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2.9.7 수 04:33
특집
[특집 칼럼] 대한민국, 신약 개발 선도 국가로 탈바꿈하려면이형기 /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
윤홍률 편집위원  |  ryul0823@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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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승인 2022.09.06  18:1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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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약개발 선도국가로의 도약]
길고 긴 팬데믹 속에서 환자들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평범한 ‘보통의 삶’을 그리워하게 됐다. 신약 기술의 선점은 국가산업을 좌우하는 강력한 패권으로 자리 잡게 됐고, 글로벌 경쟁력을 쟁취하기 위한 전략 또한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이에 본 특집호에서는 국가산업으로서 신약 개발의 필요성과 요구되는 전략에 대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대한민국, 신약 개발 선도 국가로 탈바꿈하려면


이형기 / 서울대병원 임상약리학과 교수

   
 

  코로나가 발발한 지 이제 곧 3년이다. 하지만 팬데믹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어느 누구도 이렇게 오래 지속되리라 예상하지 못했기에 우리네 삶과 사회에 미친 영향은 실로 막대했다. 신약 개발 분야도 예외는 아니었다. 팬데믹이 발발한 지 한 해가 지나기도 전에 수 개의 백신이 성공적으로 개발됐다. 글로벌 제약사인 화이자와 머크도 팬데믹의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큰 경구용 치료제를 개발해 FDA의 긴급사용승인을 받았는데, 평균적으로 하나의 신약 또는 백신을 개발하는 데 15년 정도가 걸린다는 사실과 비교한다면 엄청난 속도가 아닐 수 없다. 이는 공공 영역과 민간 분야가 전방위로 협력하고 의약품규제기관이 적절한 지침을 제시할 때 훨씬 신속하게 백신과 신약을 개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것이다. 이에 질세라 한국 제약기업에서도 항체치료제를 자체 개발하는 등 경쟁에 가세했다. 하지만 항체치료제는 중등증 이상의 입원 환자에만 투여할 수 있어 사용에 제한을 받는다. 따라서 매출액에 반영된 시장의 반응은 시큰둥하다. 또 다른 국내 회사가 개발 중인 백신이 3상 임상시험을 마치고 식품의약품안전처(이하 식약처)의 허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미 시장 점유율을 확보한 화이자나 모더나의 백신에 맞서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는 힘들어 보인다.


국내 신약 개발의 한계와 해결책


  지금까지 한국은 자동차, 반도체와 같은 하드웨어 산업에서 성공적으로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했다. 이에 더해 최근에는 대중음악이나 영화 같은 콘텐츠 분야에서도 한국의 성장세가 놀랍다. 그런데 신약 개발 분야에서는 왜 한국이 영 맥을 못 추는 것인가. 물론 한국이 신약개발 분야에서 거둔 성과가 전혀 없지는 않다. 다만 지난 20여 년간 총 35개의 신약이 탄생하는 속에서도, 글로벌 신약의 반열에 올라 상업적 성공을 거둔 사례가 전무하다.
  이제껏 국내 제약기업이 독자적으로 신약을 개발할 자본과 역량이 부족했기 때문에 정부 측에서는 제네릭 약가를 높게 보전해주는 방식으로 제약산업을 육성해왔다. 따라서 글로벌 신약보다는 내수용 제네릭을 위주로 발전하는 형태를 보인다. 그 결과 국내 제약기업의 연구개발 집약도(매출액 대비 연구개발 투자비 비율)는 글로벌 상위 제약사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8.9%에 불과했다. 글로벌 제약시장에 비해 국내의 규모가 작다는 점까지 고려하면 연구개발 투자비의 절대 금액은 더 초라하다.
  다행스럽게도 정부의 지원 덕분에 최근에는 제약바이오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과 연구소에서도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관심이 높아졌다. 그 결과 국내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은 1,800여 개에 이르렀다. 더욱이 국내 제약기업이 해외 제약사에 신약 후보물질을 기술이전하는 경우도 늘었고 해외 규제기관에 직접 허가를 신청하는 신약의 건수도 증가했다. 하지만 아직 대부분의 국내 파이프라인이 개발 초기 단계에 머물러있는 실정이기에, 해외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는 방식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담보하기 어렵다. 후기 임상시험까지 자체 진행할 수 있는 자본, 경험과 역량을 확보해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하고 시장에서 성공 스토리를 써야 하는 이유다.
  모든 산업은 연구 개발부터 생산, 허가, 가격 결정, 유통을 아우르는 이해당사자가 서로 밀접하게 연결돼 역동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 이를 비즈니스생태계라고 부른다. 결국 대한민국이 제약 선진국 수준의 신약 개발 선도 국가로 탈바꿈하려면, 국내 제약바이오 산업의 비즈니스생태계가 변화해야만 하는데 이는 결국 혁신의 가치를 최고로 삼는 것을 의미한다.


