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태근 /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책을 권하는 사회]

조용한 공간에서 오랜 시간 독서를 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일이다. 각종 미디어와 콘텐츠의 등장으로 책에 몰두할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는 독서를 권유하고, 책을 만드는 사람들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이번 기획에서는 책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을 통해 독서문화 전반을 살피고자 한다. 또한 책을 권하면서도 이를 실천하지 못하는 현실과 책 문화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책을 찾는 사람들 ② 하나의 공간이 만드는 ③ 책의 미래 ④ 글을 읽고 씁니다

 

책과 독서는 사회적 선택과 활동


박태근 /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

  어떤 사회든 늘 책을 권한다. 물론 독서를 철폐하고 책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도 있겠으나 현존하는 문명사회라면 독서는 기본 권장 사항이다. 그럼에도 굳이 ‘책을 권하는 사회’에 물음표를 던지는 까닭은 그 내용과 양태 때문일 터, 미처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또는 소극적 동의 혹은 적극적 지지로 형성된 현실을 먼저 살펴보자.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재작년 발표한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 출판시장에서 학습참고서가 차지하는 비중은 42.6%이다. 학습참고서 시장이 줄어들고는 있지만 교재 등 유관 도서까지 포함하면 60%에 이른다는 의견도 있다. 이는 사회 구조 및 교육 정책과 긴밀하게 연결된 수치라 하겠다. 단행본 영역에서도 사회와 정책의 영향을 받는 부분은 적지 않다. 지난해 개정 교육과정 시안에서 ‘한 학기 한 권 읽기’ 관련 표현이 빠져 이후 정책 방향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는데, 출판계는 교육계 못지않게 격렬하게 반응했다. 당연히 독서 교육과 문화를 염려한 목소리겠으나 그 안에는 관련 추천을 통한 안정적 수요 기대도 포함돼 있었을 터, 특정 연령대 전체를 아우르는 교육 정책은 출판과 독서 모두에 압도적 영향을 미친다.
  이보다 구체적으로 현실을 반영하는 수치도 살펴보자. 서점에서 책을 구매하는 이들을 연령대별 비율로 봤을 때 유독 특정 연령대에서 전체 비율을 크게 상회하는 분야를 찾아볼 수 있는데, 20대의 경우 수험서·자격증, 컴퓨터·모바일, 외국어 등 소위 스펙이라 불리는 분야의 관련 서적이고, 30대에서는 유아와 육아 분야가 그러하다. 이 30대가 40대에 이르면 아이들이 어린이와 청소년이 되니 당연히 40대에서는 해당 분야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각각의 독서는 취향과 관심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되지만, 이러한 수치를 보면 책과 독서도 보편적 생애주기 위에서 이뤄지기에 사회적 선택과 활동으로 이해될 여지가 충분하다는, 그렇게 이해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책 권하는 사회의 최선

  몇 년 전 열린 출판 컨퍼런스에서 청년층의 독서 활동이 낮아지는 현실을 타개할 대책이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엉뚱한 소리가 될까 싶어 잠시 고민하다가 평소의 지론을 이야기했다. 주거 안정과 기본 소득. 어쩌면 사회는 책읽기를 부추기는 게 아니라 책을 읽을 상황을 만들어 주는 것이 최선 아닐까. 오래전 이야기지만 청소년 독서 실태 개선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국·공립대 통합’이라 답한 출판평론가의 지혜도 떠올려본다. 책을 권하는 목소리가 작아서가 아니라 메아리를 보낼 여유와 여력이 허락되지 않기에, 책을 권하면서도 독서를 허용하지 않는 사회에 이르렀다는 안타까운 이야기겠다.
  그래서일까. 실제 책을 권유하는 건 대체로 개인이다. 물론 문화체육관광부나 출판문화산업진흥원 등 각급 단체에서 도서를 선정하는 일이 여럿이지만 대부분 독자에게 권하는 게 아니라 출판사나 저자 등 생산자에게 혜택을 주는 방식이고, 그 목록이 독자에게 닿는 방식 역시 도서관 등 공공기관의 구매를 통해서 이뤄지는 것이지 해당 목록을 보고 독서로 실천하는 이를 상상하기는 어렵겠다. 특정 대학에서 선정하는 고전 100선류의 목록 역시 교육과 학습 영역에서는 큰 영향을 미치지만 독서의 맥락에서 본다면 긍정적 영향과 가능성을 찾기가 쉽지 않다.

