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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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학술
[중앙아카데미아]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다시 듣는 여성시인들의 목소리황선희 / 국어국문학 박사
이소민 편집위원  |  sominsophia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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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1호]
승인 2023.03.05  11: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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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현대 여성시의 아이러니 연구』 황선희 著 (2022, 국어국문학과 현대문학 전공 박사논문)
본 지면은 학위 논문을 통해 중앙대 대학원에서 어떤 연구 성과가 있는지 소개하고, 다양한 학과의 관점을 교류하고자 기획됐다. 이번 호에서는 국어국문학과 황선희의 박사 논문 『한국 현대 여성시의 아이러니 연구』를 통해 아이러니라는 방법론에 대해 살펴보고 나아가 한국 현대 여성시의 아이러니가 무엇인지 함께 연구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다시 듣는 여성시인들의 목소리

 

황선희 / 국어국문학 박사

 

  여성문학에 대한 연구는 이전에도 꾸준히 제출됐지만, 페미니즘 리부트 이후 더욱 활발하게 생산되며 역동적인 담론장을 형성하고 있다. 여성 문인들을 소위 ‘여류’라고 지칭하던 관습은 점차 비판적 검토의 대상이 됐고, 여성 문인들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새롭게 의미화하는 일의 중요성은 지속적으로 강조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 현대시의 역사에서 1세대 여성시인들의 성취는 미미한 것으로 취급받아 왔고, 1980년대를 전후로 등장한 여성시인들의 성취는 때로는 파괴적이지만 돌올한 것으로, 때로는 ‘여성(성)’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되곤 했다. 이 논문은 여성시를 둘러싼 당대 비평의 양가적 태도를 재점검하고 ‘여성’이라는 삶의 조건이 1970년대 시단에 나와 현재까지 활동하고 있는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의 시에서 어떠한 기법으로 시화(詩化)하고 있는지 살펴봤다.
  이 논문에서는 특히 세 시인의 작품에 나타나는 아이러니의 여러 양상을 살핌으로써 시작 방법론이자 시의 미학적·정치적 실천으로서 아이러니가 수사법 이상의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다는 점을 논증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궁극적으로는 여성시 연구 방법론으로서 아이러니가 위치할 수 있는 독특한 자리를 탐구해 보고 아이러니의 미적 원리와 정치적 효과를 규명하고자 했다.

 

   
 

 

‘여성’이라는 존재의 아이러니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는 등단 초기부터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하며 시, 소설, 비평, 번역 등 다양한 장르를 횡단해 왔다. 엄혹한 시대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라는 이중적 억압에 속박된 여성시인들의 시적 주체는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끝까지 말하기 위해 언어를 길어 올리고 ‘나’에게 적대적인 현실 속에서도 ‘나’를 발견해 나간다. 그럼에도 세 시인의 시는 부정, 해체, 탈구조, 이탈, 파괴 등의 단어로 포착되며 ‘위험하고 공격적인’ 것으로 평가받곤 했다. 그러다 보니 이들의 시 쓰기 의식이나 현실 인식은 ‘방법적’인 것에 국한돼 축소해석됐고, 시의 실천적 측면은 부분적으로만 논의됐다.
  약자는 강자의 언어를 전유함으로써 미학적이고도 정치적인 실천의 영역에 나아갈 수 있다. 취약한 자리에 있는 시적 주체의 아이러니는 전통적인 문학관에서 요구하는 대로 ‘온건’할 수 없으며, 그 불온함의 방향을 여러 층위에서 논의하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할 때 비로소 설명될 수 있다. 아이러니에도 ‘감정적 억양’이 있다고 주장한 린다 허천(Linda Hutcheon)에 따르면, 아이러니의 감정적인 차원은 아이러니 연구의 시작점이자 고의적인 한계일 수 있으며 그렇기에 아이러니는 중립적인 원리일 수 없다.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는 언제나 ‘더’ 중요하다고 판단됐던 거대 담론들에 밀려 ‘나중에’라는 말로 방기되던 여성의 문제를 시의 몸인 시적 언술로써 실천한 시인들이다.

 

우연과 균열에서 정동을 길어 올리는 아이러니스트의 태도

 

