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세 시대, 창조적 행위에 대한 이론의 필요성


김선영 / 홍익대 대학원 문화예술경영학과 교수

 

  D(Data), N(Network), A(AI) 등 기술 인프라를 기반으로 한 4차 산업시대가 예술에 격렬하면서도 다양한 변화와 혁신을 가져다주고 있다. 이는 ‘변화’에 언제나 예민하게 반응해 온 예술가들의 감성을 고려해 본다면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다. 손숙영의 지적대로 창조적 행위는 언제나 이론적 일반화보다 먼저 일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적 일반화가 없을 때, 이러한 창조적 행위는 기존의 틀 안에 갇혀 의미를 상실하거나 심지어는 부정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손숙영의 연구는 작금의 미술 이론계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준다.
  20세기 기술의 발전은 디지털아트를 낳았고 혁신은 뉴미디어아트라는 또 하나의 범주화를 꾀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요즘 대두되는 VR예술, AR예술, IoT예술, 실감미디어예술 등은 또 다른 범주화를 기다리고 있다. 또 한편에서는 생명을 소재로 한 바이오아트가 출현했다. 에드워드 스타이컨(Edward Steichen)의 ‘참제비고깔’, 조지 게서트(George Gessert)의 ‘아이리스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인 작품인데, 주로 유전자변형을 통해 생명체의 네트워크에 직접 개입하는 방식의 예술을 뜻한다.
  이러한 생명주의는 점차 그 유효성을 상실하고 있다. 즉 살아있는 것과 살아있지 않은 유기체가 근본적으로 다른 원리로 작동할 것이라는 믿음이 레이 커즈와일(Ray Kurzweil)이나 닉 보스트롬(Nick Bostrom) 등 특이점주의자들에 의해 깨지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미국 싱귤래리티 대학교수인 호세 코데이로(Jose Cordeiro)는 호모 사피엔스를 대체하는 신인류로 포스트 휴먼을 지목했다. 또한 프랜시스 후쿠야마(Francis Yoshihiro Fukuyama)는 생명공학 발전의 가장 큰 위험은 ‘인간 본성의 개조’에 있다며 포스트 휴먼이 평등의 파괴를 초래할 것이라 경고했다.
  현대 기술 시대의 책임 윤리에 대한 논의도 활발하다. 한스 요나스(Hans Jonas)는 인간 행복을 증진하기 위해 고안됐던 자연의 개발과 과학기술의 발전이 오히려 인간 행복을 위협하고 환경문제를 야기하며 가장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와 관련한 용어인 ‘인류세’는 홀로세(Holocene) 중에서 인류가 지구환경에 큰 영향을 미친 시점부터를 별개로 구분해 이르는 말이다. 그만큼 인류는 급격한 산업과 기술 발달을 통해 근 몇 세기 만에 자연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이는 기후변화, 자연재해, 바이러스 공격 등의 부작용으로 돌아왔다.
  그렇기에 미디어아트나 바이오아트를 가지고는 이러한 포스트 휴머니즘 혹은 트랜스 휴머니즘, 인류세 논의를 모두 담아내기 어렵다. 즉 이미 대세가 돼버린 자연적인 생명과 디지털적인 것의 경계가 흐려지는 융합을 설명하기에 한계가 있다. 이에 대해 바이오적인 존재와 디지털적인 존재가 물리적인 차원에서 완전히 통합될 수 있으며, 바이오적인 것과 디지털적인 것의 공진화가 출현하고, 생물학적인 체계와 디지털 체계의 개념적 융합이 이뤄질 것이라는 정책 지평 캐나다(Policy Horizons Canada)의 주장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인류세에 대한 현실 인식, 확장된 생태 의식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예술 형태, 그리고 바이오아트를 디지털로 형상화한 바이오모픽(Biomorphic) 등을 모두 아울러서 무엇이라고 불러야 할까. 이러한 물음에 대해 손숙영은 BDA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BDA는 기본적으로 미래지향적인 인식론의 관점에서 바이오와 디지털의 단순한 병렬적 결합이 아닌 창조적인 변이, 진화를 가져오는 융합을 논의한다. 그 근저에는 아놀드 벌리언트(Arnold Berleant)의 ‘참여의 환경미학’과 ‘인간과 자연 그리고 사회’라는 구도 속에서 생태학의 문제를 재조명한 펠릭스 가타리의 의식이 깔려 있다.
  손숙영은 본인이 일전에 직접 기획한 바 있는 전시의 키워드 ‘환경주제’, ‘유기적 형태’, ‘기술’ 등과 마이클 피터스(Michael A. Peters)의 바이오디지털주의를 융합해 ‘BDA’라는 이 시대의 새로운 예술에 대한 개념적 프레임워크를 제시함으로써 이론적 연속성 확보에 성공하고 있다.
  이렇듯 손숙영의 논문은 실무와 현장을 독창적으로 이론화함으로써 새로운 변곡점을 맞고 있는 미술의 큰 흐름을 정리하는 계기가 됨은 물론, 향후 미술사조 연구에 실질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어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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