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예리 / 생명과학과 석사

본 지면은 교내·외 대학원생의 다양한 이야기를 담아내고 ‘소통의 장’을 열기 위한 목적으로 기획됐다. 이번호에서는 자신의 오랜 소망을 위해 안정적인 직장을 내려놓고 비행기에 오른, 그리고 결국 꿈을 하나씩 이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혹시 무엇인가 고민하고 있다면 일단 도전해보자. 그리고 새롭게 찾아올 낯설고 커다란 세상을 마주하자. <편집자 주>


망설이지 말고, 바로 지금


임예리 / 생명과학과 석사


  하고 싶은 일이 있지만 망설이고 있는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용기를 전해줄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부족하지만 솔직하게 이 글을 적어 내려가고자 한다.
  7월 초부터 시작된 이 여정은 아직 진행 중이며, 현재 나는 아일랜드 제2의 도시인 코크(Cork)라는 곳에서 지내고 있다. 이곳에 오기 전에는 국내 제약회사에서 4년 반 정도의 직장 생활을 했다. 대학원 졸업과 함께 좋은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한 회사에서 4년 넘게 직장을 다니며 나름의 성과와 성장을 이뤄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차 해외 제휴사와의 커넥션이 늘어나는 추세에서 ‘대리’라는 직급에 걸맞는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 자유로운 영어 구사가 필수라는 무언의 압박이 느껴졌다. 올해 5월쯤에 때마침 현실적인 조건과 환경이 어느 정도 안정적이게 돼서, “이제라도 해외 경험을 해보자!”라는 결심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었다. 어릴 때부터 늘 소원해오던 해외 경험을 마음속에만 간직하기보다 현실로 끌어내고 싶다는 욕구 역시 끓어올랐다. 물론 이런 내 결정에 주변에서는 안정적으로 직장 생활을 하다 퇴사하면서까지 가야 할 이유가 있는지 많이들 묻곤 했다. 나는 왜, 그것도 지금 이 시기에 지구 반대편으로 와 있는 걸까.

 
 


‘지금’이어야만 하는 이유


  어학연수의 목적은 각자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내 경우를 소개해보자면 첫째, 국내에서 혼자 하는 영어 공부가 충분하지 않았다. 업무 시작 전, 점심시간, 퇴근 후의 개인 시간에 영어 공부를 하긴 했지만, 회사에서 쓸 수 있을 만큼 빠르고 효과적으로 체득할 수는 없었다. 두 번째, 회사 입사 스펙으로 들어가는 토익, 토스, 오픽과 같은 시험만을 위한 틀에 박힌 방법으로 공부하고 싶지 않았고 외국에서 원어민들과 매일 소통하며 지내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판단했다. 세 번째, 4년 반 정도의 직장 경력이 있는 상태에서 영어를 배우고 온다면 내 커리어 상으로도 큰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 번째, 학부시절 교환학생이나 장기로 해외여행을 갔다 오는 친구들, 또는 해외 경험이 있었던 선배들을 보며 늘 부러움만 느끼던 내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
  가장 결정적으로, 지난 4월 미국으로 이민을 간 친척이 모처럼 한국에 들어왔을 때 이런 나의 오랜 소망을 얘기한 적이 있었다. 이때 “넌 아직 젊어! 하면 되지”라며 돌아온 고모의 답은 내 머릿속에서 오랫동안 꼭꼭 눌러왔던 소망을 아지랑이 피어 올라오듯 다시 꿈틀거리게 만들었다. ‘그래, 나도 가면 되지! 어차피 인생 한 번 사는 거 오랫동안 하고 싶던 일을 하지 않으면 언젠가 후회할 거야’라는 생각이 떠나야겠다는 다짐으로 이어졌고, 항공편을 예매하는 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부딪히며 살아봤더니


