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 조형예술학과 석사과정

 본 지면은 교내·외 대학원생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소통의 장’을 열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이번 호에서는 인지하지 못했던 습관을 통해 새로운 작품세계를 탐구하게 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사소한 것에서 시작된 나에 대한 새로운 궁금증. 그리고 타인에 대한 호기심은 이전에 알지 못했던 새로운 경험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편집자 주〉

 

 
 

손에 대한 이야기


이진영 / 조형에술학과 석사과정


  나는 사진을 찍을 때 종종 사진 속에 내 손을 같이 담는 ‘특이한 버릇’이 있다. 언제부터 이 버릇이 생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돌아보니 생각보다 굉장히 다양한 순간과 공간 속에서 나의 손을 사각형 프레임 안에 같이 등장시키고 있었다.
  우연히 발견한 이 특이한 버릇에 관심을 가지게 됐고, 지금까지 기록한 사진들 속에 얼마나 많은 손이 있었는지 한번 정리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기록한 사진들을 전부 꺼내어 돌아봤고, 그 속에 등장한 손 사진만 찾아서 모아보게 됐다. 내 손은 디지털카메라로, 필름카메라로, 핸드폰으로, 혹은 영상으로까지 기록돼 있었다. 폴더와 사진첩 사이사이를 보물찾기 하듯 찾아본 결과 난 1000여 장이 넘는 나의 손 기록들을 마주할 수 있었다.
  내 손은 낙엽이나 과자 등 무언가를 올려놓는 그릇이 되기도 했고, 때로는 어느 날 어느 시간대의 빛이나 그림자를 비춰보기도, 무언가를 잡아보기도, 혹은 물에 젖어 있거나 심지어는 잠겨있기도 했다. 영상 속에는 손가락 마디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기록돼 있었다. 이들 안에는 계절도 있었고 공간도, 빛도, 그림자도 있었다. 정확히는 무언가를 ‘하고있는 손’ 보다는 그 순간 속 ‘손 자체의 초상’이 담겨있는 것이었다.

왜 손인가요

  이 지점에서 항상 ‘왜 손인가요?’라는 질문을 항상 받게 된다. 이전까지는 손에 대한 생각을 그렇게 깊게 해본 적이 없었기에, 사진들을 정리하며 이참에 한 번 생각을 해봤다. 나는 어느 순간을 사진으로 담을 때, 내 주변의 개인적이고 일상적인 순간을 기록할 때가 많았다. 그 안에 내 모습까지 기록하고 싶어 사진의 사각형 영역 안에 쉽게 집어넣을 수 있는 내 손을 무의식적으로 등장시켰다는 게 나름의 결론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손’보다는 ‘나’를 더 바라보고 싶었다. 사진 속에 남겨진 배경, 대상,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만이 아닌 그 시선의 주인인 내 존재까지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렇다 보니 어떤 대상이 사진으로 먼저 기록되고 나면 바로 다음 사진에 이어서 그 대상과 손이 같이 등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모든 순간들은 저마다 다른 시간과 공간을 가지고 있고 온기도, 빛도 다르다. 그 속에서 어쩔 땐 내 손이 너무 차갑기도 하고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반대로 손이 작게 느껴지기도, 너무 뜨겁게 느껴진 적도 있다. 이 글을 읽는 원우들의 삶 속에서도 각자의 손이 다양한 감각으로 느껴졌던 경험이 분명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왜 손인가요?’에 대한 하나의 질문조차도 때에 따라 다르게 다가오고, 그에 관한 대답도 순간순간마다 조금씩 변하고 있다. 질문에 대한 답을 적어놓으니 그 답에 꼬리를 물고 또 다른 질문이 나타나기도 했다. 때로는 손이 표정보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다양한 감정을 말해주는 거 같았다. 손을 통해 무언가를 가늠하기도, 무게를 느끼기도, 감촉을 느껴보거나 그 온도를 재보기도 했다. 같은 손이었지만 순간마다 다른 역할을 맡았다. 내 시선으로 표정보다 더 입체적이고 다양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나’인 것이다.

