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연 / 리움미술관 교육실장

[예술_뮤지엄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이번 기획에서는 ‘뮤지엄’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뮤지엄은 전시기능 이외에도 수집과 보존기능, 미술정책 및 학예 연구, 교육 및 출판기능 등 현대에 들어와 다양한 기능을 갖게 됐다. 이에 뮤지엄의 각 기능과 업무를 살펴보고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뮤지엄 패러다임 변화 ②연구 및 수집의 장 ③전시기획과 운영 ④뮤지엄의 출판기능

 

미술관은 무엇을 출판하는가

 

구정연 / 리움미술관 교육실장

 

  올해 9월, 한국 근현대미술사 120년을 조망한 개론서 『한국미술 1900-2020』 영문본이, 작년 9월에는 국문판이 출간됐다. 이 책은 국립현대미술관이 한국미술 연구사업의 일환으로 3년간 진행한 연구 출판 프로젝트의 결과물이었다. 각계의 한국미술 전문가 34명이 집필에 참여했고, 400여 점의 원색 도판이 함께 수록됐다. 혹자는 미술관이 아니라면 이런 책을 만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로 상당한 시간과 인력이 투여됐다. 400여 점의 도판에 대한 저작권 이용 동의, 새로운 원고 커미션, 한영 번역, 영문 감수 및 교정 교열 등은 오랜 시간과 많은 예산이 투여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력적인 차원에서 이를 전담하는 부서 연구기획출판팀(현 미술정책연구과)이 별도로 있었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미술관이 과연 이런 책을 계속 만들 수 있을까. 아니 만들어야 할까. 그러나 미술관은 출판사처럼 전문 편집 인력이 구성돼 있거나 독자적인 출판부가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술관은 무엇을, 어떻게 출판해야 할까.

 

큐레이토리얼 확장으로서 출판

 

  미술관 출판이라고 하면, 대개 전시 도록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전통적인 미술관의 역할 자체가 전시 중심으로 이뤄지다 보니 그와 관련된 책자가 당연히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전시 도록은 사실상 전시와 직접 맞닿아 있기 때문에 전시 담당 큐레이터가 편집자의 역할을 맡아 작가나 필자와의 협의를 거쳐 책을 만든다. 미술관 출판물 가운데 다양한 시각성과 극적인 연출이 허용되는 곳은 전시 도록이라고 생각하는데, 전시 종류에 따라 그 편집 방향과 제작 방식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개인전의 경우, 지면은 거의 전시와 동등하게 인식된다. 그러다 보니 전시를 고스란히 옮기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전시 전후까지 기록하려는 시도가 자주 있다. 예를 들어 마치 실제 전시를 보듯이 전시장의 모습이 충실하게 기록되거나 작품의 제작과정과 작가 노트가 담긴 아카이브 자료가 게재되거나 전시의 확장적인 이해를 위해 다양한 필자의 원고들이 수록 되는 식이다. 어떤 때에는 도록 디자인 자체를 작가가 전적으로 맡아 진행한다. 그래서 개인전 도록은 아티스트 북, 모노그래프, 전시 아카이브 북, 카탈로그 레조네 등 갖가지 방식으로 기획·제작된다. 앞서 말했듯이 이 모든 과정에서 작가는 책의 콘텐츠, 필자 선정, 지면 디자인, 인쇄 및 제본 방식 등 모든 프로세스에 기꺼이 참여하길 원한다. 즉 개인전 도록은 전시만큼 작가의 자율성과 주권이 작동되는 곳으로 전시와 출판의 관계 역시 작가에 의해서 자유롭게 설정된다.
  반면, 기획전 연계 출판물은 특정 주제를 중심으로 커미션된 원고들이 많게는 6~8편이 수록돼 선집 형식으로 제작된다. 이런 도록은 다면적인 관점에서 주제 연구의 심화와 전시 주제의 외연 확장을 목적으로 삼아 기획되는데, 왕왕 전시와 연계한 별도 단행본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현실문화연구와 공동 출판한 단행본 『귀신, 간첩, 할머니―근대에 맞서는 근대』(2014) 는 SeMA 비엔날레 미디어시티서울 2014의 전시 도록과 쌍을 이루며 비엔날레 주제를 다양한 필자를 통해 전해준다. 또한 전시와 별개로 개인 작품집이 단행본의 형식으로 발간되기도 하는데, 양혜규 작가의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2009)가 대표적이다. 이러한 시도는 전시 도록의 접근성이 제한적이라는 사실에서 비롯돼 점차 상당수 미술관 출판물의 단행본화 및 전문 출판사와의 공동 출판을 가져왔다고 생각한다. 이런 단행본 형식이 얼마나 미술 출판의 대중 보급을 용이하게 했는지 확실한 자료는 없지만 여전히 유효한 형식임에는 틀림없다.

