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의 자화상]

논문 정쟁

 

  최근 들어 정쟁의 화두로 ‘논문’이 떠오르고 있다. 그중에서도 조국 전 법무부장관의 자녀가 제1저자로 등재한 의학 논문이 부정 논문으로 판단돼 대학 입학 취소 처분을 받은 일과 한동훈 법무부장관의 자녀와 처조카가 해외 부실 학회에 다수의 논문을 게재했다는 의혹은 대표적인 ‘논문 정쟁’의 사례로 손꼽힌다. 현재 논문과 관련된 각종 문제가 중요시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부정 논문을 입시에 활용하는 것은 입시생 간 형평성·공정성을 저해하며 부모의 사회적·경제적 격차가 대물림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둘째, 연구윤리 위반은 정직하고 책임 있는 연구 성과를 훼손해 학문공동체의 신뢰를 붕괴시키는 요인이다.

  그럼에도 어떠한 이유로 연구윤리 위반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 실제로 정치인·교수·법조인 등 고위공직자들은 일반 대중들보다 엄격한 잣대를 요구받게 된다. 이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 즉 사회 고위층 신분에 상응하는 높은 도덕적 의무 때문이다. 그렇기에 일반 대중이라면 넘어갈 수 있는 사생활에 대해서도 더욱 민감해질 수밖에 없다. 이러한 일면을 이해한다면 사적이지도, 사소하지도 않은 ‘논문 정쟁’ 사태는 더욱이 부끄러운 일임이 자명하다. 이에 본지 포커스에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논문을 두고 불거지는 여러 문제에 대한 근본적인 이유를 살펴보고, 나아가 이를 개선할 해결방안을 논하고자 한다.

 

 
 

 

금수저 전형의 스펙으로 전락한 논문

 

  이러한 사태가 반복적으로 벌어진 이유는 논문이 대입 입시 과정에서 ‘스펙’으로 활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학생부종합전형(이하 학종)이 있는데, 해당 전형은 고등학교 내신 성적이나 수능 점수 등의 정량적인 숫자를 넘어 지원자의 잠재적 가능성을 중시하는 특성을 가진다. 개인의 성장배경, 가치관 등 여러 정성적인 과정을 고려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상대적으로 교육 기회가 적은 저소득층·비수도권·비특목고 학생들에게 공정한 기회를 주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본래의 취지가 무색할 정도로 관련 입시 비리가 계속 발생하고 있다.

  지난 8월 29일자 매일신문은 대학이 전체 신입생의 약 80%를 수시 모집에서 뽑으며, 그중 학생부교과전형·학종 등 학생부 위주 전형의 비중은 86.1%로 제일 높다고 밝혔다. 학부모와 학생들은 자연스레 학종에 관심을 갖게 됐는데, 바로 이 과정에서 논문 게재 실적이 입시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그러자 학부모들은 앞다퉈 논문 컨설팅, 국내·외 학술대회 발표 등을 지원했고 심지어 몇몇은 자녀의 이름을 자신이나 지인의 연구 실적에 허위로 넣어주는 일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윤리 확보를 위한 지침(교육부 훈령 제263호)」 제12조 연구부정행위에 따르면 ▲“위조”는 존재하지 않는 연구 원자료 또는 연구자료, 연구결과 등을 허위로 만들거나 기록 또는 보고하는 행위 ▲“변조”는 연구 재료·장비·과정 등을 인위적으로 조작하거나 연구 원자료 또는 연구자료를 임의로 변형·삭제함으로써 연구 내용 또는 결과를 왜곡하는 행위 ▲“표절”은 일반적 지식이 아닌 타인의 독창적인 아이디어 또는 창작물을 적절한 출처표시 없이 활용함으로써, 제3자에게 자신의 창작물인 것처럼 인식하게 하는 행위 ▲“부당한 저자 표시”는 연구내용 또는 결과에 대하여 공헌 또는 기여를 한 사람에게 정당한 이유 없이 저자 자격을 부여하지 않거나, 공헌 또는 기여를 하지 않은 사람에게 감사의 표시 또는 예우 등을 이유로 저자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 ▲“부당한 중복게재”는 연구자가 자신의 이전 연구결과와 동일 또는 실질적으로 유사한 저작물을 출처표시 없이 게재한 후, 연구비를 수령하거나 별도의 연구업적으로 인정받는 경우 등 부당한 이익을 얻는 행위 ▲“연구부정행위에 대한 조사 방해 행위”는 본인 또는 타인의 부정행위에 대한 조사를 고의로 방해하거나 제보자에게 위해를 가하는 행위 ▲그 밖에 각 학문분야에서 통상적으로 용인되는 범위를 심각하게 벗어나는 행위다. 이에 따르면 연구에 공헌하지 않은 자녀에게 논문 저자 자격을 부여하는 행위는 ‘부당한 저자 표시’에 속해 연구윤리 위반에 해당한다.

