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나현 / 대림미술관 큐레이터

[예술_뮤지엄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이번 기획에서는 ‘뮤지엄’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뮤지엄은 전시기능 이외에도 수집과 보존기능, 미술정책 및 학예 연구, 교육 및 출판기능 등 현대에 들어와 다양한 기능을 갖게 됐다. 이에 뮤지엄의 각 기능과 업무를 살펴보고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뮤지엄 패러다임 변화 ②연구 및 수집의 장 ③전시기획과 운영 ④뮤지엄의 출판기능

 

연구와 수집을 위한 미술관

 

맹나현 / 대림미술관 큐레이터

 

  전시 관람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미술관에 방문해 본 적 있는가. 아마도 이 질문은 대부분의 독자에게 의아하게 다가올 것이다. 대중에게 미술관은 전시를 열기 위해 존재하는 공간으로 알려졌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겉으로 쉽게 드러나지 않았던 여러 층위의 기능을 발견할 수 있다. 미술관의 주요 역할은 수집·전시·연구·보존·교육으로 구분된다. 전시를 선보이기 이전에 연구와 수집, 그리고 그에 수반되는 보존의 과정은 늘 전제돼 있으며 전시와 함께 진행되는 교육 및 부대 프로그램은 관람객의 이해를 돕고,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다. 필자는 본고를 통해 전시의 이면에 위치해 일반적으로 들여다볼 수 없었던 미술관의 주요 기능 중 연구와 수집에 대해 짚어볼 것이다. 미술관에서 전시는 결과물을 담아내는 하나의 틀일뿐이며, 연구와 수집이라는 단단한 기반이 밑거름으로 작용해야 비로소 의미 있는 전시가 도출될 수 있다.
  미술관은 건립 목적에 따라 변화하는 시대상에 맞는 의제를 설정하고 연구를 진행한다. 미술관에서 다루는 일련의 주제는 전시 등으로 도출되는 결과물의 시초가 되며, 일정 기간 쌓인 결과물은 해당 미술관이 전하고자 하는 핵심 메시지로 점철된다. 실제로 국공립 미술관은 보도자료 등을 통해 매년 전시 혹은 기관의 의제를 밝히고 있다. 예를 들어 작년 서울시립미술관의 기관 의제는 ‘배움’, 전시 의제는 ‘트랜스미디어’였고, 올해 기관 의제는 ‘제작’, 전시 의제는 ‘시’이다. 이러한 의제에 따라 미술관에 속한 학예연구사들은 해당 주제를 중심으로 연구를 진행하며, 결과물은 전시·출판·컨퍼런스 등의 형태로 도출된다.

 

미래 방향성을 제시하는 소장품

 

  미술관에는 차별과 배제, 혐오를 방지하고 사회가 올바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도록 의견을 내는 역할 역시 요구될 수 있다. 미국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흑인이 사망하면서 시작된 ‘블랙라이브스매터(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 국내 미술인들은 윤리적 각성과 구체적인 실천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하고 이를 주요 미술관으로 발송한 바 있다. 임근혜는 『2021 국공립미술관 분과포럼·미술관대회 결과집』(2022)에 수록된 「포스트-팬데믹 시대의 (미술관) 전시 담론」을 통해 위 사례를 설명하며 다음과 같이 서술했다. “미술관 내외부에서 전개된 이러한 양상은 공공 자원으로 운영되는 미술관의 사회적 책임 의식과 이에 상응한 고도화된 윤리의식에 대한 사회적 요구와 기대를 보여준다. 이미 일부 국내 미술관도 ‘사회적 포용’을 새로운 연결망의 형성으로 공생을 모색하는 미술관 운영 방향이나 프로그램 기획의 주요 아젠다로 공표한 바 있으나, 향후 성소수자, 난민,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의 문제가 전시 담론의 중심 의제로 더 깊이 있게 논의돼야 할 것이다.”
  이렇듯 사회의 요구 및 특정한 주제를 기반으로 진행한 연구의 과정 및 결과가 미술관에서 선보이는 콘텐츠의 기반이 된다면, 소장기능은 미술관의 전체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굵직한 기둥과 같은 역할을 할 것이다. 미술관의 비전과 목표에 따라 수집한 소장품은 그 미술관을 대표하는 작품이 되며, 이후 해당 작품을 보존하고 순환하기 위한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 그렇게 차곡차곡 쌓인 소장품은 그 미술관의 역사이자 현재를 나타내며 미래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수집기능이 없는 미술관의 등장

 

 

 
 

 

