책을 읽는 것은 나의 감성에 풍요로움을 준다. 또한 소설의 서사는 나와 다른 사람과의 관계, 대화에도 영향을 미친다. 문학책을 읽으니 쓰는 단어와 문장의 표현이 풍부해져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할 때도 더욱 설득력 있게 말하게 됐다.

 
 

책 생태계에서 동네책방의 역할은

  현대 사회에서 개인의 평균 독서량이 다시 늘어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라 생각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서의 세 가지 측면은 사람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제 역할을 할 것이다. 작은 동네책방을 운영하는 책방지기로서 동네책방이 갖는 의의를 생각해 본다. 전자책과 오디오북의 비중이 점점 늘어나고 있지만 종이책이 갖는 고유한 ‘물성’의 특성은 대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람들은 온라인 서점의 편리성을 좋아하지만, 한편으로 책방에서 직접 책을 고르는 경험도 소중하게 여긴다. 코엑스 ‘별마당 도서관’, 파주 ‘지혜의 숲’, ‘서울책보고’처럼 책이 놓인 공간은 지속해 생겨나고, 사람들이 많이 찾는 쇼핑몰에도 서점이 들어간다. 심지어 호텔 리모델링에 로비 서재가 만들어지기도 한다. 전국에 북 스테이도 많이 생겨나는 것을 보면 책이나 서점에 대한 관심이 절대 작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서점에서 책, 특히 종이책을 판매하는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작은 동네책방은 대형 서점이나 (공공)도서관과 다른 방식으로 운영해야 한다. 보유하는 책 종류가 많지 않으니 가능한 나만의 개성 있는 ‘북 큐레이션’이 필요하고, 큐레이션에도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어야 경쟁력이 생긴다. 손님이 선택할 수 있는 책 종류가 많을수록 구매와 만족도가 올라갈 수 있는 것 같지만 ‘인간’은 너무 많은 선택권보다 적은 선택권에서 더 많은 구매와 만족도 증가를 느낄 수 있다. 대형 서가에서는 흘려본 책도 작은 서가에서는 더 자세히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동네책방에서는 그 책방만의 친근함이 있어야 한다. 교보문고에 가면 많은 책을 볼 수 있지만, 사장은 물론 직원과도 이야기를 잘 나누지 않는다. 하지만 동네책방에서는 자연스럽게 책방지기와 책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동네책방이 꼭 책만 판매할 필요는 없다. 현대인의 독서량은 줄고 있지만 책과 책방에 관한 관심은 오히려 늘고 있기 때문이다. 책과 서점에서 파생된 콘텐츠들이 책방에 기회를 주기도 한다. 서점에서 독서모임이나, 북토크, 글쓰기, 책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며 책을 활용한 여러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도 가능하다. 오늘, 집에 가는 길에 동네책방에 들러서 책이 들려주는 다양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는 것은 어떨까. 동네 곳곳에 이러한 공간들이 더욱 단단히, 여러 곳에 자리 잡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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