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상준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대학 교육, ‘이론’인가 ‘실무’인가]

최근 들어 국내 대학은 대학이 ‘이론’을 가르치는 곳인지, ‘실무’를 가르치는 곳인지 지식 전달의 방향성에 있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고등교육의 현황과 실태를 주목하고, 현행 제도가 품고 있는 문제를 직시해 미래지향적 방식으로 해결해나가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청소년, 대학을 결정하면서 ② 고등교육체제의 현안 ③ 산학협력 촉진, 대학의 새로운 움직임 ④ 실무형 교육, 그 이후

 

 
 

 

대학 교육의 두 방향

안상준 / 국립안동대 사학과 교수

 

  대학 교육은 이론을 우선시해야 하는가. 아니면 학생의 실무능력 향상에 치중해야 하는가. 필자는 이 양분법적 질문에 공허함을 느낀다. 대학 교육의 원천은 교수의 이론적 연구 성과이고, 목표는 교육 대상자의 취업과 연계된다. 즉 이론과 실무는 서로 대립하는 목표라기보다는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을 통해 달성할 수 있는 다양한 기능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질문은 지극히 한국적인 상황에서 유래한 비교육적인 관점을 담고 있다. 이례적으로 높은 사립대의 비중과 복잡한 이해관계, 국립대에 대한 교육부의 무능하고 무책임한 관리가 밀접하게 연계돼 있기 때문이다. 이 질문에 보편적 관점에서 대답하기 위해서는 먼저 대학의 정체성을 이해해야 한다. 볼프강 E. J. 베버(Wolfgang E. J. Weber)는 《유럽 대학의 역사》에서 “대학은 비일상적이고 복잡하며 학문적인 고급의 사실적·방법적 지식과 방향제시적 지식을 생산하고 전수하는 기관”이라고 정의했다. 덧붙여 대학을 “고급 지식을 다룰 줄 아는 개인과 습득할 역량을 갖춘 개인들이 모인 엘리트 교육기관”이라고 말한점을 고려해 본다면, 대학 교육은 이론을 중시하는 셈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는 ‘학문연구중심 대학’과 ‘취업실무특화 대학’으로 분리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자는 학문 연구를 기본 기능으로 삼아 ‘학문의 전당’을 지향하고 고급지식을 학생에게 전수하는 대학을 지향하는 반면, 후자는 연구 기능보다 학생의 취업에 필요한 실무 능력 배양을 중시하는 교육기관으로서 현재의 전문대학을 떠올리게 한다. 이에 기반한 두 범주는 일반대학과 전문대학의 양립 정도로 치환할 수 있다. 그런데 왜, 두 범주를 설정해 대학의 발전을 도모하자고 주장하는 것일까.

 

해외의 연구중심 대학 운영모델

 

  이 주장의 이면에는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대학모델이나 아이비리그에 속한 연구중심대학 운영모델에 대한 부러움이 담겨 있는 듯하다. 캘리포니아주 정부는 대학을 ‘대학원 중심 대학’, ‘학부 중심 대학’, ‘커뮤니티 칼리지’로 구분해 관리한다. 대학원 중심 대학은 연구 기능을 중시하고 우수한 연구 인력 양성에 치중하며, 학부 중심 대학은 대학원 없이 교양교육과 취업에 유리한 실무 인력 양성을 목표로 삼는다. 그리고 커뮤니티 칼리지는 주로 일상생활과 직결된 분야의 실용적 지식을 가르치는 역할을 담당한다. 이 시스템의 전제조건은 주 정부의 재정 지원과 관리 권한이다.

  여기서 커뮤니티 칼리지 졸업자든, 학부 중심 대학 졸업자든 다음 단계로 진학할 수 있다는 시스템의 개방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누구든 비전과 능력에 따라 대학의 유형을 선택할 수 있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살아갈 능력을 취득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수요자 위주의 다양한 고등교육이라는 특징을 가진다. 이 시스템은 미국 전역에 퍼져 있는 보편적인 진학 시스템이다. 《최재천의 공부》에서 소개된 노화 연구의 권위자 스티븐 오스타드(Steven Austad)가 커뮤니티 칼리지 출신이라는 점에서 이 시스템의 강점을 엿볼 수 있다.

