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경계에서


로지은 / 조형예술학과 석사과정

 

  동양화를 전공하게 되면 무거운 숙제를 부여받은 채 출발하는 느낌이 든다. 아마 많은 전공자가 공감할 것이다. 재료와 형식에 세월이 켜켜이 쌓여 있다 보니, 동양화와 전통의 관계에 관한 화두는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내가 배운 스승들의 세대는 전통성이 더 많이 농축돼 있다. 하지만 이것이 내게 전달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학부에서 산수화나 인물화처럼 기교가 형식화된 수업들을 들었을 때, 유독 힘들었기 때문이다. 전통에 기반한 재료기법과 이론을 적용해도 결국 디지털·문화적 감수성이 세대별로 달라서 같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작품 초기에는 동양화만의 탄탄한 표현법에 맞추려고 했지만 노력할수록 작품에서는 엇박자가 생기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엇박자에서 나오는 키치함이 흥미로워 작품에 자연스럽게 묻어나오도록 한다. 스스로 경직된 어법에서 벗어나 더 자유롭게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일부러 선을 물렁하게 쓴다거나 가능한 한 표현과 기교를 단순화하려고 한다. 어쩌면 나의 느슨한 성향과 기존 경향에 대한 약간의 반항심이 작품에 일부 반영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How to have closer human, 종이에 먹, 29.7x21cm, 2021
 How to have closer human, 종이에 먹, 29.7x21cm, 2021

  나는 주로 대상의 의인화를 통해 우리가 살아가며 겪는 감정과 삶의 작은 부분들을 작품 속에 담고자 한다. 특히 동물들의 습성을 활용해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예를 들면 사람 곁을 맴도는 비둘기나 주인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평소에 관찰한 대상의 특징을 이야기와 함께 작품 속에 담아낸다. 특히 먹선의 율동성을 활용해 꿈틀거리는 대상에게 조형적 재미가 나타나도록 표현하는 식이다. 이를 담아내기 위해 작품에는 얇은 화선지부터 두꺼운 장지, 켄트지 등 다양한 종이를 사용한다. 나는 수묵과 채색 중 주된 표현을 먼저 결정하고 종이를 선택하는 편이다. 종이 두께와 코팅 표면에 따라 먹의 번짐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까만 먹은 컬러의 폭이 제한돼 있지만 화면 안에서는 존재감이 커 채색이 들어갈 때는 농담을 신경 쓰면서 전체적인 밸런스를 고려하며 진행한다.

 벙찐 고양이, 화선지에 먹, 69.5x41.5cm, 2020
 벙찐 고양이, 화선지에 먹, 69.5x41.5cm, 2020

  변화하는 시간 속에서 동양화만의 요소를 어떻게 실험하고 재해석할 것 인지, 어떤 점을 버리고 흡수할 것 인지 등 나만의 시각과 태도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때문에 동양화와 관련된 수묵 비엔날레나 미술관에서의 기획전 이외에도 지속해서 작품을 관찰하고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학회보다 더 캐쥬얼한 환경에서 작가, 큐레이터, 미술사가 서로의 시각에서 글을 기고하고 함께 생각과 자료를 공유할 수 있다면 지금의 동양화 양상을 더 입체적으로 연구해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든다. 

 보고싶어, 장지에 먹, 분채, 43.6x59cm, 2022
 보고싶어, 장지에 먹, 분채, 43.6x59cm,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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