재원 확보의 중요성


  우선 신약개발 연구 재원이 획기적으로 확충돼야 한다. 글로벌 3상 임상시험 프로그램을 수행하는 데만 최소 1000억 원 이상이 들면서도,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다는 특성을 감안할 때 이 정도 투자를 감행할 제약기업은 국내에 하나도 없다고 봐도 좋다. 사실 이 때문에 대부분 국내 제약기업이 전임상이나 초기 임상시험만 마치고 서둘러 기술 수출을 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실익도 크지 않고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구매사가 기술을 반환하기 때문에 최종 신약개발에 성공할 가능성은 낮다.
  따라서 정부는 신약개발 연구비 지원 사업 이외에도 국내 제약기업이 자체적으로 신약개발을 지속할 수 있도록 펀드를 조성하고 투자를 늘려야 한다. 현재 정부가 주도해 운용 중인 700여 개의 모태펀드 중 제약산업에 중점을 둔 것은 단 3개에 불과하고, 결성 총액도 1,500억 원 정도이다. 그나마 이러한 펀드의 지원을 받은 제약바이오벤처는 1.5%도 안 된다. 요컨대 중소 이상의 제약기업은 공개된 시장에서 투자 형태로 자금을 마련할 기회가 아예 주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러한 재정 문제를 해결하려면 제약기업 및 바이오벤처에 투자하는 최소 1000억 원 이상의 펀드를 수 개 이상 조성하고 여기에 정부와 민간이 재원을 투입해야 한다. 아울러 현재 정부의 신약개발 연구비 지원 대상에 포함되지 않는 글로벌 3상 임상시험에도 투자가 가능하도록 펀드 결성액을 10조 단위까지 늘리는, 일명 ‘메가펀드’ 도입도 적극 고려할만하다. 또한 투자회사와 바이오벤처, 제약기업 사이에 기술 이전과 정보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도록 돕는 상설 네트워크도 필요하다. 아울러 선진 해외 기업과 신약개발이나 의약품 판매를 위해 체계적으로 협력하는 회의체를 만들고 여기에 국내외 기업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범정부적 컨트롤타워의 필요성


  나아가 신약개발 관련 정책을 총괄할 컨트롤타워가 범정부 상설기구로 설립돼야 한다. 신약개발에는 제약바이오기업은 물론, 대학 및 연구소, 병원까지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관여하기 때문에 하나의 부처에서 총괄하기는 어렵다. 뿐만 아니라 장기적인 전략을 수립하고 집행해야하므로 운영 기간이 한정된 사업단이나 위원회는 신약개발 컨트롤타워에 적합하지 않다. 더 나아가 신약개발 컨트롤타워는 독립적인 예산을 갖고 자체 인사권도 행사할 수 있어야 한다. 연구지원을 비롯해 바이오클러스터를 포함한 인프라 활용, 인재양성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계획이 신약개발 컨트롤타워를 통해 나오고 전파돼야 한다.
  특히 신약개발에는 다양한 직종과 전문가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국내 제약기업에서 신약 개발에 종사하는 인력은 매우 적은 실정이다. 이런 측면에서는 한국이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하는 분야인 반도체산업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정부는 최근 반도체 산업에서 향후 10년간 필요한 인력을 총 3만 6000명으로 추산하고 어떻게 부족한 인력을 양성할지 계획했다. 이와 비슷하게, 대학과 기업이 연계해 신약개발에 집중된 계약학과나 주문식 교육과정을 대학에서 운영하는 방법을 고려할 수 있다.
  식약처도 적극 나서야 한다. 빠르게 발전하는 바이오 과학에 허가 제도가 발맞추려면 심사 체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돼야 한다. 물론 전문 인력을 확보하는 일도 게을리할 수 없다. 식약처의 고질적인 심사 인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분간 각 분야의 전문가로 구성된 외부 심사자문위원회를 상설로 설치하고 임상시험계획서 승인이나 신약 허가 결정에 그들의 의견을 투명하게 반영하는 시스템 도입을 고려할 수도 있다. 또한 신규 심사 인력을 양성하고, 식약처의 심사 전문가가 빠르게 발전하는 규제과학의 트렌드를 배울 수 있도록 재교육 과정이 마련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사회가 혁신의 가치에 상응하는 값을 제대로 쳐주지 않는다면 신약개발 의욕이 생겨날 리 없다. 그러나 그동안 한국은 약가 통제에 매달려 신약에 담긴 혁신의 가치를 보상하는 데 인색했다. 물론 건강보험의 재정 건전성을 염려하는 정부가 약가 억제 정책에 기대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신약개발의 무임승차자에 해당하는 제네릭 의약품에 상대적으로 고가의 약가를 허용하거나, 약효나 안전성이 입증되지 않았고 경제적 효용도 검증받지 못한 첩약과 같은 의료서비스에 급여를 인정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성공한 선진국에 비해 한국은 자본력도, 개발의 토대가 될 만한 기초과학 기술력도, 산업계-대학-연구기관의 협력 경험도 모두 부족하다.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우리가 노력을 멈추지 않는다면 대한민국이 신약개발의 글로벌 선도 국가로 우뚝 설 날이 머지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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