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영 / 조형예술학과 사진전공 석사과정

 

무엇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나요

 

이진영 / 조형예술학과 사진전공 석사과정

  작년 초, 반년 정도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1인 출판사를 덜컥 차리고 말았다. 일반 사원에서 이젠 나름 대표라고 말하고 다닐 수 있는 엄청난 신분 상승이 한 번에 이뤄진 것이다. 어느 이름 모를 회사에 다니고 있는 평범한 직원이라고 나를 소개하기 보단, 그래도 대표라고 말하고 다니는 게 역시 좋다 생각한다. 후반기에는 본교 대학원에 입학하게 되면서 작가이자, 대표이자, 대학원생이라는 세 가지의 신분이 생겼고, 이를 항상 적절하게 잘 활용하고 있다. 사회생활에 있어서 여러 신분은 종종 유용하게 쓰이곤 하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책일까. 나는 사진을 주로 다루는데, 기록하는 것에 비해 정리하는 것을 굉장히 어려워한다. 그래서 항상 쌓아두고 끙끙거리는 버릇이 있다. 대학교 수업 중 우연히 책을 만드는 수업을 접했는데, 거기서 책 만드는 법을 조금 배우게 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내가 가진 무언가를 책으로 풀어낸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그 후로도 소소하게 나만의 작은 책들을 꼼지락, 꼼지락 계속 만들어 오다 보니 출판사까지 차리게 되지 않았나 싶다. 사실 출판사를 차리며 스스로에게 책임감과 동기부여를 주고 싶었던 것도 있었다.
  그러다보니 최근에 나는 책을 ‘읽는 것’보다는 ‘보는 것’과 더 가까워졌다. 이전에는 크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책의 판형, 종이의 질감, 디자인 등과 같이 책을 둘러싸고 있는 다양한 것들을 바라보게 됐다. 평소에는 한 번도 펼쳐보지 않을 분야의 책들까지 한번 슥 둘러보기도 하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출판사에서 어떤 책을 만들까. 사소한 일상 속 ‘파편’들을 모아 책으로 만들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가령 무심코 계속 담아왔던 내 손 사진들이나, 한 해 동안 있었던 일들, 혹은 어떤 삶 속의 아픈 기억을 치유의 목적으로 풀어 볼 수도 있다.
  몇 년 전 소방서에서 구급차 보조일을 2년간 맡은 적이 있었다. 다양한 삶과 죽음을 마주했고, 그 속에서 내가 경험한 세상과 기록들은 도대체 어떤 의미였는지 의문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그날에 있었던 일들은 내가 계속 좋아하고, 공부하고, 가까이했던 사진 대신 메모장에 글로 남겼다. 나는 여기서 기록을 남기는 것을 ‘씨앗’으로 비유하곤 한다. 왜냐하면 씨앗을 심는 순간, 그 씨앗이 어떤 모습으로 나중에 싹이 틀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에겐 그 씨앗이 책이라는 것으로 이어지게 됐지만, 이 ‘책’ 또한 누군가에겐 또 다른 씨앗이 되길 바라고 있다.
  나는 기록의 힘을 믿으라고 말하고 싶다. 굳이 무언가를 기록해야겠다고 마음먹지 않더라도 생각보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의외로 다양한 관계맺음과 삶의 흔적을 여기저기 남기며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당장 무엇인지는 몰라도 언젠가 그것을 용기 있게 마주해야 결국 스스로의 삶을 책임 질 수 있다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선 일단 하나의 씨앗을 심어두길 바란다. 나도 씨앗을 계속 심고 있지만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중에 또 무엇으로 자라날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다만 누군가의 삶에, 혹은 세상에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길 바랄 뿐이다. 사실 정답은 없으니까.
  그래서 이 글을 보는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무엇을 남기며 살아가고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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