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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학술
[토론문] 아이러니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식공현진 / 다빈치교양대학 강사
이소민 편집위원  |  sominsophia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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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호]
승인 2023.03.05  11: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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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러니의 세계에서 살아남는 방식


공현진 / 다빈치교양대학 강사

 

  오랫동안 여성시는 거대 담론 아래에 놓이거나 혹은 외부로 밀려 나가는 자리에 위치해 평가받아 왔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판단으로부터 여성시를 온전히 길어 올려 제자리를 찾아줄 방법은 없을까. 여성시에서 ‘여성’이라는 항을 삭제해버리거나 ‘여성’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방식이 적절한 대안이 될 수 있을까. 황선희의 박사 논문 「한국 현대 여성시의 아이러니 연구-김승희·김혜순·최승자의 시를 중심으로」는 그러한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면서, ‘과잉 여성화’의 독법도, ‘과소 여성화’, ‘무성화(無性化)’의 독법도 여성시에 접근하는 올바른 태도가 될 수 없다고 답한다. 황선희는 텍스트의 무성화를 지양하면서도 ‘과잉 여성화’와 ‘과소 여성화’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며 여성시를 읽는 방식이 개발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여성시에 대한 ‘과잉 여성화’의 독법이나 ‘탈여성화’의 독법을 모두 거절하면서도 여성시를 그 자체로 끌어안아 읽어낼 필요를 강조한 황선희는 여성시에서 포착되는 ‘아이러니’로부터 그 가능성을 발견한다.
  황선희의 연구는 아이러니 개념을 중심으로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의 시를 살핀다. 시 문학 연구에 있어 그동안 주로 남성 시인을 다루는 방법론으로 사용되어왔던 아이러니를 여성 시를 탐구하는 방법론으로 내세운 것에서부터 연구자의 문제 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황선희는 한국 현대 여성시를 새롭게 읽는 방법으로 여성 시인들이 전유해 온 ‘실천으로서의 아이러니’를 내세운다. 저자는 ‘실천으로의 아이러니’라는 핵심 개념을 통해 한국 현대 여성 시사의 중요한 시인인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의 시를 섬세하게 읽어내는 가운데, 나아가 여성 시사에 대한 통시적 고찰의 지점을 마련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미덕은 다소 혼란스럽게 흩어져 있던 ‘아이러니’ 개념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면서도 여성시 텍스트가 도식 안에 갇히지 않도록 시적 주체의 삶의 양식과 언술을 섬세히 다루려 하는 연구자의 마음이 읽힌다는 것이다. 황선희는 논문의 각 장에서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의 시가 드러내는 ‘상황의 아이러니’, ‘시적 공간의 아이러니’, ‘언술의 아이러니’를 살핀다. 세 시인의 시적 주체가 현실의 모순을 어떻게 직시하고 어떠한 방식으로 세계의 부조리를 폭로하는지 시 텍스트를 통해 규명해낸다. ‘안-밖’의 수평적 표상을 통해 ‘안’에 속박된 여성 주체의 현실을 드러낸 김승희, ‘아버지-딸’, ‘어머니-딸’의 표상을 통해 시적 주체가 겪는 딜레마를 보여준 김혜순, 홀로 고립된 존재인 시적 주체로 나타나며 시에 대한 양가적 욕망을 보여준 최승자 등 황선희는 세 시인의 시적 주체가 처한 이중 구속의 상황과 대처 방식을 비교해서 보여준다. 이때 황선희는 이들이 여성 주체로서 겪어야 했던 ‘고통’의 지점들을 함께 나란히 보여주면서도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의 시가 ‘여류 시’라는 말로 손쉽게 묶이지 않도록 이들 각자의 개별적 삶과 자리들을 밝히고 있다.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김승희 시의 여성 주체가 현실을 ‘절반만’ 긍정하는 것은 ‘애매함과 어정쩡함’의 한계가 아니라 ‘전복의 가능성’이 될 수 있다는 포착, 김혜순 시의 시적 주체와 분리되지 않은 채 등장하는 ‘어머니’ 표상은 동시성과 복수성을 띠는 존재라는 분석, 희망과 절망이 공존하는 최승자의 시에서 서로 다른 것이 함께 놓이고 양가성이 확장되는 지점을 짚어내는 부분은 특히 주목된다. 세 시인을 비교함으로써 각 시인들의 개성적 특징들을 선명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나아가 황선희는 세 시인이 ‘아이러니스트’로서 ‘아이러니 정신’을 갖고, “삶의 우연성을 긍정”하며 “그것을 끊임없이 재서술”해나간 방향까지 짚어낸다. 황선희는 김승희를 ‘지성의 아이러니스트’로, 김혜순을 ‘재생의 아이러니스트’로, 최승자를 ‘거부의 아이러니스트’로 명명한다. 저자는 김승희에게서는 지성의 힘과 더불어 삶에 대한 사랑을 발견하고, 김혜순에게서는 새로운 세계를 끊임없이 재생하는 능력을 발견하고, 최승자에게서는 거부의 언술에서 뻗어 나가는 사랑의 정동을 발견한다. 세 시인의 시에서 약동하는 ‘정동’의 힘을 드러내며, 결국 각 주체가 삶을 사랑하고 살아가는 방식들을 우리에게 마주하게 하는 것이다.
  이 논문에서 보여주는 세 시인의 삶과 시를 쫓아가다 보면 각각의 여성 주체들이 현실의 고통과 좌절에 침착하고 마는 것이 아니라 결국 고통을 자원으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실천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황선희는 이러한 ‘자기 자신에 대해 말하기’가 그 자체로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는 ‘여성 주체로서의 인식과 말하기’로 여성 시사를 조망할 수 있는 단초를 마련해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황선희의 박사 논문은 세 시인의 시를 ‘방법’에 머물지 않도록 하려는 문제 의식이 성실한 작업으로 이어져 있는 연구이다. 황선희의 논문은 거듭 여성 시인들에게 있어 아이러니는 ‘단순한 방법’의 차원이 아니라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의 일환’이었다고 강조한다.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 시에 나타나는 각각의 특징들이 시적 전략과 방법으로만 설명되는 것을 넘어 이들의 시에서 각자의 ‘삶’을 읽어내고자 한 연구자의 섬세한 시각이 돋보인다. 아이러니를 통해 한국 여성시사, 현대 시사의 지형도를 그려나가려는 논문의 문제 의식이 앞으로 더욱 확장되고 힘 있게 계속되기를, 바라고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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