  논문은 매 글자에 연구자의 땀과 눈물이 녹아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상당한 시간과 노력을 들일 수밖에 없다. 새로운 연구 방법론이나 주제를 탐색하고, 이에 대한 타당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행 연구를 살피고 자료를 수집하며, 이 과정에서 유의미한 결과와 해석을 도출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지식 노동’이다. 2018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서 26개국 2,279명의 대학원생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석·박사과정 학생들이 우울증이나 불안증세를 겪는 비율이 일반인보다 6배 이상 높다고 한다. 이는 졸업과 취업 등에 있어 양질의 연구 실적을 필수로 하는 대학원생들이 얼마나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는지 알려주는 지표다. 그런 원생들에게 있어 오늘날의 연구부정 사태는 씁쓸하기 그지없는 광경이다.

 

사라진 영재들

 

  수시 제도를 악용하는 수가 늘어나자 교육부는 2014년부터 학교생활기록부(이하 학생부)에 논문 등재·학회 발표·도서 출간 등을 기재할 수 없도록 제도를 변경했다. 그러자 학창 시절부터 논문 작성에 두각을 보인 ‘영재’들은 갑작스레 자취를 감췄는데, 이에 대한 근거는 다음과 같다. 카이스트 경영공학과 석사 강태영 씨, 시카고대 사회학 박사과정 강동현 씨가 지난 4월 17일 공개한 「논문을 쓰는 고등학생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봅시다」(2022)에 의하면 2014년도 학생부 논문 작성 이력 기재 금지 정책 발표 후, 미성년 저자의 논문 수는 급격히 감소했다. 그뿐 아니라 해당 보고서에서 조사한 바에 의하면 2001년부터 작년 사이 국내 고등학생이 작성한 해외 논문은 총 558건, 학생 저자 수는 980명인데 이들 중 약 70% 가까운 이들이 고등학교 시절 작성한 1편의 논문을 제외하곤 그 뒤로 연구를 진행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어린 나이에 국내·외 학술지에 논문을 투고·게재할 정도로 높은 역량과 의지를 가진 미성년 저자들은 어디로 갔는가. 물론, 연구하는 데 있어 정해진 나이는 없다. 오히려 청소년기 시절부터 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는 일은 개인과 학계의 발전을 고대하게 한다. 그러나 학계가 ‘화려한 천재’보다는 지속적이고 왕성한 연구 활동을 지향한다는 특성을 짚어본다면, 정책에 맞춰 ‘입시형 논문’을 양산하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게 볼 수만은 없다.

  지난 5월 2일 발표된 「논문을 쓰는 고등학생들에 대해 조금 더 알아봅시다」의 후속편은 미성년자 저자들의 실태가 더욱 심각함을 드러낸다. 앞서 조사한 해외 논문 558건 중 72건(12.9%)이 일명 ‘약탈적 학술지(Predatory Journal)’라 불리는 부실 학술지에 실렸기 때문이다. “적절한 심사없이 돈만 지불하면 무조건 게재하고 이윤을 추구하는 학술지”로 불리는 약탈적 학술지는 정상적인 논문 게재 과정이 동료 평가·수정 등의 ‘피어 리뷰(Peer Review)’를 필요로 하는 데 반해 게재료를 받는 데 급급한 곳을 의미한다. 따라서 표절·위조 등과 같은 연구윤리 위반이나 내용이나 주제의 질 등을 엄격히 관리하지 않기에 ‘수준 이하의’ 논문이 게재되는 경우도 상당하다. 이러한 약탈적 학술지에 실린 검증받지 못한 연구들은 일반인들, 다른 분야의 연구자들에게 잘못된 지식을 전달할 수 있다. 이는 연구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려 학문 생태계를 교란하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선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연구윤리 교육, 약탈적 학술지 목록 공개 등의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 실제로 표절·위조 등의 행위뿐 아니라 부당한 중복 게재 등 여러 위반 행위가 있지만, 이에 대해 명확하게 인지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특히 청소년이나 학부생의 경우 교원에 비해 상대적으로 연구윤리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기에 ‘연구윤리 조기 교육’ 도입이 절실하다. 또한 약탈적 학술지 역시 교육부 등 담당 정부 부처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목록을 공개하고, 게재한 이들의 경우 불이익을 줘 질적으로 우수한 논문을 배출해야 할 것이다. 이제라도 학문공동체가 자성의 목소리를 드높일 때다.

 

안혜진 편집위원 | ahj33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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