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2.12.7 수 12:08
기획
[독자칼럼] 우리네 삶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최준민/ 교육학과 석박사 통합과정
윤홍률 편집장  |  ryul08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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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0호]
승인 2022.12.06  19:2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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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지면은 교내·외 대학원생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소통의 장’을 열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이번 호에서는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에서 그리는 주인공의 인생과 필자의 경험을 통해 ‘삶’이란 무엇인지 되돌아보고자 한다. 우리네 삶은 어쩌면 살아남기 위한 처절한 투쟁의 연속이 아닐까. <편집자 주>

우리네 삶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교육학과 석·박사 통합과정 / 최준민

  우리는 끝내 죽음을 맞이한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인간의 생은 ‘살아가는 시간’이라 기보다 ‘죽어가는 시간’라는 표현이 더 잘 어울리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행위는 살기 위한 투쟁으로 연결된다. 자기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는 인간은 스스로를 영원히 보존시키고 싶어 하지만 수명이라는 한계에 부딪힌다. 그래서 차선책을 물색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DNA를 복제하는 방법을 찾아낸 것일지 모른다. 자신과 똑 닮은 2세를 낳음으로써 자기 보존의 욕구를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곧, 성에 대한 욕구로 이어지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수면에 대한 욕구, 음식 섭취에 대한 욕구 등 많은 갈망들이 생존을 위한 본능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은 아닐까 싶다.

   
 

삶은 부딪힘의 연속


  삶을 생각하니, 론 우드루프의 삶에 대한 투쟁을 다룬 영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2014)이 떠오른다. 론은 술과 여자 그리고 로데오에 인생의 낙을 두고 살아왔지만, 에이즈에 감염돼 남은 시간이 단 30일이라는 비보를 듣는다. 자신의 죽음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는 에이즈를 치료해 시한부 인생을 이겨내고자 한다. 때마침 미국의 한 제약회사가 개발한 신약 임상시험에 참여할 기회가 생겨 희망을 이어간다. 그러나 약효 시험을 위해 참여자 절반에게 에이즈 치료와 무관한 약품을 투여한다는 사실을 알고 이내 좌절 한다.
  나는 주말이면 번화가의 대형 서점으로 출근했다. 계산대에서 서적을 포함해 문구류와 잡화를 판매하며 하루에도 수백 명씩 고객을 응대했다. 많은 고객을 상대하는 만큼 정말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미소가 지어질만큼 따뜻함이 느껴지는 예의바르고 친절한 고객이 있는 반면, 혀를 내두를 만큼 무례한 고객이 계산대 앞에서 나를 노려보기도 했다. 나를 가장 힘들게 하는 사람은 흔히 ‘진상’이라 불리는 유형이었다. 그들은 분노 표출은 기본이거니와 심한 경우 폭력을 행사해 업무를 방해하기도 했다. 성인 이 되고 줄곧 서비스 계열에 종사해왔지만 여전히 진상을 상대하고 나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불행한 예감은 틀리지 않고


  한편 치료제가 당장 급했던 론은 병원 관계자와 뒷거래를 통해 신약을 얻게 된다. 그러나 치료제 투약에도 불구하고 상태는 호전되지 않았으며 점점 더 악화될 뿐이었다. 설상가상 병원의 약품 감시 체계가 강화돼 더 이상 신약조차도 구할 수 없게 된다. 론은 한 순간 절망에 빠져 좌절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새로운 치료제를 찾으러 국경을 넘는다. 긴 여행 끝에 그토록 찾던 민간 치료소에 도착한 론. 그곳에서 의사 면허가 취소된 한 남 성의 치료를 받게 된다. 신약의 부작용으로 면역 체계가 붕괴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론은 미국에서는 볼 수 없던 다른 약물을 처방받는다.
  서점에 출근했을 때 고객 간의 언쟁이 일어난 적 있다. 점점 커지는 고성은 서점을 가득 채우며 다른 고객들에게도 불편함을 조장했다. 매장 직원이 말렸지만 쉽게 진정되지 않았고 급기야 몸싸움으로 번지기 직전이었다. 꽤 시간이 지난 후에야 소란이 잦아들었고 나는 다시 계산대 업무에 집중했다. 다음 고객을 호명하자 소란의 주인공인 A가 다가 왔다. 여전히 분노에 찬 표정으로 다짜고짜 계산대에 책을 던졌다. 그녀는 결제 내내 사소한 트집을 잡으며 한껏 신경질을 낸 후에야 자리를 떠났다. 얼마나 흘렀을까. 결제 대기줄에 소란의 다른 주인공인 B를 발견했다. A의 분노를 겪은 나는 B가 다른 창구로 가길 원했지만 야속하게도 내게 순서가 떨어졌다.
  걱정과 달리 B는 웃는 얼굴로 나를 마주했다. 분노는 커녕 친절하고 따뜻한 모습이었다. 안도감을 느낀 나는 평소보다 더욱 친절한 태도로 그녀를 응대했다. 그때였다. 계산대 너머 분노에 가득 찬 A가 나와 B를 뚫어지게 보고 있음이 느껴졌다. 무언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A는 한참 우리를 주시하더니 떠나는 B의 모습을 오랜 시간 쏘아봤다. B가 매장에서 사라지자 A가 곧장 내게 다가왔다. 책을 담은 봉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트집을 잡기 시작했다. 봉투 변경을 권했으나 정작 봉투에는 관심 없는 모습이었다. 그녀가 마음에 들지 않은 것은 봉투가 아닌 B와, B에게 친절한 내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위기 속의 빛