 

한국의 한계와 그 이유

 

  그렇다면 한국의 대학 체제를 캘리포니아주의 모델로 전환하거나 새롭게 실현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한국에 연구중심 대학이 없기 때문이다. 오래전부터 몇몇 서울대 총장이 서울대를 연구중심 대학으로 전환하려는 구상을 밝혔지만, 여전히 아이비리그 대학보다 학부생을 두 배 이상 많이 선발하는 대규모 학부를 보유하고 있다. 수도권의 주요 사립대나 비수도권의 대형 국립대도 서울대의 사정과 별 다를 바 없다. 카이스트를 비롯한 4개 과학기술원 대학을 제외하면 사실상 한국에는 연구중심 대학이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국립대 연합체제’나 ‘서울대 10개 만들기’와 같은 방안이 지방대학을 살리는 대안처럼 들리지만 사실 구현될 수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

  연구중심 대학으로 전환하지 못하는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학부 중심 운영의 관성이다. 국립대의 경우 교육부의 공공재원 투자 부족과 대학의 특성화를 절박하게 추진하지 못하는 교수사회의 분위기가 크게 작용하는 한편 대학을 사유재산으로 간주하는 사학법인의 태도는 대학의 체질 개선에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육의 공공성보다는 재단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사학법인의 운영방침을 고려한다면, 학부생의 축소는 재단 수입의 감소를 의미한다. 대학들이 이런 상황을 감수하면서까지 연구중심 대학으로 전환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사립대학 운영에 국가적 지원이 필요함에도 개인재산을 운용하는 일에 세금을 투자할 근거가 미흡하다는 점 또한 우려된다. 결국, 이러한 요인들 때문에 연구중심 대학이라는 고등교육의 유형을 확보할 기회가 사라졌다.

  결과적으로 거의 모든 대학이 대규모 학부 교육 중심으로 운영하면서 대학원까지 개설하는 규모 경쟁의 늪에 빠져들고 말았다. 그리고 학부 입학자가 줄어들게 되자 대학 교육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을 맞게 됐다. 뒤돌아보면 “벚꽃 피는 순서대로 대학이 망한다”라는 자조 섞인 전망이 대학서열화의 공고화와 맞물려 진행된 것이다. 전국의 대학이 그나마 보유하던 개성과 특성을 살리지 못하고 무색무취한 졸업생을 배출하는 동안, 수도권과 비수도권 대학의 경쟁은 심화됐고 학생들은 수도권 대학으로 몰려들었다. 이제 비수도권 대학이 소멸 지경에 이르러서야 하릴없이 대학 유형의 분리를 주장하는 셈이다.

 

대학원에서 해결책을 찾다

 

  이 시점에서 한국의 대학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많은 일반대학은 전문대학에서 운영되던 학과를 개설해 학생 유치를 벌이고, 실용적인 기술 인력 배출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런 변화의 방향이 대학의 장기지속적인 생존을 보장할 수 있을까. 이제 대학은 고급지식을 산출하는 유일한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고급인력을 배출하는 대학과 실무인력을 배출하는 대학의 구분, 지역 간 차이를 고려한 대학 발전 전략 다양화, 국립대와 사립대의 성격에 기초한 역할 분담 등 여러 상황을 고민한 재구조화가 필요하다. 나아가 대학원 연구 기능의 내실화도 절실하다. 필자는 학부 교육에 매몰된 우리의 시선을 대학원으로 옮기면 문제의 실마리를 풀 수 있다고 판단한다. 지식정보화 시대는 도래했고, 이로 인해 산업구조는 변화하고 고용 없는 성장이 ‘뉴 노멀(New Normal)’로 자리 잡았다. 대학의 위상 정립이 시급한 이때, 연구중심 대학으로 가기 위해선 국내 출신 석·박사에 대한 차별, 연구 환경의 개선 등 산적한 문제들을 빠르게 해결해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 대학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