책 권하는 개인의 활약

  책 권하는 개인을 찾는 일은 어렵지 않다. 유튜브나 SNS에서 “책 추천” 같은 단어를 검색해보면 엄청나게 많은 결과가 나온다. 수익을 목적으로 관련 활동을 벌이는 경우도 많지만 수효로 본다면 각자가 읽은 책을 나누기 위한 게시물이 훨씬 많다. 각 게시물과 개인의 영향력은 미미할 수 있겠으나 이들이 전하는 책과 독서의 가능성을 한데 모은다면 그 총합은 엄청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책 권하는 개인 중 주로 눈에 띄는 사람은 인플루언서다. 근래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인데, 사저가 자리한 마을에 서점까지 연다고 하니 앞으로 활약이 기대가 된다. 팟캐스트 초창기부터 최근 인스타그램 라이브까지, 책 권하는 일을 꾸준히 해온 소설가 김영하도 빼놓을 수 없고, 유튜브 세계에서 책 이야기가 한편에 자리하는 데 역할을 톡톡히 한 겨울서점의 김겨울도 특기할 만하다.
  앞서 언급한 이들 모두 광고와 거리를 두고 온전하게 책 권하는 개인을 지키고 있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근래 책 추천은 광고와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서점이나 독자 대상 홍보에 힘을 쏟기보다는 소셜미디어에서 반응을 확인하고 입소문을 낼 수 있는 콘텐츠 생산과 채널 확장에 집중해 관련 채널을 수십 개씩 직접 운영하는 출판사도 있고, 채널을 보는 이들에게는 운영 주체가 출판사라는 걸 굳이 드러내지 않고 다른 출판사의 책 광고를 싣는 경우도 있다. 그러다 보니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통상의 책 권하는 활동인지, 책을 권할 때 권하는 이의 주체를 어디까지 밝히고 안내해야 할 필요가 있을지 등 전에 없던 논의점이 생겨나는 요즘이다.

책 권하는 일의 변함없음

  그런가 하면 세상의 변화에도 크게 흔들리지 않은 책 권하는 모습도 있으니, TV·라디오·신문 등의 전통 미디어다. 필자 역시 10년 넘는 세월 동안 각종 매체에서 책을 권한 터라, 나름의 경험담을 나눌 수 있겠다. 조금 편하게 말하자면 전통 미디어에서 책을 말하는 공간은 계륵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매체별로 살피면 나름의 도전과 성과 그리고 역사와 전통도 찾아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최소한의 역할과 의미 부여로 유지되며 변화나 진전을 위한 투자나 지원은 찾기 힘든 상황이라 평할 수 있겠다. 물론 악조건 속 지금까지 이를 지켜온 이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도 든다. 일간지의 서평면은 더 줄어들 수 없을 정도로 축소됐고, 지상파에서는 책 관련 방송을 찾아볼 수 없게 됐으며, 라디오에서 책을 중심으로 다루는 방송은 주말 이른 아침 편성에서 탈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런가 하면 여전히 새로운 돛을 세우고 닻을 내리는 책 권하는 시도도 있다. 2020년 시작한 계간 《서울 리뷰 오브 북스》는 “멋진 서평이 화제가 되는 세상, 서평이 일상에 자리 잡는 문화”라는 꿈을 꾸며 문을 열었고, “신뢰할 수 있는 책, 중요한 주장을 담은 책, 세상에 변화와 차이를 만들어 내는 책을 발굴하기 위한 사유의 장”을 지향하며 0호부터 8호까지 길을 냈다. 한 해 뒤인 작년, 창간호를 펴낸 서평지 《교차》는 반년 간으로 발행되며 학술서를 중심으로 길고 깊은 글을 담는다. 창간호 주제는 ‘지식의 사회, 사회의 지식’으로 어쩌면 책 권하는 사회와도 연결되는 이야기를 다뤘고, 2호에서는 ‘물질의 삶’을 주제로 ▲과학철학 ▲신유물론 ▲페미니즘 철학 ▲종교학 ▲현상학 ▲미디어학 ▲기술사 ▲정치경제학 분야의 책을, 3호 ‘전기, 삶에서 글로’에서는 다양한 시대와 인물의 삶을 담은 전기 장르를 바탕으로 ‘한 인간을 쓴다는 것’을 탐구한다.

책 권하는 일에는 숨김이 없다

  푸드 저널리스트 마이클 부스(Michael Booth)는 “음식 관련 글을 쓰는 작가들이 맛집 추천을 요청 받을 때, 꽤 괜찮은 집을 소개해주기는 하겠지만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곳은 절대 알려주지 않을 것”이라며, 그럴 때 적당한 곳으로 권하는 목록을 ‘그레이 리스트’라 칭했는데, 이 글을 보고 적잖이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책을 권할 때 이런 정도로 숨기며 적정선의 책을 고민한 적이 있던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책을 권하는 거의 모든 사람과 경우에서 그레이 리스트를 떠올리기는 어려웠다. 그나마 유사한 상황을 찾자면 좀 더 제대로, 잘 권하고 싶어서 온전히 읽을 시간을 확보하고 재차 읽을 기회를 찾고 생각을 정리하고 표현을 가다듬고자 애쓰며 그 책을 권하는 때를 가능한 미루는 정도 아닐까.
  그럼에도 책 권하는 일이 무작정 무해하고 유익하다는 과신은 경계할 필요가 있겠다. 책을 권하는 건 개인이지만 그 책은 어쩔 수 없이 누군가를 만나 사회의 맥락 위에 놓일 테니 말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 적절한 책을 권한다는 핑계로 기준과 원칙이 오락가락하지는 않았는지, 상대를 충분히 알지도 못하면서 지레짐작하며 엉뚱한 책을 권한 건 아닌지, 비로소 책 너머의 사람을 떠올려본다. 그간 숱한 책을 권했으나 별 영향이 없었던 까닭을 이제야 깨달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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