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진 / 경희대 미술학부 강사

[예술_뮤지엄은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이번 기획에서는 ‘뮤지엄’은 무슨 일을 하는 곳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뮤지엄은 전시기능 이외에도 수집과 보존기능, 미술정책 및 학예 연구, 교육 및 출판기능 등 현대에 들어와 다양한 기능을 갖게 됐다. 이에 뮤지엄의 각 기능과 업무를 살펴보고 이해를 한층 높일 수 있는 장을 마련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뮤지엄의 역사 그리고 새로운 변화 ② 연구 및 수집의 장 ③ 전시기획과 운영 ④ 뮤지엄의 출판기능

 

뮤지엄의 공공화, 패러다임의 변화

 

송명진 / 경희대 미술학부 강사

  본래 박물관 범주 안에 미술관(Museum of Art), 과학관(Museum of Science), 역사관(Museum of History), 기념관 등이 포함된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박물관 및 미술관 진흥법』(2014, 7, 15)을 통해 박물관과 미술관을 구분해 정의하기 때문에 이원론적으로 구분돼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필자는 본 원고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아우르는 단어로 뮤지엄을 선택해 사용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술품들 중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것은 아마 ‘빌렌도르프의 비너스(Venus of Willendorf)’일 것이다. 인류 최초의 미술품은 돌이나 나무, 뼈 등에 새겨진 조각들이다. 우리는 뮤지엄에서 이러한 유물들을 미술품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흥미로운 점은 이 조각상이 다산 혹은 출산을 기원하기 위해 만들어져 주술적 의미가 담긴 작품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박물관 또는 미술관에서 접하게 되는 작품 대다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감상을 위한 미술품이 아닌 경우가 많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미술품의 역할, 기능, 형태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뮤지엄은 무엇인가

 

  “뮤지엄이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는 국제적으로 널리 받아들여지는 개념이 있다. 1946년 설립된 비영리 국제기구이자 유네스코의 협력기관인 국제박물관협회(International Council of Museums, 이하 ICOM)에서는 역사적 발전과 문화적 흐름에 따라 다양한 논의를 거쳐 7차례 정의를 발전시켜 왔다. 1946년에는 ‘수집⸳보존⸳전시’가 뮤지엄의 주요 기능과 존재의 목적이라 강조했고 1968년에는 ‘연구’를, 1969년에는 ‘교육’을 강조했으며, 1974년에 이르러서는 사회교육기관이 주요 기능과 역할이라 명시했다. 2007년 ICOM에서는 박물관을 “문화·예술·학문의 발전과 일반공중의 문화 향수 증진에 이바지하기 위해 역사·고고·인류·민속·예술·동물·식물·광물·과학·기술·산업 등에 관한 자료를 수집·관리·보존·조사·연구·전시하는 시설”로 정의내리고 있다. 최근 시대 변화를 반영한 새로운 정의를 위해 논의하는 등 뮤지엄의 개념과 주요 기능은 사회적 인식과 담론, 역할 변화에 따라 변모해왔다.
  뮤지엄의 역사는 고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뮤지엄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뮤제이옹(Museion)’은 신에게 바치기 위한 ‘수집품 혹은 제작품’을 저장하던 장소였다. 이후 아리스토텔레스, 플라톤과 같은 학자들이 살던 시대에 뮤지엄은 유물의 보관장소이자 그리스 학자들의 문예와 철학을 연구하고 교제하는 장소로 변모한다. 성서화, 종교화가 회화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중세시대에는 종교적 예술품을 연구⸳보관⸳관리하는 동시에 제단으로써 사용됐으며 귀족들과 신흥부르주아 계층의 취향을 적극 반영했던 르네상스 시대에는 사회적 권위와 권력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 예술품을 수집했고 이를 뮤지엄에 보관했다. ICOM의 정의와 유사한, 대중을 위한 공공공간으로써의 뮤지엄은 근대에 들어 시민사회의 성장과 더불어 발전됐다.
  모나리자가 전시돼 있는 루브르는 뮤지엄의 역사적 흐름을 모두 담고 있다. 본래 프랑스 왕이 거주하던 궁전이었던 루브르는 권력의 상징이었고, 왕의 보물이나 고문서를 보관하는 곳이었다. 이후 13세기 정치적, 사법적 화합이 열리는 장소로 사용됐고, 장인과 예술가가 모여드는 중요한 거점이 되기도 했다. 14세기 샤를 5세가 역사적 희귀 필사본, 보석류들을 본격적으로 보관하기 시작했고 프랑수아 1세가 미술품 컬렉션을 만들며 뮤지엄의 주요 기능인 ‘수집’, ‘보관’과 ‘연구’의 역할이 적극 반영되기 시작한다. 이후 17세기 회화⸳조각 아카데미 전시회가 루브르 살롱에서 개최되며 예술가들의 교류의 장소가 되기도 했다. 왕과 귀족들의 전유물이었던 루브르는 프랑스 혁명으로 시민 중심의 사회가 도래되고 나서야 제한적이긴 하지만 일반 대중에게 공개된다. 수집품들이 개인의 소유가 아니라 공공의 재산이어야 한다는 점, 공공의 것으로 일반 대중에게 공개돼야 한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다. 근대 시민사회에서는 공공성, 계몽, 교육 등이 중요하게 작용하며 이것이 오늘날 뮤지엄 개념의 본질을 규정하는 틀로서 자리잡았다. 예술이 특권 계층의 전유물이 아닌 공동의 것이자 공적 장소로 인식됨과 동시에 뮤지엄이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전시와 계몽을 위한 교육의 장소로 활용되기 시작한 것이다.

