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대학교 대학원신문
인터뷰, 임근준
최종편집 : 2022.9.7 수 04:33
기획사회
[사회] 한국 장애인식의 현주소전지혜 /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최예림 편집위원  |  choiyeahleem@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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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7호]
승인 2022.09.06  17:4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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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가가기 위해 ① 미디어 속 장애의 단면


각종 이슈와 함께 장애인에 대한 의견은 양극화되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로 ‘장애’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는 것은 분명 긍정적이지만, 극중 인물이 아닌 실제 장애인들의 현실과 사회 인식은 어떤지 정확하게 인지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획은 장애인들을 편견 없이, 현실적으로 이해하는 것을 제안하며 일상 속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기 위해 우리가 어떠한 태도와 인식을 가지면 좋을지 고민하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미디어 속 장애의 단면 ② 편견 없이 이해하기 ③ 기술로 좁히는 사각지대 ④ 함께, 한 발 더 내딛기 위해


한국 장애인식의 현주소


전지혜 / 인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2022년 한 해는 장애인식을 둘러싼 한국 사회의 다양한 입장 차이가 날 것 그대로 드러난 해로 기억될 것 같다. 연초에는 장애 인권운동 단체의 출퇴근 시간대 지하철 이동권 투쟁을 둘러싼 장애인과 비장애인 시민들 간의 입장차이가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런 와중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로 인해 장애인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에 대한 이슈가 주목받고 있다. 장애를 둘러싼 여론 변화가 다이나믹했기에 이를 연구하는 학자로서, 또 장애인 당사자로서 한국 사회의 장애인식에 대해 되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번 원고를 통해 한국 사회 저변에 깔린 장애인식의 현실과 가능성을 짧게나마 논해보고자 한다.
  사실 20년 동안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계속됐지만, 올해만큼 뜨겁게 관심을 끌었던 적은 없었다. 시위를 주도했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너무 싫다는 의견에서부터 장애인이 싫다는 혐오적인 표현들까지 인터넷에 수시로 등장했다. 장애인 단체장과 정치 정당 대표가 TV와 인터넷에서 끝장토론을 하기도 했으며, 수많은 시민논객이 인터넷상에 저마다의 의견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성공했는가를 묻는다면, 사람들이 해당 문제에 약간의 관심을 갖게 된 것 이외에는 변한 것이 없다. 현실적인 정책집행과 예산배정 논의는 이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이다. 사실 올해 2월 시외버스의 휠체어 탑승설비 미비와 관련해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에 따르면, 국가와 지자체가 시외버스 내 탑승설비 지도·감독을 소홀히 한 점이나 행정적·재정적 지원을 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차별이 아니라고 한다. 「장애인차별금지법」 차별 유형에 국가의 지도나 관리·감독 소홀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이며, 시외버스 회사의 미설치 상황은 장애인을 차별하고자 한 고의성이나 악의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물론 이동제약을 경험하는 장애인의 시외버스 탑승 비율은 현저히 낮기 때문에 비용 대비 효과성을 논한다면 다소 비효율적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렇다면 장애인들도 이용하기 편리하게 시외버스 이외의 대체 가능한 교통체계를 개선하는 안이라도 확실하게 나와야 한다. 그러나 「제6차 장애인정책종합계획(2023~2027)」이 수립되고 있는 현시점에도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한 국가 단위에서의 청사진은 특별운송 차량이나 저상버스 증차 정도 수준에서 논의되는 것이 현실이다.

   
 