 

연구·아카이브로서 출판

 

 
 

  얼마 전 샤르자예술재단이 주최한 아트북페어 ‘포칼 포인트(Focal Point)’가 개최됐다. 재단이 제작한 전시 도록이 눈에 띄었는데, 마치 총서처럼 판형과 디자인이 동일했고 한 손에 잡힐 정도로 작은 사이즈에 책의 두께 역시 그리 두껍지 않았다. 샤르자예술재단에 연구출판팀이 있다는 걸 익히 알고 있어, 이곳에 전시 도록 제작 여부를 물었더니 전시팀에서 직접 만든다는 대답을 들었다. 대신 연구출판팀은 특정 작가의 아티스트 북이나 모노그래프, 혹은 연구 기반의 출판물을 지원하거나 아트북페어를 운영한다고 한다.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재단이 직접 출판을 하는 대신 지원 기금을 통해 공동 출판을 시도한다는 점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역시 전시 도록과 연구 출판물을 각기 다른 부서에 분담하고 있으나 초창기 연구기획출판팀이 미술관에 신설됐을 때만 해도 대다수 학예사들은 이곳을 전시 도록을 출판하는 부서로 인식했고 일부는 미술관이 왜 출판을 하냐며 강하게 비판했다. 그런 상황에서 미술관 출판은 그 역할과 범위를 어디까지 설정하고 미술관의 어떤 지식과 정보를 지면으로 옮겨낼 것인지를 고민할 수밖에 없다.
  미술관 출판의 당위성은 전시를 제외하면 소장품이나 아카이브, 작가 연구의 결과를 공적화(Making Public)하는 데 있다고 본다. 출판이라는 행위가 곧 무언가를 공개적으로 내보이는 것을 뜻한다면, 책이야말로 이런 공적화에 가장 최적화된 매체다. 전시 프로그램과 별개로 출판은 전시가 다루지 못한, 미술관의 여러 자원, 즉 소장품과 아카이브 등을 수장고에서 꺼내와 자원의 실재함을 공개하고 학술적인 연구의 장을 마련한다. 예를 들어, 국립현대미술관 『현대미술연구』(현 『국립현대미술관 연구』)와 『호암미술관 논문집』(이후 2000년에 발간된 『삼성미술관 연구논문집』과 통합되어 『삼성미술관 Leeum 연구논문집』으로 재창간)은 각각 1989년, 1996년에 창간됐다. 이는 미술관학과 소장품 연구에 기반을 두고 관내 학예사와 외부 연구자들의 글을 수록한다. 비슷한 사례로 영국 테이트미술관의 『테이트 페이퍼스(Tate Papers)』나 암스테르담시립미술관의 『스테델릭 스터디스 저널(Stedelijk Studies Journal)』은 미술관의 현재적 실천들―전시, 소장품, 프로그램 등―과 동시대 미술 담론을 연구하는 온라인 연구 저널을 발행한다. 여기서 출판은 일종의 연구 플랫폼으로서 작동해 미술관의 실천과 활동을 학술적으로 연구하고 동시대 미술 지식을 미술관 안에서 맥락화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최근 국·공립미술관에서 아카이브 관련 논의가 활발한 가운데, 아카이브와 출판의 관계 역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출판은 아카이브를 통해 수집된 자료들을 일차적으로 보여주면서 동시에 파편화된 자료들을 맥락화하고 역사화하는 연구를 추동한다. 홍콩 아시아아트아카이브(AAA)의 연구 프로젝트나 애프터올(Afterall)의 전시사(Exhibition Histories) 시리즈를 보면, 아카이브·연구 기반의 출판물인 걸 알 수 있다. 특히 전시사 시리즈는 1차 자료를 중심으로 해당 전시에 대한 커미션된 원고와 인터뷰 등을 수록한다. 이처럼 기초적인 연구 자료를 공개함으로써 아카이브 출판물은 다음 세대의 연구자를 위한 교육 자료로 사용되고 또 후속 연구로 확장될 가능성이 있다. 한편,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발간한 『MMCA 아카이브: 김종성 컬렉션』은 1차 자료를 목록화하고 해제와 함께 각 자료 이미지를 수록한 책으로, 실물 아카이브 열람에 도움이 되는 일종의 디렉터리에 가깝다.

 

앞으로의 출판

 

  미술관의 정의와 역할은 시대적 상황에 따라 변해왔다. 2019년 9월, 교토에서 열린 국제박물관협의회(ICOM) 총회에서 미술관 정의에 대한 논쟁이 한 차례 있었고, 마침내 올해 8월 프라하에서 열린 ICOM 총회에서 뮤지엄에 대한 새로운 정의가 아래와 같이 승인됐다. “미술관은 (중략) 모두에게 열려 있고 접근 가능하고 포괄적이어야 하며, 다양성과 지속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 미술관은 윤리적으로 전문적으로 다양한 공동체들과 협력하며 교육, 즐거움, 성찰과 지식 공유를 위한 다양한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최근 50여 년간 미술관의 주요 덕목이 사회의 유·무형 유산을 수집·보존·연구하고 이를 소통하여 전시하는 것이었다면, 앞으로의 미술관은 새로운 정의에 부합하는 새로운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그 과정에서 미술관의 출판 활동은 다양한 지식을 공유하고 교육과 배움, 그리고 연구를 위한 필수불가결한 도구로 작동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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