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은정 / 목포대 미술학과 교수

 

삶 속에 문화예술이 녹아들도록  ③ 수도권과 지방의 경계

모든 사람이 공평하게, 비슷한 수준의 문화예술교육을 받았다고 단정지을 수는 없을 것이다. 자본에 따라 그 차이는 선명하게 드러나며 이로 인한 문화 격차는 사회적으로 해소돼야 할 문제에 속하기 때문이다. 이에 이번 기획에서는 문화예술교육의 실태를 파악하고, 문화예술교육의 격차를 어떻게 하면 줄일 수 있을지 논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이해와 표현의 영역 ② 문화예술교육, 왜 필요할까 ③ 수도권과 지방의 경계 ④ 모두 같은 선에 서기 위해

문화예술교육 지역 격차 : 무엇이 문제인가

조은정 / 목포대 미술학과 교수

  소위 지방대에 근무하는 사람으로서 ‘수도권과 지방의 경계’라는 주제는 절실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다. 수십여 년 동안 정부 정책에서는 지방 분권화·지역화가 꾸준히 강조돼 왔다. 이는 지방 위기와 수도권 집중화의 문제가 당장 눈앞의 현실로 닥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 소재 대학의 학생 수와 지역 사회 생산인구 감소, 지역 사회 경제 위축이 지방 소멸로 이어지게 된다는 경고가 사방에서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지방 위기론에서 핵심은 수도권과의 관계, 더 나아가서는 수도권 지역과의 상대적 격차에 대한 인식이다.
  일상생활에서 ‘지방(地方)’과 ‘지역(地域)’이 혼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좀 더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우리 사회에서 지방이라는 단어는 지역이라는 뜻보다는 ‘서울이 아닌 지역’이라는 의미가 훨씬 더 강하다. 즉 해당 지역의 장소성이나 규모 자체가 아니라 수도권으로부터 얼마나 가까운가 혹은 먼 거리에 있는가에 따라서 성격이 규정된다. 이러한 의미 자체에 가치 판단 행위가 담겨 있지는 않다. 젊은이들이 양질의 교육을 받고 널리 활동할 기회가 지방보다 수도권 지역에 더 많다는 인식은 예전부터 보편화돼 있었다. 또한 학교, 기업, 공공기관 등 사회적 인프라와 제반 활동들이 수도권에서 활성화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하지만 현시점에서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러한 집중화가 우리 사회의 유기적인 순환과 성장을 위협할 정도로 과열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권역별 중심지