정리하기


  이 손 사진들을 모으는 과정에서 하나의 결과물로 사진집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일단 수많은 손 사진들이 모이긴 했지만, 이것들을 분류하고 다듬는 과정 또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단순히 손 사진만 모은 사진집으로 보이기 싫었고, 조금은 재미 요소를 주고 싶어 일단 책의 크기부터 내 손의 크기와 같게 맞춰봤다. 손을 편하게 올려놓았을 때의 가로세로 길이가 곧 책의 가로세로 길이가 됐다. 그리고 책의 왼쪽 페이지에는 왼손을, 오른쪽 페이지에는 오른손만을 배치했다. 책을 잡는 손의 위치랑 책 페이지 속의 손의 방향이 같게 한 것이다.
  나는 오른손잡이여서 카메라를 주로 오른손으로 사용하기에, 왼쪽 손이 더 많이 기록돼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사진들을 정리하다 보니 왼손과 오른손이 의외로 골고루 기록돼 있었다. 무의식적으로 손 그 자체를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었던 것이다.
  세 번의 가제본을 거쳤고, 마찬가지로 세 곳의 인쇄소를 찾아 수정을 거듭했다. 그렇게 몇 달이 흘렀을까. 책이 마침내 완성됐다. 주변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몇몇 독립 서점에도 직접 입고 해 봤다. 책을 소개하는 보도자료를 만들었고, 몇 달에 한 번씩 정산을 하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이름 모를 누군가가 책을 사 주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묘한 기분이 들었다. 내 손 사진만 가득한 책을 사주다니!

또 다른 방법으로


  지난여름 대학원에서 같이 수업을 들었던 원우들과 좋은 기회를 얻어 전시를 하게 됐을 때, 나는 먼저 책으로 정리한 손 사진들을 전시하기로 마음먹었고, 책으로 먼저 묶었던 사진들을 이번에는 반대로 다시 풀어내는 과정을 거치게 됐다. 분명 책으로 정리를 했다고 생각했지만, 전시로 풀어내는 것도 또 다른 새로운 정리 과정이 필요했다.
  전시 설치 전날 쉽게 잠에 들지 못했고, 새벽 2시가 넘어 끙끙거리다 3시가 넘어서야 겨우 잠들 수 있었다. 그리고 아침 6시에 일어나 작품 설치를 위해 충무로에 있는 갤러리로 향했다. 벽에 붙일 손 사진들이 담긴 커다란 종이봉투가 구겨질까 봐 조심조심 봉투를 잡았고, 또 사뿐사뿐 길을 걸어갔다. 이른 아침 길을 가며 마주하는 사람들의 손들이 유난히 더 눈에 들어왔다. 저들의 손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그리고 그들의 손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했다.
  갤러리 공간 한쪽에 내 손 사진들이 붙여졌고, 전시 기간의 대부분을 갤러리에서 보내며 전시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전시 설명과 왜 손 사진을 담게 됐는지를 설명했다. 반복된 설명을 하면서도 같은 결을 유지했지만 사람인지라 그때그때 똑같지는 않게, 조금씩 다르게 설명을 하게 됐다. 손 사진을 통해 또 다른 새로운 사람들을 알게 되기도 했다. 전시가 끝난 지금 그때를 돌아보면 하고 싶은 말이 많았고, 그 때문에 손에 너무 많은 감정과 생각들을 담아내려 했던 건 아니었는지 스스로 되돌아보게 된다.

당신의 손은 어떤가요?


  나는 손을 보여주고, 손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사실 이것은 ‘손’이 아닌 “손 너머에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라 생각한다. 타인에 대한 궁금증은 결국 나에 대한 궁금증으로 연결됐다. 왜 나는 타인에 대해 궁금해 할까. 타인에 대한 궁금증은 누구나 가질 수 있겠지만, 상대의 어떤 점을 궁금해 하느냐에 대한 것은 사람마다 분명 다를 것이다.
  단순히 지금의 모습이나, 성격만이 아닌 그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어떤 이야기를 가지고 있는지 나는 그것들이 너무 궁금했다. 나에게는 ‘손’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다른 신체 부위일 수도, 사물일 수도, 공간일 수도, 혹은 다른 무엇이 될 수도 있다 생각한다. 시간은 흐르고, 그 대상이 바뀌거나 혹은 그것을 바라보는 내 자신이 바뀔 수도 있다. 나에게는 손이었지만 이 글을 보고 있는 당신에겐 무엇일지 묻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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