  시간이 흘러 지금은 아일랜드 살이 3달 반 정도가 됐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시간이지만, 스스로 돌이켜보자면 여러 느낀 점이 있었다.
  첫째, 해외에서 어학원을 다닌다고 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영어가 그렇게 크게 늘지는 않았다. 이를 통해 외국인들과 대화를 많이 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혼자서도 많이 공부해야만 영어가 늘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나와 비슷한 수준의 영어 실력을 가진 제3국의 친구들보다 영어가 모국어인 원어민들과 교류하는 게 나의 영어 실력 향상에 더 도움이 된다는 당연한 사실을 몸소 체험하게 됐다. 그러나 이미 자기들만의 그룹이 있는 이들에게 나는 그저 곧 떠날 외국인일 뿐이기에 원어민 친구를 사귈 기회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래서 반강제적으로 원어민과 교류 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하기로 했다.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현지 손님 혹은 직원들과 얘기하는 기회를 가지는 것이었다. 아일랜드에서 첫 번째로 일을 시작한 곳은 아이리쉬 카페였다. 대학생 때 해봤던 카페 아르바이트의 경험을 살려 취직할 수 있었는데, 내가 영어를 그렇게 잘하지는 않다 보니 이런저런 어려움이 꽤 있었다. 특히나 고용주와의 마찰이 발생했을 때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로 의사소통하며 낯선 타지에서 나의 권리를 챙겨나가는 건 정말 쉽지 않다는 걸 느꼈다. 지금은 운이 좋게도 이전보다 훨씬 나은 곳에서 일하고 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서빙을 하고 있는데, 편하게 책상에 앉아 노트북 모니터만 쳐다보며 일하던 이전과 비교하면 몸은 조금 피곤하고 힘들지만, 다른 불필요한 걱정거리 없이 사람들과 영어로 대화할 수 있음에 감사할 뿐이다.
  둘째로, 나라별 각 제도의 시스템이 다르다 보니 뭐든 빠르게 처리되는 한국과 비교했을 때 이곳 유럽은 정말 큰 차이가 있음을 느끼고 있다. 이런 차이는 다른 나라의 친구들, 이곳의 원어민들과 어울리면서도 느낄 수 있는데, 새롭기도 하지만 때로는 당황스럽거나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런 게 바로 문화 다양성인가 싶다. 이 모든 것들이 다시 한국에 돌아간다면 느끼지 못할 소중하고 값진 경험이다. 그렇기 때문에 난 직장을 그만두고 여기에 와있는 현실에 후회한 적이 한 번도 없다고 자신할 수 있다. 만약 오지 않았다면 평생 그 순간을 후회하면서 살았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물론 타국살이가 생각보다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다. 뿐만 아니라 뭐든 잘 흘러갈 것만 같았던 내 계획과는 달리 눈물나올 만큼의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경험이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야 더 넓은 세상에서 더 다양한 사람들과 다른 문화를 공유하며 새롭게 성장하는 나 자신을 마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이 내 인생 계획에 도움이 될지 안 될지, 귀국하는 시점에 영어가 크게 늘었을 지 아닐지 아직은 확신할 수 없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이 한 번 사는 내 인생에 아름답게 기억될 소중하고 값진 시간임은 틀림없다.


아직 오지 않은 걱정은 잠시 접어두고


  물론 불안하기도 하다. 번듯한 직장에, 좋은 사람과 결혼을 준비하면서 계획했던 미래를 현실로 그려내는 친구들을 보고 있으면 스스로 불안함을 느낄 때가 종종 있다. ‘서른’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앞뒤 생각하지 않은 채 직장을 그만두고 해외에 덩그러니 혼자 와 있는 것은 사실이라, ‘귀국해서 더 좋은 직장에 들어갈 수 있을까?’, ‘결혼은 언제 하지?’ 등의 걱정이 생기던 시기가 있었다. 앞서가는 친구들에 비해 발걸음이 더 늦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인생은 내가 그려나갈 그림이며 각자의 도화지에 인생을 어떻게 그려나갈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들과 비교하며 그 기준에 맞추려 했을까.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됐다. 그래서 남은 기간을 더 잘 보내다 가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이 경험들은 분명 내게 좋은 기회를 가져다줄 것이라 생각한다.
  원래는 8개월의 아일랜드 살이 이후 한국에 돌아가 다시 재취업을 하는 게 목표였다. 하지만 이젠 이곳에서 직장 생활을 해보는 게 새로운 목표가 됐다. 내가 거주하고 있는 코크는 기업에 매기는 세금이 적은 곳이어서 여러 글로벌 제약회사의 유럽 본부가 이곳에 있다고 한다. 이런 회사에서 직무 경험을 해보는 것은 커리어나 장래에 큰 도움이 될 것이고, 또는 이것을 시작점으로 삼아 완전히 또 다른 미래가 펼쳐질 수도 있을 것이다. 결과가 어떻게 이어질진 몰라도 시도는 해볼 수 있지 않을까.
  내가 오랫동안 꿈꿔왔던 해외살이가 생각보다 완벽하지도 아름답지도 않지만, 누군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있다면 해보라고 용기를 주고 싶다. 분명 이전에 알고 있던 세상보다 더 큰 세상을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겪을 다양한 경험은 당신을 성장시키기도 하고 지금까지 몰랐던 또 다른 스스로의 모습을 알아가는 값진 시간이 될 것 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