 

관람객에서 사용자로

 

  오늘날 뮤지엄은 교육적 기능에 엔터테이먼트적 요소가 추가된 에듀테이먼트가 강조된다. 교육⸳체험을 통해 뮤지엄에서 발생되는 모든 경험을 중시하고 있으며 학교 교육과 전시 내용이 연계된 다양한 프로그램, 성인을 위한 인문학 프로그램, 평생교육프로그램을 제공함으로서 교육의 장소로 자리매김했다.
  초기 뮤지엄은 수집, 보존, 조사, 연구를 하는 곳이었지만 시간이 흐르며 전시, 교육, 지역사회, 봉사의 개념이 추가됐다. 또한 오늘날에는 흥미, 체험, 의미를 간직하는 장소로까지 받아들여진다. 뮤지엄의 개념이 이렇게 변화함에 따라 관람객의 정의도 변화하고 있다. 뮤지엄이 사적인 귀족들의 전유물이었을 때 관람객은 단지 ‘방문객’에 지나지 않았다. 하지만 뮤지엄이 공공재로서 문화와 예술, 학문의 발전과 문화 향유권 증진을 위해 인류의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관리, 보존, 조사, 연구, 전시하는 장소로 변화하며 단순 관람객에서 적극적 의미의 사용자 또는 고객으로 변모했다.
  알리스테어 허드슨(Alistair Hudson), 영국 미들즈브러 현대미술관(Middlesbrough Institute Of Modern Art)관장은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30주년 기념 국제컨퍼런스 〈변화하는 미술관: 새로운 관계들〉에서 우리가 “뮤지엄 3.0시대”를 살고 있다고 표현했다. 훌륭한 미술품을 전시하고 방문객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뮤지엄 1.0이라면, 관람객들이 와서 유물이나 미술작품을 직접 보고 경험하고, 참여하는 것이 2.0시대이다. 나아가 3.0시대는 이미 마련된 틀 안에서 참여하는 방식을 넘어 보다 적극적인 사용자 기반 개념에 중점을 두고 있다. 뮤지엄 3.0시대의 미술관들은 모든 사용자 행동의 총합으로 그 최종적인 의미가 부여되고 창조된다. 전시, 교육, 관객의 참여와 활동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전시된 미술작품들과 사용자의 상호작용을 통해 창작자로서의 관람객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새로운 뮤지엄의 등장과 모색

 

  뮤지엄 패러다임의 변화는 비단 뮤지엄과 사용자와의 관계에 대한 개념 변화뿐 아니라 뮤지엄 기능의 형태까지 바꾸고 있다. 그중 개방형 수장고 뮤지엄은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꼽힌다. 우리가 뮤지엄에 방문해 관람하는 유물 혹은 미술작품들은 뮤지엄이 소장하고 있는 컬렉션의 단 10%도 되지 않는다. 개방형 수장고 뮤지엄은 전시 주제에 맞춰 큐레이터가 선별한 유물 또는 미술작품들만 보여주는 방식을 벗어나 관람객들이 직접 다양한 소장품들을 탐구하고 해석해낸다. ‘보이는 수장고(Visible Storage)’ 또는 ‘열린 수장고(Open Storage)’라는 불리는 이 뮤지엄들은 수장고에 보관돼 있어야 할 유물들을 보관 및 보존함과 동시에 관람객들과 공유한다.
  관람객들이 뮤지엄의 모든 콘텐츠를 단순 관람에서 그치는 것이 아닌 이를 재사용하고 응용, 융합할 때 콘텐츠는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며 뮤지엄은 새로운 지식 창출과 공유의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 개방형 수장고 형태의 뮤지엄은 관람객 스스로 지식 생산과 해석을 유도하게 해 새로운 지식 공유 창구를 제공한다. 우리나라 또한 시대적 흐름에 발맞춰 국립공주박물관 충청권 개방형 수장고,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개방형 수장고를 기점으로 국립한글박물관 개방형 수장고 등이 건립 예정이다.
근대 시민사회의 등장과 함께 발전한 퍼블릭 뮤지엄들은 관람 중심의 운영에서 벗어나 관람객과 소통하며 연구의 장으로서의 뮤지엄의 역할과 전시 기획과 운영의 역할 그리고 출판의 기능까지 뮤지엄의 경계를 확장해 나가고 있다. 4차 산업혁명과 비대면 시대를 겪으며 뮤지엄 역시 또 다른 패러다임 변화의 중심에 놓여있다. 인류 문화유산과 동시대 문화예술을 담고 있는 뮤지엄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모색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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