  특정한 위치를 중심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를 그 지점에 집중시키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서 특정 지역이 중심이 될지, 아니면 변방이 될지를 결정하는 관건은 그 지역에서 벌어지는 구성원들의 활동이 다른 지역의 구성원들에 미치는 상호 관계와 영향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관계가 일방적이거나 특정 지역으로 고정된다면 전체는 유기체적인 유연성을 잃게 된다. 수도권이 한 나라의 중심지가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행정·정치·경제·문화·교육의 전 측면에서 ‘유일한’ 중심지가 된다고 한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특히 다원적 가치가 기반이 되는 문화예술 분야는 전체 생태 환경의 불균형과 쇠퇴로 이어질 수 있다.
  2018년 정부가 발표한 「문화예술교육 5개년 종합계획」에서 지역 중심과 수요자 중심을 모토로한 ‘지역 특성화’를 주요 과제로 내세운 것도 이러한 인식에 기반한다. 그 결과 지역 특성화 문화예술 지원사업, 꿈다락 토요문화학교 등의 사업에 지원되는 예산을 중앙 정부로부터 지방으로 이양하고 있다. 특히 전국을 몇 개 권역으로 나눠서 권역별로 해당 사업의 운영기관을 선정하고 각 지역의 특성에 부합하는 설계를 요구하고 있다. 즉 전국을 관장하는 단일한 중심지가 아니라 수도권, 충청권 등 지역 문화권역마다 ‘중심지들’이 형성되도록 함으로써 중앙 대 지방의 이분법적 구조에서 벗어나 지역 사회가 주체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다원적이고 유기적인 구조로 문화 생태 환경을 조성하려는 의도이다. 이러한 시도가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고 있는지 속단하기 어렵지만, 올해 목포대가 ‘문화예술교육사 현장 길라잡이 연수사업’의 지역 운영기관으로 선정되면서 사업 진행 과정에서 필자가 경험했던 바를 중심으로 개인적인 소견을 밝히고자 한다.
  작년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에서 조사한 「문화예술교육사 자격활용 실태조사」에 따르면 광주·전라권 거주 자격소지자의 경제활동 여부를 묻는 항목에서 광주·전라권 응답자 50.5%가 “구직활동 중이다”라고 답했는데, 경제활동 형태를 묻는 항목에서는 자격소지자들의 기관·시설·단체 종사자 비율이 프리랜서 비율보다 상대적으로 낮았다. 이러한 결과는 광주·전라권역 문화예술교육사들의 높은 활동 의지와 관심을 드러내는 반면, 자격증 활용이나 기관 및 단체와의 연계는 수도권에 비해 상대적으로 저조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올해 현장 연수 사업에서 중점을 뒀던 부분도 지역 공공기관 및 민간 기관들과의 연계 활동이었다.
  이를 위해 전남 지역 미술관과 박물관들을 중심으로 현장 워크숍을 설계했지만 실제로 연수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통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지방’의 한계를 다양하게 경험했다. 우선 홍보 대상으로 고려했던 목포대 졸업생 중 상당수가 이미 대도시로 거주지를 옮겼거나 진출을 계획하고 있었다. 또한 타지역에 거주하는 대다수 연수 신청자들에게 목포는 매우 ‘먼’ 장소로 받아들여졌다. 이러한 거리감은 물리적인 요인보다는 심리적인 요인에 기인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현장 연수를 진행했던 문화예술 관련 기관들에서도 이와 유사한 어려움을 피력했는데, 곡성·신안·나주·강진의 미술관과 박물관들은 문화예술교육사 인턴십 프로그램 참여 인력을 구하기가 상당히 힘들다는 것이었다. 문화예술교육사 자격소지자들만을 놓고 본다면, 전남지역 대학에서 배출한 전공자들 대부분은 일자리를 찾아서 지역을 떠나고 해당 지역 문화예술기관은 전문인력을 구하지 못해 수도권에서 구인 활동을 하는 상황이었다.

문화예술교육 지역화의 목적

  서두에서 지적한 바와 같이 지방은 우리 사회에서 서울이 아닌 지역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러한 구분 자체가 수도권을 기준으로 지역들을 재단하는 시각이다. 그러나 ‘지역화’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의 중심부에 통제력이 집중된 거대 사회가 아니라 구성원들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를 기반으로 한 공동체들이 각자 중심부를 이루는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공동체 구성원들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 정서적 감수성을 아우르는 전반적인 개념으로서 문화예술 활동은 지역화의 핵심이다. 이러한 지역화 과제에서 지방의 문화예술교육 활동은 수도권 등 기존의 중심부를 지향하기보다 자체적으로 중심부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 돼야 한다.
  과거에는 지방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문화예술을 관광과 연계하려는 시도들이 많았으나, 현재는 교육과 연계해서 지역 주민들의 삶을 풍요롭게 만들고자 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지고 있다. 이는 목포대와 함께 ‘문화예술교육사 현장 길라잡이 연수 사업’에 참여한 지역 문화기관들에서 추구하고 있는 방향이기도 하다. 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광역화된 거점으로부터 세부 지소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에 대한 구체적인 파악이 선행돼야 하며,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삶과 연계된 교육 콘텐츠의 개발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문화예술교육을 담당하는 전문인력들이 지역 사회에 뿌리를 내리고 지속적으로 활동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돼야 할 것이다. 산적해 있는 과제들을 단시간에 해결하기는 불가능하겠지만, 지역 자치단체와 학교, 문화기관, 주민들이 함께 힘을 모은다면 ‘지방이 스스로의 주인공이 되는’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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