 수집기능에는 미술관의 운영과 관련된 실질적인 문제가 동반된다. 보관을 위한 충분한 공간 문제, 수집·보존·운용에 큰 비용이 투입되는 등 필연적 제약이 따르기 때문이다. 이는 각 국가마다 새로운 문화 정책을 실시하는 배경이 되기도 한다. 최근 ‘유효한 소장(Effective Collection)’ 정책은 영국의 문화 정책 중 하나로 실행됐으며 영국 정부는 변화하는 미술관의 환경에 맞게 소장품 수집에서 효율성을 요구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미술관의 목적에 맞지 않는 소장품을 처분할 수 있게 하는 등 여러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정책이 지속적인 해결책이 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으며, 이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도 들려온다. 이는 앞의 결과집에 수록된 김은영의 「공립미술관의 미래버전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정책모색」에서 확인할 수 있다. “미국의 경우 2008년 금융 사태로 인한 경제 불황 속에서 문을 닫는 뮤지엄이 속출하고 절대로 매각해서는 안되는 원칙을 적용해오던 소장품을 처분해서 미술관의 운영비로 쓰는 행태가 만연해지면서 소장품의 본질에 대한 논쟁을 불러왔다. 근대박물관의 역사 이래로 소장품 정책은 소장품을 영구 보존하고 절대로 매각하지 않아야 하는 등의 원칙은 지역의 미술관이 처한 경제적 재난 상황에서 시험대에 올랐다.”
  이처럼 소장품은 미술관의 재정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립 초기부터 영구 소장의 기능을 포기하는 사례도 있다. 작품을 사유화하고 그 작품을 보존 및 연구하기보단 동시대의 흐름과 맞닿아 있는 기획 전시에 집중하려는 것이다. 이는 역사적 가치가 있는 작품을 수집·보존하는 역할보다 동시대의 흐름을 연구하고 전시를 통해 대중에게 가치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 의지가 더 강력한 경우이다. 뉴욕에 위치한 ‘뉴 뮤지엄(New Museum)’이 이에 해당하는데, 이들의 공식 웹사이트에는 “작품을 소장하지 않는 미술관(We are a non-collecting institution)”이라고 명시돼 있다.

 

수집과 연구, 공생관계

 

  소장에 대한 고민은 자연스럽게 연구로 이어지기도 한다. 동시대 예술가들은 다양한 매체를 기반으로 작품을 선보이는데 이는 미술관 수집 방식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회화와 조각이 아닌 퍼포먼스와 영상과 같은 비물질 작업이나 설치와 같은 거대한 규모의 작품, 장소 등 특정적인 작품을 소장할 경우 ‘무엇을’ 수집할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를 비롯해 재(상)연, 보관 및 보존 등에 대한 사려 깊은 연구가 소장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관습에 따라 물질 기반의 작품만 소장하는 미술관의 행태는 소장을 통해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맥락을 수집하고자 하는 근본적인 취지에 어긋나며, 공평하지 않은 선택적 수집은 이후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결국 각 미술관은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연구 및 수집 방법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동시대 작품을 다루는 미술관의 경우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 이전처럼 소장품을 비밀스럽게 보관하기보다 개방과 소통을 중시하기 위해 개방형 수장고를 건립하는 사례도 등장하고 있는데, 2018년 개관한 국립현대미술관 청주관은 국내 첫 수장형 미술관을 표방한다. 이곳에서는 기획 전시를 앞세우기보단 소장품 자체에 대한 연구를 지향하며 관람객들이 작품과 공간 자체에 집중하도록 유도한다.
  1849년 설립된 네덜란드 로테르담의 보이만스 반 뵈닝언 미술관(Museum Boijmans Van Beuningen) 역시 작년 11월 개방형 수장고 형태의 보이만스 반 뵈닝언 미술관 수장고(Depot Museum Boijmans Van Beuningen)의 운영을 정식화했다. 이들은 약 15만 점의 소장품을 보유하고 있지만 소장품이 늘어남에 따라 전시할 수 있는 작품 수가 현저히 줄어드는 상황에 문제의식을 느끼고 개방형 수장고를 설립했다. 이처럼 소장품을 수집 및 보존의 대상으로 여기기보다는 소장품 자체를 미술관화 하는 사례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클레어 비숍(Claire Bishop)은 『래디컬 뮤지엄』(2016)에서 “문화는 대안을 시각화하는 주요한 수단이 되면서, 우리는 미술관의 소장품을 유물 창고로 생각하기보다는 오히려 공통재의 아카이브로 새롭게 상상할 수 있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러한 다양한 방향의 결정은 동시대에 대한 끝없는 탐색과 연구를 기반으로 각 미술관의 상황에 따라 결정된다. 미술관에서 발생하는 모든 과정은 서로 맞닿아 있으며 중요도의 순서를 구분하기보다는 굳건한 방향성을 설정하고 질서 있는 과정에 따라 전달하고자 하는 의제를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 관람객 역시 미술관에서 전시를 관람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하나의 전시를 선보이기 위해 거쳐왔을 과정들을 상상해보며 관람한다면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전시를 위해 미술관을 찾더라도 우리는 전시 이면의 과정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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