  론의 건강은 다행히 급속도로 호전된다. 기력을 회복하자 셈이 빨랐던 그는 한 가지 아이디어를 떠올린다. 다른 에이즈 감염자를 상대로 약품을 팔아 부를 누리려던 것이다. 론은 위험을 무릅쓰고 다량의 약품을 밀반입해 미국으로 돌아온다. 밀반입한 약품은 점점 사그라져가던 에이즈 감염자들의 삶에 새로운 희망이 됐고, 론의 사무실 앞은 인파가 끊이지 않는다. 이와 대조적으로 신약을 임상 시험하던 병원은 환자들을 잃게 된다. 그러자 병원 관계자 및 FDA는 아직은 공식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론의 치료 방법을 극구 반대하며, 그들에겐 ‘진상’인 론을 제지하고자 지속적으로 애를 쓴다.
  서점에서 기억에 남는 또 다른 고객이 있다. 20대 초반 정도의 앳돼 보이는 여성이었다. 밝아 보이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불안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는 조심스러운 어투로 봉투를 줄 수 있는지 물었다. 목소리가 떨렸다. 목소리뿐 아니라 카드를 건네주는 손 또한 파르르 떨고 있어 긴장한 기색이 오롯이 전달됐다. 계산대에서 그녀처럼 긴 장하는 고객은 흔하지 않았기에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제품을 전달받을 때도 손은 여전 히 떨리고 있었다. 그러더니 문득, 한껏 힘줘 감사하다는 인사를 건네 왔다. 그때 그녀의 눈을 봤다. 불안함 위로 눈웃음을 가득 담아내려 노력하는 그 눈이 너무도 빛나고 있었다.


떨어지지 않으려는 투쟁


  나는 좋은 상담심리사가 되기 위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심리학에 매진하다 보니 자주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사람은 저마다의 대처 양식을 지니고 있다는 생각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성장환경 및 현재 환경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이고 다르게 행동하는 양상이 나타난다. 부모로부터 따뜻한 사랑 속에 성장한 사람은 사람을 상대할 때 날 세우지 않는다. 반면 내내 억압받으며 성장한 사람은 타인에게 억압받는 상황을 극도로 꺼려한다. 양육자로부터 존중받으며 자란 사람은 사람을 마주하는 상황이 두렵지 않지만, 존 중받지 못하며 자란 사람은 사람과 마주하는 상황이 공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많은 욕구들이 생존 본능에 기인한다. 자기 자신을 너무도 사랑하는 인간은 자신이 상처받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A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매장에서 소리치는 모습에서 그녀가 삶에 대한 존중을 원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비록 타인에게는 언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말이다.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던 고객의 눈웃음도 투쟁으로 느껴졌다. 그녀 역시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만의 공포를 이겨내고자 눈웃음을 가득 담아내려 노력한 것은 아닐까 한다. 그래서인지 아름다웠다. 애벌레에서 빠져나오는 나비의 첫 날갯짓 같았기에.
  잘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 나비 같은 그녀도, 분노에 찬 그녀도 각자 다른 방식으로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다. 옳고 그름을 떠나 상처받지 않고자 스스로를 보호하 려는 본능이다. 죽어가는 시간 속에서 살고자 하는, 그것도 ‘잘’ 살고자 하는 욕구인 것이다. 론은 애초에 선고받았던 30일 시한부 인생을 보란 듯이 이겨내고 2,557일을 살아낸다.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에이즈 감염자를 살려낸 치료 집단의 이름은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이다. 그리고 영화는 소에 올라타 떨어지지 않으려 투쟁하는 론의 로데오 경기와 함께 끝이 난다. 삶으로부터 떨어지지 않고자 투쟁하는 달라스 바이어스 클럽, 이것이 우리네 인생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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