  그간의 시론에서 아이러니는 다양한 방식으로 정리되거나 분류돼 왔는데 주로 이중성을 전제로 하는 수사학적 짝패 개념으로 여겨지곤 했다. 이 연구에서는 아이러니의 다양한 층위를 살펴보기 위해 아이러니를 ‘상황의 아이러니’, ‘언술의 아이러니’로 정리하고 이 두 개념을 잇는 가교로 ‘시적 공간의 아이러니’를 설정했다. 시적 주체가 처한 이중 구속의 상황은 그로 하여금 이 세계의 모순을 직시하게 하고 양가적 태도를 취하게 한다. 각 시인이 구체적으로 어떤 표상을 통해 현실 세계를 형상화했는지를 살펴봄으로써 상황의 아이러니를 확인할 수 있다. 시적 공간의 아이러니를 다루기 위해 이 논문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의 헤테로토피아(Heterotopia) 개념을 동원하는데, 그것은 탈경계와 탈중심의 사고를 기반으로 하며 이분법을 해체하고 ‘사이공간’을 수용하는 개념이다. 언술의 아이러니를 살펴보면 각 시인의 시가 보이는 지향성과 정동을 확인하고 의미화할 수 있다. 정리하면, 현실에 대한 인식이 먼저 있고 그것이 시적 현실이 되며 만들어지는 시적 공간을 살핌으로써 시의 정동이 탄생하는 지점으로 언술을 의미화할 수 있는 것이다.
  김승희의 시에 나타나는 이중 구조는 ‘천상-지상’으로 대표되는 수직적 표상이었다가 ‘안-밖’의 수평적 표상으로 점차 변모한다. 이는 여성의 삶을 경유한 시인이 현실 세계에 나타나는 아이러니의 지점을 포착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나타난 변화이다. 시적 주체에게 살아간다는 것은 거부할 수도 없고 온전히 따를 수도 없는 구속이자 고통이지만, 지성과 슬픔을 품은 웃음으로 인해 계속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여성시에 결여됐다고 여겨져 온 ‘지성’은 김승희라는 시인을 만남으로써 자기-지시성을 만들고 아이러니의 폭을 확장하게 한다.
  김혜순의 시에 나타나는 아버지와 어머니의 표상에 대해 ‘딸’은 중층적인 시선을 보인다. 시적 주체가 봉착한 딜레마는 해결되기보다는 배제되며 현실에 균열을 가한다. 김혜순은 어머니로 대표되는 여성 표상들을 통해 동시성과 복수성, 다중성을 보여 준다. 김혜순의 시적 주체가 보이는 재생과 순환 지향성은 단일한 세계나 존재를 만들어 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계속해서 긴장하는 역동의 장을 만든다. 이는 자기 갱신으로 이어지며 1990년대까지의 시 텍스트뿐 아니라 근작에서도 새로운 실험의 장을 열어 보여 준다.
최승자의 시에서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시적 주체들의 삶은 그치지 않고 어떻게든 지속된다. 이때 나타나는 ‘시인’ 표상은 세계에 대한 믿음을 버렸으면서도 다시 희망을 갖고 싶어 하는 모습을 보이며 양가적 욕망을 드러낸다. 최승자의 시적 주체는 표현할 수 있는 거부의 최대치를 보여 주면서도 ‘삶’을 거머잡는 사랑의 정동을 드러낸다. 폭력과 고독으로 가득한 세계를 가장 강렬하게 거부하는 데서 가장 강렬한 사랑의 정동이 발생한다는 아이러니는 여성이자 시인으로서 최승자가 보여 준 새로운 지점이다.
  거대 담론의 틀 안에서 세 시인의 시를 살피게 될 경우 아이러니는 알레고리에 예속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시 텍스트가 연역적으로 해석됨으로써 그 운신의 폭이 좁아질 수 있다. 그들의 몸짓을 적극적으로 평가하기 위해서는 미학과 정치학을 잇는 광의의 아이러니 개념으로 여성시를 독해하며 의미화하는 일이 전제될 필요가 있다. 우연성과 불확실성, 잉여의 자리를 인정하는 데서부터 출발하는 아이러니의 정신은 삶의 복잡한 단면들을 긍정하게 하고 그것을 끊임없이 다시 보고 다시 서술하게 한다. 또한 파열된 현실을 봉합하거나 조화롭게 서술하기보다는 부서져 열린 곳을 있는 그대로 흔들리게 놓아둔다. 고통을 자원으로 삼아 언술을 구축하고 파괴한 뒤 새로운 창조의 방향으로 나아갔다는 점에서 앞서 언급된 세 명의 시인은 한국 여성시사의 돌올한 아이러니스트(Ironist)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부서지는 몸과 마음, 부서져 열리는 삶

 

  여성시의 표준을 유순함, 균열이나 모순 없는 모성, 조화, 포용력, 움직이지 않고 고여 있는 감정 및 정서에만 고착한다면 아이러니스트 여성시인들의 시는 돌출적이고 불안정하거나 불온한 텍스트로 읽힐 수밖에 없다.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의 시를 다룬 초기 비평의 관점처럼 방법적 차원에 국한해 이들의 시를 해석할 경우, 여성적 자의식을 언술로써 드러낸 후대 여성시인들의 성취를 선배 시인들과 쉽게 변별할 수 없다. 그동안 협소하게 다뤄져 왔던 아이러니 개념을 확장한다면 모순과 균열의 자리에서 태어나는 여성시를 읽을 때 유용할 것이라 판단한다.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에게 있어 아이러니는 단순한 ‘방법’이 아니라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실천의 일환이었다. 이들이 보여 준 성취는 여성이자 시인이라는 이중의 조건이자 곤혹 가운데서 계발된, 부단한 노력의 결과이다. 수사학적 방법을 넘어서는 차원에서 아이러니의 미학적·정치적 실천을 보여 준 김승희, 김혜순, 최승자 세 시인은 모두 아이러니스트에 해당하며 1990년대 이후의 현대 여성시가 다다를 수 있는 새로운 지평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세 시인이 시대와 제도, 남성으로 대표되는 대타자의 질서와 직면하고 그것들의 폭력성을 폭로하거나 은폐하면서 빚어내는 아이러니의 지점은 한국 현대 여성시사를 기술하고 방법론을 구축하는 데 있어서도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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