드라마와 현실, 우리 사회의 양면성


  이동의 자유는 인간의 기본권이다. 이 간단한 기본권조차 보장되지 않는 현실에서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살아가는 이야기를 평화롭고 아름답게 할 수 있을까. 인기리에 종영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자폐성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동권 투쟁을 둘러싸고 혐오와 갈등 같은 날선 태도들이 오간 것에 반해, 드라마는 장애인과 함께하는 따뜻한 사회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했다. 특히 매회마다 자폐성 장애인만의 방식으로 통쾌하게 사건을 해결해가는 모습은 신선하고 시원한 쾌감을 줬다. 왜 이동권 투쟁에 대해서는 날선 의견과 반감이 많은데 우영우 같은 장애인에 대해서는 포용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한국 사회의 장애인 이슈에 많이 공감하게 됐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일까.
  우선 실질적인 이해관계자인가를 따져봐야 할 것이다. 출퇴근 시간에 불편을 경험한 시민들은 장애인 단체에서 주장하는 이동권에 대해 호의적 태도보다는 시위방식이나 시간대를 바꾸라고 하거나, 시위를 주도하는 전장연이 싫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장애인 이동권 보장 논의에 집중하기보다는 본인의 불편과 이해관계에 주목한다. 그런데 드라마를 보고는 우영우를 지지하거나 장애인에 우호적인 상사나 동료를 응원한다. 동시대의 여론인데도 장애인에 대한 태도나 인식이 일관되지 않는 것이다.
  위와 같이 어색하고도 양면적인 여론은 한국 사회의 장애인에 대한 인식을 여실히 드러내는 대목이라고 생각한다. 장애인과 함께하는 사회를 만들자는 외침도 개인주의·자본주의 사회 속에서 하나의 도구가 돼가고 있지 않을까. 본인의 이해관계에 맞으면 주장하고, 반하면 부딪히는 상태 말이다. 그러면서도 마음 한편에 작게 남아있는 인류애가 있기에 드라마가 보여주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공생하는 사회에 대한 판타지를 동경하고 있는 것은 아닐지 짐작해본다.
  또한 우영우 같은 장애인에 대해서만 호의적인 사회 현실을 지적할 수 있다. 드라마를 보다 보면 주인공의 장애 특성은 걸림돌이 아닌 천재성에 가깝다. 때문에 장애는 긍정적인 것으로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며 오히려 변호사로서 전문적 입지를 다지게 한다. 게다가 우영우는 인지 능력뿐만 아니라 공감 능력이나 소통 능력도 뛰어나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많이 다르다. 중증 장애인의 경우 간단한 의사표현이나 소통조차 어려운 경우가 많다. 취업의 장벽도 훨씬 높으며 안정적인 직장은커녕 사회복지기관으로의 진출도 쉽지 않은 현실이다. 즉 현재 한국 사회는 딱 우영우 같은 정도의 특별하고도 뛰어난 장애인에 대해서만 사회에 참여하고 함께 하길 원하는 것이다.


장애인식 개선의 필요성


  장애란 무엇일까. 어느 시대나 지역을 보더라도 장애인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일정 비율 존재했으며 장애는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 「유엔 장애인권리협약」에서는 장애에 대해 “손상을 가진 개인이 태도적·환경적 장벽과 상호작용하면서 발생한다”라고 말한다. 즉 태도적·환경적 장벽이 없다면 개인에게 손상은, 손상 자체로만 존재할 뿐 사회참여의 제약이 되지 않는다. 마치 우영우의 장애특성을 이해한 회사와 동료관계 속에서 자폐의 속성이 변호업무에 제약이 되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이동권 투쟁도 같은 맥락이었다. 환경적 장벽을 없애서 장애 문제를 해결하자는 요청과 같았다. 장애특성을 이해하는 상사와 동료가 많다면 취업 시 인식의 장벽으로 인해 실패를 경험할 장애인은 줄어들 것이다. 장애를 개성으로 이해하는 지역의 상점이 늘어난다면 동네 카페나 서점, 빵집, 미용실 등 일상에서 장애인을 마주하는 일도 자연스러워질 것이다. 장애 학생을 위한 복지를 지원하는 대학들이 늘어난다면 고등교육을 받는 장애인도 늘어나고 양질의 일자리에 취업하는 장애인도 늘어날 것이다. 취업이 어려운 최중증 장애인들도 인식적·환경적·제도적 장벽이 없어진다면 사회에서 격리된 병원이나 시설이 아닌 지역에 살며 사람들과 어울릴 기회와 활동이 늘어날 것이다. 즉 인식과 환경의 장벽이 장애를 심화시키기도 하고 완화시킬 수도 있다. 따라서 장애라는 개별 특성을 어떻게 이해하고 지원하는가에 따라서 장애인의 삶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다만 문제는 장애인이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하는 데 정부와 시민사회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애쓸 의지가 있는가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현재 한국의 장애인식은 앞서 논한 바와 같이 이해관계가 충돌하지 않는 선에서 장애 인권에 대한 동의를 하는 정도이며, 경증의 장애인만 사회참여를 허락하는 듯하다. 언제쯤 중증장애인의 적극적인 사회참여가 자연스러운 일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솔직하게 말해 적극적인 공적지원과 제도적 지지가 있어야 비로소 인식의 변화까지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제도보다 빠르게 바뀌지 않는 것이 인식이며,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참여는 이해관계가 상충하지 않을 때 환영받기 때문이다. ▲대중교통 ▲지역상점 ▲체육시설 ▲대학 ▲병원 ▲은행 ▲주민센터 ▲직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곳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 누릴 수 있기 위해서는 적극적인 공적 예산이 투입돼야 하며, 그 공적 예산으로 인해 장애인만 수혜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비장애인도 수혜자가 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해관계의 상충이 아닌 양자에게 득이 되는 구조를 만들 때 시민사회는 장애인을 환영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10년 사이에 일어난 긍정적이고 큰 변화를 실감하기에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본다. 우영우가 일하는 환경과 맺는 관계가 지금은 판타지일지라도, 머지않은 미래에 현실의 모습이 되리라 기대해본다. 장애가 인간의 보편적 모습임을 알리고 인식과 환경을 바꾸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계속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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